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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문화”와 성서의 여성

성서와문화 2009.12.28 15:52 조회 수 : 1179

[ 작성자 : 김윤옥 - 여성신학,정신대 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

근래 구조주의의 틀에서 시도한 1세기 신약성서시대의 가부장제에 대한 브루스 마리나(Bruce Malina)의 인류학적 분석은 문화와 성서의 연관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많은 시사를 주고 있다. 마리나는 문화인류학적 접근으로 1세기의 유대교를 “명예의 문화”라는 말로 제시했다. 그것은 “아주 고도로 형식이 정리된 시스템으로서 그것에 의해서 누구와 어떻게 이야기하고 관계를 가질 것인지를 결정하며 사회적 역할이나 협상을 통제하고 시스템 안에서의 움직임에 경계선을 긋는 문화”라는 것이다.
마리나에 의하면 1세기 팔레스틴에서는 각기 적합한 장소에 사람을 위치 짓기 위해서 권력, 성별, 종교의 세 가지 경계표식이 기능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들이 서로 겹치면서 구획하는 것이 ‘명예’라 불리우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사회는 권력, 성별, 종교가 상징하는 것의 세 가지 요소가 밀접하게 관련되는 가운데서 의미나 정감(情感)을 제공한다. 누구를 지배할 수 있는지는 자기의 남성 또는 여성으로서의 역할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그 성별역할은 또한 자기의 집단내에서의 계급의 어느 위치에 있는가와 밀접히 연관된다. 자기의 힘이나 성별역할에 의해서 구체화하는 어떤 지위를 자기의 것으로 요구할 때, 이 사람은 명예를 주장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명예의 문화’에서는 명예감각이 각자의 적합한 장소를 결정하고 공동체에서의 지위에 대한 중요한 열쇠로서 기능한다. 그러므로 권력과 성별과 신을 포함하는 타자에 대한 존경이 교차하는 데서 사람은 자기의 사회적 경계선을 유지하는데 이러한 경계선이 계급적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특히 1세기 팔레스틴 사회는 오늘날과 같은 개인주의는 없었고, 집단적 혹은 단체적 명예가 중요한 관심사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회에서는 가족이나 지역이나 나라의 모든 집단의 장(長)은 자기 집단의 명예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나아가서는 명예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집단의 사람들은 충성과 존경과 개인적 명예를 그에게 바치는 복종으로 보답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명예의 문화’는 근대문화에서도 아직 잔존하는 것 같다. 명예와 체면은 한국의 유교적 가부장 사회문화에서 아직도 개인의 의식이나 행동을 지배하는 사회규범이기 때문이다. 아주 좋은 예가 강제 연행되어 만주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억울한 일을 당한 여성들이 해방 후 살아서 돌아왔으나 집안의 명예와 체면 때문에 침묵을 지키며 타향에서 50여년을 살아 온 예일 것이다. 어떤 할머니는 고향까지 갔다가 어머니만 멀리서 바라보고 울며 발길을 돌렸다고 증언하고 있다. 집안의 명예 때문에, 형제들의 결혼에 방해가 될까 싶어 쓸쓸히 돌아서서 혼자서 비닐하우스나 어느 빌딩 계단 아랫방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이렇게 현대에서도 경험되고 있는 ‘명예의 문화’는 1세기 여성들의 경험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이 양쪽 사회에 공통되는 특징은 첫째는 집단적 사고지향형 사회에서 개성을 존중하는 여지가 없고 여성의 희생 위에서 남성의 명예가 추구되는 것이며, 둘째로는 체면과 본성의 이중적 인격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사회적 규범에 순응함으로서 안정을 유지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성서가 증언하는 예수는 이러한 ‘명예의 문화’의 경계선들을 파괴하는 분이다. 제일 처음 기록된 마가복음에서 살펴보면 혈루병을 앓은 여성의 이야기(5:25-34), 수로보니게 여성 이야기(7:24-30),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12:41-44), 향유를 부은 여성의 이야기(14:3-9),여성제자들의 이야기(15:40-41, 15:47, 16:1), 그리고 빈 무덤의 여성들(16:1-8)등에서 예수의 경계선 파괴의 행위와 여성과 예수의 상호행위적 관계가 잘 묘사되어 있다.
12년간 혈루병을 앓은 여성은 당시 부정한 피를 흘리는 존재로서 사회공동체에서 축출된 사람이었다. 여성의 피는 부정하다는 종교적 관념이 이 여성의 고통을 더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학자인 죤 J 필치는 이 구절을 생물의학적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반대하며 질병(disease)이 아니라 질환(illness)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물의학적 관점은 장기의 조직이나 기능의 이상을 질병이라 하지만, 질환은 질병을 포함하여 사회적인 손실을 입는 상태를 개인적으로 느끼거나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혈루병’이라는 질병이 공동체의 통합과 깨끗함을 위협하는 ‘질환’이 되었을 때, 그래서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네트워크로부터 격리 당했을 때, 이러한 질환의 치유를 위해서는 통합적 회복이 필요하다. 그래서 예수는 적극적으로 자기치유를 위해 예수의 옷을 만진 이 여성을 향해서 “샬롬(평안)안에 가라”고 한 것이다. 성서의 언어로 샬롬이란 인간이 모든 구조적, 물리적, 잠정적 폭력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혈루병의 여성은 자신의 치유(구원)를 위해서 당시 사회의 ‘명예의 문화’의 경계선을 파괴하며 예수에게로 다가갔다. 부정하다는 종교적 경계, 가부장제의 사회적 타부를 무시하고 자발적으로 군중 앞에 나서서 예수의 옷을 만졌다. 아마도 그 여성은 예수가 자기의 참담한 상황에서 그 수치를 함께 공유해 줄 것을 직관적으로 알았는지도 모른다.
그러자 피가 멎었고 예수는 동시에 자기 안에서 에너지가 나간 것을 알았다. 예수와 여성의 접촉은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의 규정으로 정해진 제의적 질서가 붕괴되었음을 상징한다. 여성은 규정을 어겼고, 이 침범으로 예수의 에너지는 오염을 치유에로 뒤집어 놓았음을 증명한다. 예수와 여성이 여성의 피에 대한 오염의 신화를 뒤집고 접촉이 전염의 원인이 된다는 신화도 오류라는 것을 그 여성의 직접행동으로 증명한 것이다. 예수와 여성은 깨끗한 사람과 더러운 사람의 경계를 파괴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와 그 여성의 경계파괴에 의한 열려진 공동체가 바로 예수의 하나님나라의 비젼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혈루병의 여성 이야기처럼 성서는 ‘명예의 문화’ 경계선에 갇힌 여성들의 놓임을 위한 예수와 여성들의 상호행위의 이야기를 증언하고 있다고 해석해도 무리는 없다. 수로보니게 여성의 이야기도 인종차별의 경계파괴, 음식물 차별의 경계파괴, 남성과 여성의 접촉경계의 파괴 등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이 이야기는 예수와 여성의 상호행위적 관점에서 읽어야만 이야기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명예의 문화’의 비인간적 경계선을 파괴하는 자로서의 예수가 인종적 경계를 넘어서 이방인 여성에게 다가가는 기회를 창출한 것은 사실 수로보니게 여성이었다.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그 여성의 직관과 주변화 된 사람들에 대한 예수의 감성이 하나의 소용돌이를 이루며 양쪽에 변혁을 일으킨 것이다.
이렇게 예수와 성서의 여성들 사이의 상호행위의 관계는 여성측의 주도적 행위로 생겨났다. 성서의 여성이 당시의 ‘명예의 문화’가 형성해 놓은 장벽을 깨며 예수에게 도전한 행위를 보면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상호행위는 대개 사활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예수와 여성들이 신뢰의 끈으로 맺어지고 서로가 만남을 경험하는 생명의 교제(communion)를 성서는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적인 생명의 교환이 있는 곳에서 비로소 복음이 진짜 복음이 된다는 것을 이러한 성서해석의 상호행위적 관점은 밝히고 있는 것이다.
‘생명을 주는 존재’로서의 예수는 당시 ‘명예의 문화’가 형성하던 사회적 질서에서 밀려난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 이것은 당시 권력에게는 큰 위협이었다. 권력이란 가부장제, 계급제도, 독재제도로 지탱된다. 그리고 마가복음을 보면 당시의 권력은 성전중심의 종교나 국가로 상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십자가가 여기서 비롯된 것을 우리는 파악하게 된다.
이렇게 성서의 증언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의 경계파괴의 혁명적 의도에 호응하며 자기를 투신했던 성서의 여성들은 그 행위로서 예수에게 당시의 사회적 장벽을 명백히 드러내는 역할을 했던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의 선교적 과제는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는 장벽과 경계선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를 추궁해내며 드러내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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