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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정의 계절

성서와문화 2009.12.28 15:42 조회 수 : 1369

 
[ 작성자 : 허만하 - 시인 ]


잎진 검은 가지 끝에서 주렁주렁 열린 감이 늦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등황색 등불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은 남성현 고개에서였다. 모처럼의 대구 나들이 바쁜 걸음을 고속도로를 버리고 청도 감나무 마을을 지나는 국도를 잡아 우회했던 것은 올해의 감 빛깔을 만나보고 싶어서였다. 길이 동촌을 지날 무렵 거의 완벽한 변화 속에서도 옛날 대구의 모습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새로 생긴 도로 때문에 갓으로 밀려나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 사이에 끼어 있는 토막으로 남아 있는 샛길을 지날 때였다. 도로 가에 서 있는 굵은 플라타너스 가로수 흰 둥치가 간신히 옛날 모습의 일부를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만 해도 이 일대는 과수원이었고 또 논이었다. 왼쪽 건물 뒤가 바로 동촌이라 불리던 금호강 강뚝이란 사실을 어림으로
짐작 할 수 있었을 뿐, 드물게 버스가 지나기도 하던 한가한 동촌 도로는 사라지고 없었다. 사라지는 대구 교외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던 다른 자리는 아양교 다리 위에서 차창 너머 잠시 쳐다 볼 수 있었던 동촌 풍경이었다. 바위 벼랑과 그 벼랑에서 떨어질 줄 모르던 물줄기의 방향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갈색 숲과 낙엽과 벤치의 배치가 아름다웠던 망우공원은 우리에게는 새로운
것이었다.

 


길이 추억의 단서가 되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던 것은 중앙로에서 잠시 바라보았던 향촌동 길이었다. 젊은 시절의 내 발자국을 담고 있는 그 길은 뜻밖에도 좁아 보였다. 6·25 동란 이후의 스산한 정신 풍경 속에서 저마다 맑은 물줄기를 찾는 한 마리 연어 같이 모여들었던 젊은 날의 우리들 발자국이 살아 있는 거리. 바하와 베토벤의 음악이 있고 새로운 철학을 찾는 열기가 고여 있던 지하실. 저마다 새로운 개념을 하나씩 가지고 찾아 들던 우정이 싹트던 공간. 하이데커, 케에르케고어, 샤르트르, 야스퍼스 같은 이름들이 친구 이름같이 토론에 떠오르던 나날은 아름다웠다. 나는 그 무렵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만나고 카뮈를 만났었다. 저마다 생경한 대로 철학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아름다운 모험이 살아 있었다. 그것이 그 무렵 대구 문화의 한 초상이었다. 대구에 새로운 한 문화가 발생했던 자리라는 긍지가 살아 있는 거리는 둘레의 변모 속에서도 조용히 스스로를 지키고 있었다. 짧은 일별이었지만 그 한 줄기 길이 옛날의 발자국 소리 주인들과의 재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던 그날의 향촌동 길은 약간 쓸쓸한 것 같이 보였다.
엷은 우수같이 보이던 그 분위기가 사실은 쓸쓸함이 아니라 진한 아쉬움이었던 것을 깨달았던 것은 차가 수성들을 벗어나 헐티재를 넘어 청도 풍각에 이를
무렵이었다. 그 때까지 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던 그 날의 향촌동 길을 배경으로 세월에 풍화하지 않은 우정의 얼굴들이 차례 없이 하나 씩 지속적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한결 같이 학생때의 발랄한 표정 그대로였다.

 

실존주의의 흐름에서 조용히 비켜 나 있는 마르셀(Gabriel Marcel 1889-1973)은〈만남〉에서 실존을 찾았었 다. 실존은 고립에 있어서의 실존이 아니라 다른 실존과의 만남 속에서 참된 실존이 된다는 것이 그의 사상이었다.
그런 논의를 함께 했던 김현옥( 현재 서던 일리노이 대학교 교수)과 김성도( 현재 LA 로뎀 장로교회 장로)를 태평양 건너 미국의 LA에서 만나 세 사람이 서로 눈물겨운 포옹을 하게 되리라는 생각을 그때는 꿈결에서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현실 속에 숨어 있는〈예정〉이란 무서운 것이다. 우리들 눈에는 그 예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이성적인 사유를 넘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흔히?뜻 밖에?라 부르는 사태의 배경 또는 밑바닥에는 이런 신비한 힘이 잠재해 있는 것이다. 인간은 너무나 오래도록 합리적인 사고에 길들여져 왔다. 신혼의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가겠다는 성도의 과묵스러운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지하실 녹향 다방> 에서였다. 나는 LA 교외 「라 팔마」에 있는 성도 집에서 자던 날, 인간의 만남과 헤어짐을 지배하고 있는 신비한 힘의 정체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그때 그는 자기를 시골 간이역 역장에 비기는 것이었다. 그 은유를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신호기를 들고 플랫폼에 서서 반가운 만남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 만남 뒤에 필연처럼 따르는 이별을 위하여 다시 기를 흔들어야 하는 안타까움. 그는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마르셀의 만남의 철학은 이런 경위 모두를 초월한 원초적인 의미로서의 실존의 만남이
아니겠는가. 우리들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졌다. 반가운 만남과 함께 슬픈 이별이 있는 공항으로 우리는 달리고 있었다. 한번은 현옥이의 운전이었던 것 같다. 전후의 대구 향촌동에서 있었던 우리들 순수한 만남이 아득히 시간과 장소를 달리한 자리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것은 정말 신기하였다. 그것은 분명 놀라움이었고 계시였다. 창 밖으로 전개되는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 내가
스치듯 바라보았던 향촌동 거리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우리들의 만남은 결코 후진 만남이 아니었다. 이따금 이 『성서와 문화』( 이 귀한 잡지의 주간 박영배는 베토벤의 데드 마스크가 있는 벽면을 등지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떠오른다. 지하실 열세 계단을 내려선 끝에 있던 외짝 문을 밀고 들어서 선 자리, 바로 바른 쪽 구석의 네 자리.)의 지면에서 그들 얼굴을 만나 볼 수
있는 것을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때로 그 얼굴은 옆얼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55년 남짓한 세월이 지난 시간의 지평 위에 떠오르는 그 사진 같은 모습은 때로 흐리다. 그렇다면 존재는 구체적인 윤곽을 가진 견고한 것이 아니라 바람 같은 소식일지도 모른다. 때로 그 소식이 바람 같은 외형을 보일지 모르지만 지상에서 맺어진 우리들 우정의 실체는 유한한 존재의
울을 넘어서는 아름다운 계절로 어디에선가 반드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