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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관한 단상

성서와문화 2009.12.28 15:40 조회 수 : 1516

 
[ 작성자 : 장기홍 - 지질학 ]
 
달라이 라마를 보면 ‘종교란 저런 거로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나라를 뺏기고 쫓겨나 천하에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행복을 설하고 다닌다. 예수가 八福을 가르친 고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무력으로 티벳찾자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의 차원은 다르다. 나라의 운명을 딛고 오직 도를 닦는데 신명을 바치던
석가모니의 차원이 바로 종교이다. ‘카이자의 것은 카이자에게 주고 너희는 나를 따르라’ 했던 예수도 마찬가지다. 초국가적 초민족적 진리의 세계가 종교의
세계인 것이다. 종교는 거룩함을 추구하는 분야인데, 거룩은 영어로는 holy 혹은 sacred라 한다. 전자는 holo-, whole 등 온전한 것을 뜻하고 후자는 crifice(희생), saint(성자) 등과 뜻이 통한다. 동물을 통째로 불태워서 제사지내는 것을 번제(燔祭, holocaust)라 하는데 그 때의 holo 곧 온전한 것은 거룩(holy)한 것이다. 제사음식은 聖別된 거룩한 것으로 여겨진다. 번제(holocaust)나 희생(sacrifice)이 같은 것이듯이 holy와 sacred는 어원은 다르나 다 같이 거룩함을 뜻한다.
우리가 종교적으로 사고하고 생활하면 거룩한 면모를 지니게 될 터이다. 거룩한 척하며 목이 곧고 거만해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다. 부분인 자아가 전체 혹은 온전함을 위해 희생하는 희생양의 자세가 될 때 자연히 거룩해지는 것이다. 스님과 신부는 出家를 하여 저절로 聖別된다. 그렇게는 아니더라도 종교가는 어디가 달라도 좀 달라지는 법이다.
종교를 논한다는 것도 어렵지만 실천은 더 어렵다. 종교는 실천할 수 없는 것을 가르치므로 가장 어려운 것이 종교적 실천이다. 어떻게 희생을 자청할 수 있단 말인가? 다만 최고의 경지에 이른 인류의 대표자들만이 그 실천을 했다. 예수나 소크라테스는 죽을 자리를 향해 자기 발로 걸어갔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마저 돌려 대라.’ 도저히 실천 불가한
것을 실행해야만 종교의 가르침대로 따르게 된다. 그런 지극한 경지는 못 가더라도 종교인이라 하면 무엇이 달라도 좀 달라야 하는데 요즘 보면 너무하다 싶을 때가 많다. 우선 나 자신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려 하면 참으로 쉽지가 않다.
그러나 인생의 최종 목표는 희생에 있으며, 온전한 전체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과정이 인생이다. 인생은 하나의 제사(祭祀) 과정이다. 그것을 깨달으면 종교를 안 셈이다. 말하자면 종교철학에 입문한 것이 된다. 한 세상을 잘 살자고 얼마나 애들을 쓰는가. 우리가 한없이 귀히 여기는 인생이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나 자기만을 위해 산다. 그러나 알고 보면 부지부식간에 누구나 예외 없이 번제를 몸소 실천하고 있음이다. 자각하든 않든 관계없이 제사는 진행 중이다. 이것은 자연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그 귀한 인생의 본질을 깨달으면 거룩한 가치에로의 길이 열린다. 종교는 그 깨달음을 위해 있다. 만민이 다 같이 그것을 깨닫게 되기 위해 종교가 있다. 철학적으로 깨달음에 이를 사람이 몇이란 말인가? 그래서 천지조화는 사람들이 남녀를 이루어 사랑의 공부를 하도록 점지했다. 비근하게 살아가는 과정에서 인생공부를 좀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종교와 사랑을 실천할까? ‘일흔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셨는데 실행은 참으로 어렵지만, 나이를 먹어 가면 성낼 힘이 줄어서라도 용서하는 길 밖에는 없고, 죽었다 치고 남은 혈기를 누르면 거듭 거듭 용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거기 비하면 ‘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하신 말씀은 더 따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죽을 때 무덤으로 가져가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려운 것이 그것이다. 어렵다 어렵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죽음이 삽시간에 빼앗아 버리기 전에 내 손으로 나누어줄 방도를 찾아야겠다 하는 생각을 나는 차츰 더 자주 하고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상당한 부자를 연상할지 모르나 사실 내가 가진 것은 수천 권의 책과 서재이다. 결국은
도서관에 기증을 하게 마련일 터인데 그것을 선뜻 내어놓기가 이토록 어렵다는 것을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으리라. 책이 아까워서라도 죽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경이다.
무소유를 일찍 깨닫고 아무 것도 소유치 않았더라면 고민이 없었을 것도 같다. 어떻게 하면 종교적으로 살 것인가? 일찍이 종교를 몰랐더라면 고민이 없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느님, 내 祭物은 찢어진 마음 뿐, 찢어지고 터진 마음을 당신께서 얕보지 아니하시니....’ 이 시편 51장 17절은 옛 번역도 그대로 좋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傷하고 痛悔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 하시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