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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모순과 절망과의 싸움

성서와문화 2009.12.28 15:36 조회 수 : 1500

 
[ 작성자 : 박영배 - 신학 ]

사람의 인격이란 끊임없는 자기모순과 절망과의 싸움 속에서 자라고 성숙한다. 우리는 이러한 삶의 흔적을 성서에 나타나는 많은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삶에서 보게 된다. 실로 살아 있는 사람이란 자기의 삶의 모순과 절망과 더불어 싸우지 아니 해도 되는 그런 중성적인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성서는 사람이 가장 적나라(赤裸裸)한 자기의 실상을 드러낼 때, 즉 자기의 약함과 초라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때가 하느님 앞에 가장 가까이 있는 때라 한다.
로마서 7:15-25의 말씀도 위대한 신앙과 인격의 소유자인 바울의 깊은 고뇌와 절망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바울은 옳은 것을 알고 그것을 행하려하나 행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며, 악을 알고 그것을 행하지 않으려 하나 행하고 말았다고 고백한다. 그러기에 그는 자기의 분열된 인격에 괴로워하며 절망했다.
그는 또 자기의 한 인격 속에 선과 악이 서로 싸우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끄는 것 같은 갈등을 경험하며, 선을 보면서도 행하지 못하고 악을 알면서도 거부하지 못하는 자기의 무력함과 의지의 나약함에 절망하며 탄식했다. 바울의 이 삶의 경험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경험이기도 하다. 옳은 것을 아는 것이 옳은 것을 행하는 것이라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데 바울의 고민과 우리의 고민이 있다. 이는 마치 병에 대한 진단과 병명은 알아도 그 병을 근본적으로 낳게 하는 구체적인 처방이 없는 의사와도 같다.
오늘의 세계는 사람의 생각이 어떠하며, 왜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가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새 학설과 과학은 계속 쏟아져 나오지만 그 모든 지식이 인간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새 지식이란 인간에 대한 기계적인 설명에 불과한 것이다.
바울은 계속 고백하기를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하며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죽음의 골짜기이서 구해주랴.” 했다. 이 탄식하는 영혼이 인간의 실존적 모습이며 ,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실로 치열한 영혼의 투쟁이다. 그러나 이 영적인 투쟁은 귀중하다. 세속에 물들어 이상을 상실한 사람은 투쟁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울의 삶의 끝없는 모순과 절망과의 싸움은 그에게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높은 이상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도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이와 같은 정신적이고도 영적인 투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종교적 의무에 성공한 사람이며, 흠 없는 율법을 지킴으로 자기의 의로움에 만족한 사람이다. 즉 형식논리 상으로는 완벽한 삶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자기 내면에 깊이 도사리고 있는 자기모순과 위선, 처절한 절망감과 죄를 대담하게 직시할 수 있었다. 정직한 자기 발견의 순간이다. 그러나 바울이 정직한 자기 모습을 바라볼수록 자신의 힘으로는 이 싸움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은총과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기에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감사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 자신의 삶의 모순과 갈등, 절망과의 싸움을 멈출 수 없다. 그러나 이 치열한 싸움에서 우리 자신의 무능과 죄를 절감하기에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위탁하게 된다. 신앙은 바로 이 은총에 대한 감사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