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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를 굽다보면...

성서와문화 2009.12.28 15:35 조회 수 : 1526

 
[ 작성자 : 이종수 - 도예가 ]

지난 5월 30일 밤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 전야제가 열리던 날이었습니다. 막바지로 달아올라 막이 오르기 직전의 그 분위기는 한마디로 표현하여 축구전쟁이라 할까요. 만천하에 선전포고라도 하는 것 같은 긴장감이 온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것만 같았습니다. 더욱이 그 곳 둘레에는 인종과 문화와 종교를 초월한 지구촌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빡빡하게 둘러싸인 자리에 열띤 취재경쟁으로 몰려든 보도진들로 하여금 그야말로 세계인들의 시선이 우리나라에 쏠려있던 그런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 날 밤 그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렸으며 거기 쏟은 정성 또한 하늘도 감동시킬 만큼 있는 힘을 다했다고 보아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따라 심상치 않은 날씨가 당장 폭우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실은 그 시각에 내가 있던 시골산촌의 가마근처에는 가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기에 더욱 마음이 조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천만 다행스럽게도 전야제가 열리고 있던 서울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하니 그 어찌 은혜로운 축복이 아닐런지요. 만일 그 날 밤에 큰비라도 쏟아져 내렸다고 가정한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그 곳 행사장의 분위기에는 애쓴 보람도 없이 엉망이 되었을 것은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일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그날따라 비가 오느냐 오지 않느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늘의 뜻에 딸린 것이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정한 약속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행사장의 어디에서 언제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기도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막다른 골목에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 우리네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니던가.
하기야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불가능이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그러나 창조주 하느님 앞에서는 나약한 존재라 할까요. 무엇하나 이렇다하게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장 하루에도 몇 번씩 밥을 먹지만 한 끼 밥을 먹고 나면 얼마 후 배가 고파지면서 허한 배를 다시 채워 주어야만하듯이 어딘가 부족하고 갈증이 나는 마음을 다시 보충시켜 주어야만 하는데 여기에도 하느님의 은총이 뒤따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기 도자기 일을 하다보면 자주 어디에서나 하느님의 소리가 바람을 타고 스며드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합니다. 화전민처럼 하는 일이 불 때는 일이라서 그런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게 될 기회도 비교적 잦구요. 아무튼 바람에 바싹 말린 땔감나무를 준비해 놓고 가마에 불 땔 날을 잡아 놓았을 때에도 그날따라 예기치 않은 비가 쏟아져 내리게 되면 나무에는 은연중에 누기가 차고 가마에도 습기가 차서 계획된 일을 추진하는데 여의치 않은 차질이 생기게 됩니다. 맑게 개인 청명한 하늘이 우리의 마음을 밝고 상쾌하게 생기를 불어 넣어 주듯이 가마에 불을 때는 날도 크게 영향을 받게 되지요. 더구나 그날따라 불어오는 바람의 강약에 의해서도 훨훨 타들어가는 불길이 이리 쓸리고 저리 몰리기도 하며 때로는 너무 빠른 속도로 불을 빨아 당기기도하고 또 그와는 정반대 현상을 일으키게 됨으로써 봉통(아궁이)과 연통을 오가며 그때그때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불길을 바로 잡아 주게 됩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유연한 노래가락처럼 움직이는 바람의 율동이 장단을 맞춰가면서 오묘한 변화를 일으킨다할까요. 길게도 짧게도 또 높게도 얕게도 그리고는 가마의 천정이 단번에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무서운 회오리바람도 불어 닥치고 심지어는 수십 년 묵은 통나무 뿌리마져 송두리째 파 제켜 버린 강한 태풍을 몰고 오다가도 언제 어디로 그 방향을 돌리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바람 한 점 없이 잠을 잘 때도 있구요.
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아니 시시각각으로 늘 새롭게 변해가고 있는 것이 민감한 바람의 정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불이 이 바람을 타고 요술을 부려 도자기가 태어나게 되는 것인데 거기 따른 몸살도 그리 순탄치 만은 않은 것입니다. 밤을 꼬박 지세우다가도 자칫 잘못 한눈을 팔다가는 불로 인한 큰 낭패를 보게 되니까요. 설기도 하고 죽이 되어 버리기도 하며 어떤 때는 아예 유산이 될 때도 있기 마련이지요. 그러므로 다독다독 어린아이 달래듯이 조심스럽게 접근해 가면서 자연의 섭리를 거슬리지 않도록 정성을 기울여 보살펴 주다보면 그 무서운 불길도 성질을 누그러트리고 나의 뜻에 따라준다고나 할까요. 그렇다고 반드시 훌륭한 도자기가 나와 준다는 보장은 물론 없는 것이구요. 예측으로나마 가늠이야 하지만 그러나 그 결과는 예상을 깨고 빗나갈 때가 잦아 가부간에 굴 문을 열어보아야만 무엇이 되었는지 확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마의 안정을 바라며 열이 식어 내리기를 기다리는 마음, 출산을 앞둔 산모의 초조한 심정에다 비할까요. 아들 딸 가릴 것 없이 그저 잘 생기고 튼튼한 우량아가 순조롭게 태어나와 주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드리게 됩니다.
가마 품에 안겼다가 바깥세상으로 태어나올 도자기도 그와 똑 같은 심정이라 하겠습니다. 이렇듯이 우리 인간은 어느 한 계층에 국한됨이 없이 어떤 일을 하던지 간에 최선을 다한 자신의 의지에다가 하느님의 은총에 부합하면서 꽃을 피우고 견실한 열매를 맺기에 애쓰고 또 그 실현을 위한 꿈을 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월드컵 전야제날 밤에 비가 오거나 오지 않는 것도 또 바람이 부는 것도 시간도 생명도, 아니 축구를 하거나 도자기를 굽는 것도 결국은 그 모두가 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주어진 선물이 아니던가요. 나에게도 부여된 내 몫만한 재능을 보다 더 갈고 닦으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한발 한발씩이나마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너무나도 마땅하고 자연스런 도리가 아닐지 조용한 마음으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