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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약속

성서와문화 2009.12.28 15:35 조회 수 : 1382

 
[ 작성자 : 이화수 - 정치학, 전 아주대학교 교수 ]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하여 정치권에 대한 혐오와 증오로 변하였다. 부패와 부정으로 가득 찬 사기꾼들의 소굴이, 국민의 혈세로 위용 있게 세워놓은 여의도의 의사당이라고 해도 잘못 됨이 없을 것이다. 권력을 이용하여 온갖 중상과 모략, 이권개입, 뇌물수수, 불공정거래를 일삼는 장본인들이 모여 권력싸움이나 하면서 국민들의 아픔과 고통은 외면하고, 시간만 있으면 외유나 하면서, 거드름을 피우는 고급건달들을 모아 놓은 곳이 정치권이라는 것은 그들 자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본인과 아들들의 병역비리나 공공자금을 어떻게 썼는지 조사하자면 겁먹는 자들을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다 밝혀서 진상을 규명해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쪽에서 “너 이렇게 부정했지” 하고 소리 지르면 “넌 이런 부정 안했냐?”고 마주 소리 지르다가 둘 다 제발이 저리면 쓱싹 입 다시고 “없던 것으로 하자”면서 덮어 버리는 식의 유치한 정치꾼들의 놀음판을 지금까지 많이 보아왔고 지금도 보고 있는 것이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가게에서 과자를 훔쳐 먹었다고 비난하자 다른 아이가 너는 전에 시장에서 강냉이를 훔쳐 먹지 않았느냐고 소리 지르며 싸우다가, 선생님이 나타나면 모른 척 입 다물고 도망가는 아이들의 행동과 너무도 흡사한 정치권의 모습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기의 덩어리가 크고 부패가 심하여 국민들의 삶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또한 낭비적이고 소모적인 정치권의 비효율성은 경제, 사회, 문화적 발전에 저해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기관의 장의 자리에 출마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위치도, 권한도 제대로 모르면서 쓸데없는 많은 공약을 하고는 이루지 못하고 파기하게 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한국 정치의 미숙과 정치인들의 무책임을 개탄하게 된다. 국회에 출마하는 자가 대통령이나 되어야 할 수 있는 정도의 약속을 남발하기도 하고, 군수에 출마하는 사람이 도지사가 되어도 하기 어려울 정도의 공약을 하기도 하고, 또 자기 임기 내에 다 해 낼 수 없을 만큼의 많은 공수표를 남발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간에 약속을 실현하지 못하면 신뢰를 잃게 되고 불신이 깊어져서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정치란 본래 한 사회 안에 있는 다양한 이익과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하여 정책과 법을 만들고, 제도화함으로서 국민들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과정이다. 이러한 정치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책임과 권위가 주어진 공직자들이 필요하고 행정, 입법, 사법의 기능을 담당하는 조직이 필요한 것이다.
정당은 사회 안에 산재하여 있는 다양하고 상충되는 이익과 의견들을 수집하고 조정하여 자당의 이념에 맞도록 정책화함으로서 국민들이 선택하도록 하는 사회 안의 갈등해소의 제도화된 기구이다. 그러므로 정당은 반드시 정책정당이어야 한다. 정책은 기업의 상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상품을 생산하지 않는 기업은 위장기업이며, 품질 나쁜 상품을 생산하게 되면 그 기업은 망하고 만다. 정책과 후보자의 능력과 인품과 자질은 국민들이 선택하도록 내놓은 상품이며, 정당의 이름은 상품의 브랜드이다.
우리나라의 정당은 위장기업이거나, 저질 상품을 내 놓고 소비자들에게 과장 광고를 통하여 현혹하고 사기 치는 것과 유사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상품 없이 브랜드만 이용하여 정권을 잡고 부정과 부패의 행각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의 신뢰도가 땅바닥에 떨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자동차의 엔진과 같고, 대통령은 운전기사와 비견할 수 있다. 온 국민을 태운 차를 몰고 희망의 나라를 향해 가야한다. 어떤 기사는 나라를 경제적 낭떠러지로 추락하게 만들고 자기만 살아 빠져나갔다. 어떤 기사는 다른 기사를 무력으로 밀어내고 운전대를 빼앗아 제 마음대로 차를 몰다가 분노한 승객들에 의하여 쫓겨나기도 했다.
엔진이 녹슬고, 부속이 고장나면 자동차는 제 속력을 낼 수가 없다. 또 말썽꾸러기 승객이 기사에게 쓸데없이 시비를 걸어 운전을 방해하면 그 차는 연발하거나 시간을 못 맞추어 연착하거나 도중에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한다. 오늘의 우리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실망만 안겨 주기 때문에 국민들의 믿음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의 지난 반세기를 돌이켜보면 엄청난 발전을 한 것도 사실이다.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는 점점 나은 상황으로 진보하여 왔다. 우리는 그 분쟁과 정쟁의 양상 속에서 발전하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여야당의 폭로와 공방도 민주화되어 가는 과정이며, 어느 정도 민주화 된 것을 의미한다. 폭로도 못했고, 해도 소용없던 군사 독재시대에는 국민들이 완전히 귀머거리요, 벙어리로 남아 있어야만 했다. 일방적 억압이 아니고, 노출되는 갈등 속에서 정화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정치의 약속은 깨끗한 정치, 정의로운 정치,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정치, 희망을 주는 정치, 민주정치로서 국민들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이것은 정치인들의 공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암묵적으로 알고 지향하는 정치의 약속인 것이다. 여러 가지로 미흡할지는 몰라도 이것은 우리의 헌법정신이며, 법의 원칙이며, 민주정치의 원리이다. 이 방향으로 향상되고 있음을 봄으로서 정치에서 스스로 소외되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지켜보고, 참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예수는 기성사회의 부조리와 기득권자들의 횡포에 저항한 것이 그가 죽은 주요 이유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가르침과 삶을 따르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은 이와 같은 그의 행적을 잊어서는 안된다. 권력자들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누구나 공평하고, 정당하게 제정된 법 앞에서 평등한 대접을 받고 살 수 있게 되는 사회가 이룩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참으로 예수의 길을 따르는 방법은 버림받은 자, 억압받은 자, 사회적으로 약한 자들을 돕고 대변하는 삶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정치의 잘못을 개선하도록 발언하고 감시하고 관여하여야 하는가 하는 것을 쉽게 직감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가 잘못 되면 약자 가난한자 억압받는 자의 수가 증대하게 되며, 국민 모두가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경험하였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들이 아는 대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몸과 마음이 편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희망 속에 살 수 있도록 하는 여건을 보장해 줘야한다. 그래서 시민들은 인간화된 정치, 정의로운 정치, 깨끗한 정치, 책임 있는 정치를 원하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는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비인간화된 정치, 부정과 부패와 부조리에 찌든 무책임한 정치가 아닌가. 좋은 기독교인이 되려면 이러한 정치를 바로 잡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도록 시민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먼저 수행해야 한다.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정치의 약속이 지켜지게 하는 강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