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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 방문기

성서와문화 2009.12.28 15:28 조회 수 : 1410

 
[ 작성자 : 전성균 - 미네소타 주립대교수, 의학 ]

미국에서 오는 비행기 속에서 나는 ‘꽃동네’와 오 신부님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서 읽고 감동하여 그 신문을 집으로 가져왔다. ‘꽃동네’에서 사랑이 참된 의미에서 실천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이 있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친구인 이 규헌 원장을 차에 태워 중부고속도로를 달려 진천으로 향하였다. ‘꽃동네’ 표식이 군데군데 보여 방향을 잡아 마침내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꽃동네’를 찾아내었다.
떠나기 전에 전화해 두었더니 사무실에서 전 발트로메오 수녀님이 우리를 반가이 맞이하여 ‘꽃동네’ 안내를 기꺼이 맡아 주셨다. 먼저 우리는 중환자실이 있는 건물로 안내되었다. 아래층에는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고 벽에는 ‘꽃동네’ 역사가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한 생명이 절망에서 소망으로 변신되는 과정과 그 일을 시작하신 오 신부님과 그에게 영감을 주신 최 귀동 할아버지의 역사적인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윗층으로 올라가면 중환자실이 있는데 80에서 90세에 이르는 환자들의 눈은 맑았고 비록 몸은 쇠약했지만 영혼의 자유로움에서 오는 평안함을 볼 수 있었다.
전 수녀님은 우리를 장애인 병동으로 안내해 주었다. 각종 신체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그들의 몸은 불편했지만 표정은 밝았고 그 중에 한 시인은 문단에 추천된 자작시를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불편한 손으로 서류 묶음을 뒤지고 있었다. 우리는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그의 꼬부라진 손을 힘 있게 잡았다. 이러한 역경에서 시를 쓰고 문단에 추천되다니 그건 대단한 일이다. 진심으로 축하의 뜻을 전하고 복도를 지나 큰 홀로 갔다. 거기에는 장애인들이 그린 그림, 공예품, 시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모두가 그들의 타고난 재능과 남다른 노력의 결정을 나타내어주는 훌륭한 작품들이었다. 이윽고 “나는 행복하다”라는 시를 쓴 배 영희씨를 만났다. 그는 19세에 뇌막염을 앓아서 전신마비가 되고 실명을 한 34세의 여인이다. 앞 못 보는 맹인이었지만 마음의 눈은 활짝 열려있어 우리를 믿음에서 오는 평안함에 가득찬 미소로서 환영해 주었다. 그의 시는 다음과 같다.

 

나는 행복합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고
아무 것도 아는 것 없고
건강조차 없는 작은 몸이지만
나는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죄악
피해갈 수 있도록 이 몸 묶어주시고
외롭지 않도록 당신 느낌 주시니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세 가지 남은 것은
천상을 위해서만 쓰여질 것입니다.
그래도 소담스레
웃을 수 있는 여유는
그런 사랑에 쓰여진 때문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우리는 육체적으로 불우한 한 영혼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어 승리한 모습을 배 여사에게서 보았다. 몸이 멀쩡한 우리들이 얼마나 많은 불평을 하고 사는가 부끄러운 일이다.
이어서 언덕바지를 조금 더 올라서서 있는 사랑의 연수원 건축현장으로 인도되었다. 산을 깍아서 만든 광장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넓은 터 양쪽에 큰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즉 한쪽은 사랑의 연수원이요, 또 한쪽은 1,000명이 숙식할 수 있는 생활관이다. 거기서 우리는 현장지휘에 나서신 오 웅진 신부님을 뵈었다. 인사가 끝난 후 오 신부님은 우리를 공사가 덜 끝난 연수원으로 안내하시며 그의 20년간 쌓아온 철학을 간략하게 설명하셨다. 즉, 개인, 가정, 국가, 인류가 반듯하게 발전해 나가는 것이 이 땅에서의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불가결한 요소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연수원은 상기한 네 분야의 전시관과 집회 장소를 마련코자 건축 중이라는 설명과 함께 장래에 대한 소망을 열띤 표정으로 피력하셨다. 이 사람도 이 모든 사업의 근원에 하나님이 주신 생명에 대한 경외의 사상이 뒷받침해야 된다고 부연하였다. ‘꽃동네’가 이제는 인생의 근본문제 해결의 바탕이 되는 교육에 도전하여 사회악을 제거시키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굳건한 결의를 오 신부님을 통해서 읽을 수 있었다. 막사이사이상의 수상을 앞두고 인류 전체를 위한 원대한 꿈을 지니신 오 신부님의 말씀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하산하는 길에 우리는 ‘꽃동네’ 부속 병원의 의사이며 수사이신 신 상현 박사의 영접을 받고 저녁식사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도 ‘꽃동네’의 장래에 대한 토의가 있었고 2,500명이나 되는 노인 환자를 대상으로 노인병 연구의 필요성도 강조되었다. 어쩌면 이 곳에도 국제적인 수준의 노인병 연구소가 세워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노인들의 질환은 육체적인 것 뿐 아니고 정신적인, 심리적인 문제가 수반되니 여기서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전 세계의 노인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는 기초적인 지식을 창출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벅찬 감격을 안고 ‘꽃동네’를 나섰다.
초가을의 화창한 어느 주말, 나는 ‘꽃동네’를 두 번째 방문하였다. 미국서 나온 아내가 꼭 보고 싶다고 해서 함께 갔다. 낯익은 전 수녀님과 반가이 재회하고 다시 처음 갔을 때와 비슷한 안내 코스를 밟았다.
마지막으로 가본 ‘천사의 집’에는 천사와 같이 귀여운 아이들이 수십명 기거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 곳에 온 아이들은 미혼모가 생명을 중절시키지 않고 태어나게 해서 데려왔으니 없어질 생명이 살아남은 귀한 생명들이라고 전 수녀님은 대견해 하였다.
우리 방문객에게 맑고 반짝이는 눈으로 안기고 싶어 하는 그 순박한 생명들을 대하면서 다시 한번 이 세상의 부조리를 실감하였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야 할 그 아이들을 돌 볼 일손이 모자람도 보았다. 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끊임없이 전국에서 몰려오지만 그래도 일손은 늘 부족하기 마련이다.
‘꽃동네’는 이와 같이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그 기회를 통해서 많은 것을 삶에서 배워가는 일의 연속을 통해 사랑의 실천운동 확산의 큰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개원을 앞두고 신축공사의 마무리를 짓고 있는 사랑의 연수원을 다시 찾았다. 담당 신부이신 황 안드레아 신부님을 현장에서 만나서 다시 한번 연수원의 장래 계획을 들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인류구원의 역사를 이루셨고 잡히시기 전 마지막 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섬김의 삶을 몸소 보여 주셨다. ‘꽃동네’ 군데군데 피어있는 코스모스와 함께 ‘꽃동네’ 전체가 이 섬김의 향기로 가득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꽃동네’에서 말없이 상처받은 생명들을 위하여 그 어려운 섬김의 삶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인생의 영웅들이다. 남이 못하는 어려운 일들을 믿음에서 오는 기쁨과 사랑으로 묵묵히 하고 있는 것이다. 떠나기 전 황 신부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즉, “이제 ‘꽃동네’는 카톨릭의 것만이 아닙니다. ‘꽃동네’는 하나의 사랑의 국민운동의 본거지로 세계로 뻗어가야 합니다.”
우리도 이 말씀에 동의 하면서 앞으로 있을 여러 가능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많은 생각을 하면서 ‘꽃동네’ 동산을 하직하고 초가을의 아름다운 석양녘에 서울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