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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함께 물과 함께 도자기를 구워주소서

성서와문화 2009.12.28 15:27 조회 수 : 1541

 
[ 작성자 : 이종수 - 도예가 ]

불과 20여 년을 지나는 동안에 내가 살던 갑천 강변에는 백로도 물오리도 다 사라져버린 채 간간이 살아남은 물고기마저도 피부병에 걸려 몸살을 앓고 있으니, 그 다음은 또 무엇이 없어져야만 할 차례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철길 넘어 뒷산에서도 기가 막힌 장면이 또 하나 벌어지고 있습니다. 산을 파고 쓰레기를 묻는데 자그만치 그 규모가 웬만한 산 하나를 거꾸로 뒤엎어 놓은 것 같다고나 할까요. 덤프트럭이 줄을 지어 쏟아 붓고 다지고 또 그 위에 흙을 덮기까지 3년은 걸렸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 위에 자동차 폐차장이 버젓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그야말로 눈감고 아옹 하는 식인데 땅속은 어찌 되었을까요. 지나가던 나그네가 발걸음을 멈추고 맑은 물에 목을 축이던 산 아래 길, 옹달샘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지금은 연탄 트럭이 까만 탄가루를 날리며 사정없이 달리는 살벌한 모습으로 뒤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새벽이면 강가에 나와 투망으로 팔뚝만한 잉어를 잡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동안 맑은 물에 담가두었다가 기름 냄새가 빠져나가게 되면 시중에 내다 팔았다는 것입니다. 생각만 하여도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는 강물도 강바닥도 또 땅바닥도 물고기도 아니 사람의 마음까지도 왜 이렇게 오염되어 버렸는지 몸서리칠 만큼 비참한 참상들이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뎌진 사람들의 마음은 남의 일 바라보듯 아랑곳 하지 않고 돈 되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것 같습니다. 때때로 심한 바람이라도 불면 강에서 스며 나오는 악취가 코를 찌릅니다. 강 건너에 폐수처리장이 들어서 가동한지도 오랜 세월이 지났으나 아직은 흡수량을 감당키가 벅찬 것 같습니다. 나는 이전부터 어느 명의가 나와 병들어 가고 있는 이 주변 산천을 되살릴 수 있길 염원해 왔지만 전과같이 맑은 물에 맑은 공기, 맑은 하늘 밑에서 도자기를 만들게 그대로 놓아두질 않는군요. 나는 나대로 도자기를 만들고 굽고 깨고 또 쏙아 내는 일을 하면서 해마다 가마 주위를 더욱 아름답게 가꾸고자 애를 써보았으나 허탕으로 끝나고, 지금은 밤낮으로 간간이 눈에 띄던 살쾡이도 너구리도 다람쥐도 보기가 힘듭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를 들추어 안됐지만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독일의 비스바덴이라고 하는 곳의 헤르조크 대공원에 들어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다람쥐 한 쌍이 난데없이 나를 보고 달려오기에 손바닥을 내어 밀었더니 스스럼없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사람들을 믿었으면 이렇게 반가운 모습을 지으면서 다가올까요. 또한 8년 전의 일인데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상점 어느 길가에 나앉아 빵과 우유를 들고 있을 때였습니다. 우리네 참새보다 조금 더 큰 새 여섯 마리와 제비처럼 까만 새 두 마리가 내 앞에 있는 차 식탁 위에 날아들어 기웃거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지나다니고 또 내 옆으로는 폭이 3m 가량 되는 다리 밑으로 개울물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마침 청둥오리 20여 마리가 떼를 지어 놀고 있기에 누가 집에서 기르는 것인가 했더니 저절로 날아든 것들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어느 누구 한 사람 건드리는 일 없이 한데 어울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너무나도 당연한 모습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겁던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나는 여기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사람만 보면 깜짝 놀라 줄행랑을 치는 우리네 다람쥐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강변 가장자리에 이따금씩 날아든 물오리를 잡겠다고 공기총을 고나든 사람들의 부릅뜬 눈을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눈 쌓인 겨울산에 농약에 절인 나락을 뿌려놓고 꿩이 먹고 모조리 스러지기를 고대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자주 보아왔기에 하는 말입니다. 백로든 물오리든 다람쥐와 꿩 같은 그 어떤 날짐승들이 없어지고 잡혀가건 말건 그런 것에 마음 쓸 겨를이 없는 것만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보다도 더 엄청나게 큰 덩어리로 묶인 산과 강이 송두리째 짓밟혀 죽어가고 있는 판국에 그런 하찮은 것 가지고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비웃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마음이 싱숭생숭한 때에 또 하나의 생각지도 않은 날벼락이 떨어졌으니 이게 또 웬일인가요. 나의 가마 쪽으로 고속전철 노선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측량을 하던 고속전철 측은 말뚝도 박고 붉은 깃발도 꽂아 놓았습니다. 머지않아 모든 일이 끝날 계획으로 책정되어 있으니 가능하면 하루 속히 다른 곳으로 옮길 준비를 미리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던 그들의 말은 그로부터 8년 세월이 지난 뒤에야 겨우 사실로 나타난 셈입니다. 그 동안에 이런저런 별별 일들이 다 있었지만 결국은 그 노선을 피할 도리가 없는 위치라고 합니다. 길을 들이느라 정성을 다 하였고 나와 함께 고락을 같이 했던 가마가 100년은 고사하고 간신히 20년 만에 끝장이 나고만 셈입니다.
이미 어미닭이 알을 품고 부화하듯이 흙으로 만든 기형들을 품었다가 도자기로 탄생시킨 산모가마. 가마에 어리는 숱한 사연들이 오락가락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가마 속에서 태어나온 자식 같은 도자기들을 사정없이 깨어버린 죄, 단순히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박살을 내어버렸으니 생각하면 살생자로서의 죄책감이 어찌 크다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되나가나 무조건 다 살려줄 수도 없는 것이 나의 입장이 아닌지요. 그렇지 않아도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오염물이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지 않습니까. 강물의 오염, 땅속의 오염, 공기의 오염, 사람의 마음까지도 오염되어 가고 있는 판국에 도자기마저 한몫 끼어 시각적인 공해에 동참해서야 되겠습니까. 마음 아프지만 차라리 내 눈 앞에서 내 손으로 내어버리는 편이 훨씬 마음 편하고 개운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보면 나는 이래도 죄인, 저래도 죄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혹자는 흔히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죄가 있느냐’ 하고 큰소리치며 떵떵거리기도 하지만 조용히 자기가 한 일을 생각해 보면 죄 아닌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무튼 이제 이십여 년 전의 내 가마터는 기적처럼 나타난 감격의 생명수도 또 가마도 작업장도 그 모두가 다 잠시 꿈을 꾸다가 깨어난 것처럼 온데간데없이 말끔히 밀어붙여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겉모습만 언 듯 보면 산천은 잘 정비한 것처럼 보입니다. 쓰레기가 땅속에서 어찌되었던 간에 우선은 강물에 또 다시 백로가 찾아들고 물오리도 되돌아 왔다고 기뻐할 것이 눈에 선합니다.
그러나 그 곳은 알맹이 없는 우렁이 껍데기 같은 것이라 할까요. 한번 가면 두 번 다시 만나볼 수 없는 어머니의 포근한 품안처럼, 한 번 망가뜨린 산천은 회복이 된다손 치더라도 진정한 본래의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설픈 우리의 안목과 즉흥적인 판단으로 밀어붙인 결과는 언제나 우리 모두의 자산을 한꺼번에 버려놓기 십상이었던 전철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