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02년 성서와 문화

디지털 대 아날로그

성서와문화 2009.12.28 15:26 조회 수 : 1522

 
[ 작성자 : 정웅섭 - 한신대 명예교수, 신학 ]

우리는 지금 이른바 ‘디지털(Digital)’ 혁명이 몰고 온 “디지털 환경” 속에 살고 있다.
“숫자를 이용한 표현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형식”이다. 정보량을 길이나 전압 등 양의 크기로 계산하는 ‘아날로그(Analogue)’형식과 대응하는 방식이다. 아날로그 방식은 정확성이 다소 미흡하며, 속도가 처지는데 비해 , 디지털 방식은 엄밀 정확하고 그 속도가 매우 빠르므로 현대인의 감각에 맞다. 복잡한 문자도 단순한 숫자로 변환되어 신속하게 처리되기 때문이다.
디지털 계기류는 어떤 값(양) 십진법과 같은 구분이 확실한 숫자로, 즉 2진수인 0과 1로서 불연속적으로 표시하고 처리한다. 과거의 계기의 지침으로 연속적인 눈금( 예: 시계바늘과 눈금)으로 가리켜 값을 표시해 왔던 이른바 아날로그 방식에 대응하는 디지털은 일반적으로 아날로그 양을 시간 또는 주파수로 변환시켜, 그 시간 또는 주파수를, 디지털(10진법) 방식으로 표시하는 주성으로 되어있다. 그 특징은 아날로그 특징에 비해 측정값을 매우 빨리 판독할 수 있고 또한 오차도 극히 적다. 그리고 측정범위의 변동이 자동화 되어 있어 숙달된 사람이 아닌 아마추어도 조작이 가능하다는 ‘편의성’이 높이 사드려진다.
디지털 혁명은 눈부시게 빠른 컴퓨터 발전이 가져온 자연적이면서도 필연적인 결과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 수많은, 편리한 디지털 기기들 - DTV, DAD, DVT, DVD 등등 -을 향유하게 되었다. 이런 디지털 기기들은 그 신속성, 편의성, 적시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확성이 그 본체고 장점이다. 그러기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선호하고 이것을 통해 즐거움을 더해 가고 있다.
급속히 확산되어 가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필자의 생활 주변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특히 음악듣기와 영상보기에서 그러하다. 아날로그식 오디오 장치- 새로 나온 CD음을 고음질로 빼내어 준다는 신형앰프와 고성능 CD프레이어와 A-D 캔버터 등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영상해상도가 높고 음질이 충실한 대형 TV스크린에다 7채널의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인 DVD 장비가 갖추어졌다. 이 디지털 음악/ 영상시스템은 확실히 나의 음악듣기, 영상물 보기에 참신하고 전대미문의 커다란 감흥을 준 것은 사실이다. 보다 오랜 시간 이 새 기기에 매달렸고 많은 작품을 재생해 듣고 보곤 하였다. 그 정확한 원음 재생능력에 놀랐고 명석한 화질에 빠져들곤 했다. 나의 감성은 온통 디지털이 선사한 황홀함에 젖어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요즈음 나는 디지털에 다가가는 손길이 무디어지고 있고 어느새 다시 아날로그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클릭하면 오케이’ ‘원 텃치면 오케이’인 디지털의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 기기 앞에서 길고 정중한 절차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기계의 전원을 켜고, 진공관에 불이 들어오고 숙성의 긴 시간을 참아낸다. 먼저 뿌연 LP판을 정성껏 꺼내 블러쉬로 천천히 닦아낸다. 이제야 제 속도로 올라와 회전하고 있는 턴테이블 위에 판을 올려놓고 픽업이 정확히 음반 제 위치에 내려앉도록 신경을 쓴다. 볼륨 놉을 올린다. 소리가 퍼진다. 이 소리! 분명 반응이 빠른 정확 무오한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나를 포근히 감싸고 마음의 끝을 정성껏 어루만진다. 음악성이 높고 깊은 소리다. 디지털의 즉물적(卽物的) 처리는 실제 원음, 원상과 매우 가까울지 모르나, 그것은 너무 세련되어서인지 차갑고 친근감이 없다.
아날로그 기기에 다시 손을 대는, 그래서 길고 긴 절차 - 어떤 의미에서는 일종의 ‘제의적(祭儀的) 행위’ -를 또 다시 밟는 자신의 모습에서 디지털 첨단시대에는 걸맞지 않는 자기를 보는 것이다. 씁쓸한 한편 야릇한 느낌이다.
아날로그란 연속변량의 함수, 곧 자의 길이, 축의 회전각, 전류 등을 물량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여기에선 절대에 가까운 정확, 정량이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기에 ‘아날로그’의 어의는 ‘상이(相以)함’을 뜻하지 ‘꼭 같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약간 뒤쳐짐, 약간 맞지 않음, 약간의 차이가 곧 아날로그가 지니는 매력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간적이고 또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의 세계는 디지털과는 달리 무서운 정확성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상대방을 저울질하거나 밀어대는 자리가 아니다. 조금은 부족함으로 모자람으로 상대를 포용하는 마음의 넉넉함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원칙 없는 자세로 머무적대는 것도 아니다. 견실하고 애정 넘친, 그러면서도 탄탄한 음악성과 풍부한 예술성을 솔솔히 풀어내는, 그래서 그 음악의 흐름 속에 마음 놓고 빠져들게 한다. 이런 재주에 있어서는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당해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아직은’ 말이다. 내용처리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하는 디지털의 그 똑똑이가 더욱더 성숙하려면 기다림과 여유와 인간성 깊은 면모들을 아울러 지녀야하겠다. 적어도 영상재생과 특히 음악재생에 있어서 만큼은 더 큰 발전(아날로그적인 순수 원숙의 자리로 후퇴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단지 사물을 효과 있게 빼내는 (output) 데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인 향기와 정서가 풍기게 하는 데 궁극의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쓰다보니 이 글이 한낱 새로운 세상 - 디지털 혁명이 가져다 준 빠르고 놀랄만한 변화에 익숙치 못하거나 따라가기 힘든 사람의 넉두리가 되고 만 것 같다. 하지만 신학하는 자세와 신앙의 경지도 역시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적인 세계가 아닐까?
나는 ‘디지털’세상에서 아직도 ‘아날로그’ 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