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02년 성서와 문화

종교와 과학이 하나 되는 삶

성서와문화 2009.12.28 15:26 조회 수 : 1457

 
[ 작성자 : 장기홍 ]


만일 인류역사상 자연과학이 먼저 생겨나서 원시시대나 고대에 이미 과학이 발달되었더라면 종교는 어떤 모양이 되었을까? 종교가 과연 생겨나기나 했을까? 그러나, 종교보다 과학이 먼저 생겨난다는 그런 순서는 가상일뿐이다. 종교는 본래부터 있었고 과학은 나중 생겨났다. 과학이 없는 상태에서 종교가 생겨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종교에는 비과학적인 면이 많고 신화가 많다. 이는 현대인인 우리가 종교를 향하여 너그럽게 이해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신화를 잘 해석하여 뜻을 헤아려야 한다. 종교 속에 있는 고귀한 측면만을 받아 가지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 그러나 종교 쪽에서는, ‘우리의 비 과학은 그대로 둘테니 너희는 좋은 측면만 추려서 가지면 된다’ 하고 배짱을 내밀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된다. 이 경우 하늘도 아버지도 다 상징이니 새겨서 듣고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사도신경을 보면 상징이 아니라 사실로 알고 외우도록 되어 있어 현대 청소년들은 오해하기 쉽다. 예수는 동정녀(처녀)에게서 났다, 육신으로 부활, 승천하여 하느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최후심판 때 재판장으로 오신다 등의 조항은 기독교 역사의 유물쯤으로 제쳐두는 것이 좋은데 교회지도자들은 주일마다 신도들에게 그것을 외우게 한다. 지금도 그런 조항들을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것들은 사실일 수는 없다. 과학 이전 사람들이 만든 유물일 뿐이다. 그런 것을 가지고 소위 ‘신조’라 하여 그것을 믿어야 예수교 신자라 정의하는 것은 하나의 억지지만 교회마다 매주 암송되고 있다. 교파들은 서로 이단이라 지탄하는 풍조가 있어서 자기네가 이단이 아니고 정통正統임을 과시하기 위해 열심히 사도신경을 앞세운다. 사도신경을 정통의 척도尺度로 이용하는 것이다.
예수는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처녀잉태, 부활, 승천할 뿐 아니라 최후심판 때 천군천사를 앞세우고 풍악을 울리며 재림한다. 이런 이야기는 童話적 문학적 가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을 현대인에게 그대로 믿어라 한다면 큰 부담을 주는 것이고 기독교를 전파하는데 장애가 된다. 남들을 따라서 그대로 암송할 수는 있지만 거짓말인 줄 알고 외운다. 그것을 오래 하다보면 타성에 따라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거짓에도 익숙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긴다. 기독교 교리의 별 가치 없음을 자인하게 된다. 쓸데없는 타성이 기독교 자체를 허무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회고하면 꼬박 반세기 동안을 필자는 자연과학 특히 지질학의 수련을 쌓아왔다. 그보다 더 일찍 나는 어려서부터 내 몸에 종교를 가져왔던 것이니, 지금껏 이 둘을 안고 뒹굴어 왔다면 지금처럼 ‘종교와 과학’이 문제가 되는 때에 이 주제로 무슨 한 마디 말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은 내 한 몸 안에서 너무나 일체가 되어 있기 때문에 분간하고 대조하여 말로 나타내기가 어려운 것이 문제다. 이 사실은 벌써 종교와 과학은 하나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 하나의 우주, 하나의 세계 안에 있는 종교요 과학이라면 이 둘은 그다지는 엉뚱하게 다른 것일 수는 없다. “종교는 종교, 과학은 과학”이라는 흔히 듣는 말은 종교와 과학이 다르다는 점에서는 옳으나 다르기만 하다는 뜻이라면 옳지 않다. 내 경험으로는 종교와 과학은 하나이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근본주의적 기독교와 과학은 극도로 서로 다르다. 어쩌면 될까? 과학을 받아들이고 근본주의를 탈피해야 함은 물론이다.

 


과학은 인류 역사상 최근의 일로서, 과학이 없던 옛날에는 모든 것이 종교 일색이었다. ‘종교와 과학’의 문제는 과학혁명 이후 과학의 세상이 되면서 대두되었다. 위협을 느낀 기독교(특히 카톨릭)가 과학을 박해하게 되면서 ‘종교와 과학’의 문제는 첨예한 것이 되었었다.
오늘날 우리는 과학과 기술이 지배하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 이전에는 삶, 죽음, 우주, 우주와 사람의 관계 같은 궁극적 문제를 종교가 설명했다. 다만, 과학 이전의 일이므로 비과학적인 설명이 많을 것은 당연하다. 과학이 사실을 밝혀놓은 지금에는 모든 것이 과학에 의해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종교는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설명할 뿐 아니라 그 이상이다. 의미를 추구하고 궁극적 관심사를 몸소 실천한다.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는 상징적 행위(儀式)를 한다. 예배 예불이 바로 그런 것이다. 기독교의 세례와 성만찬, 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 불교와 이슬람교에서는 꿇어 엎드려 절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선 사회사업 등을 통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 장례를 통해 삶과 죽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 종교의 특징이다. 종교의식을 통해서 사람들은 우주와의 관계를 확인하고 우주와 합일한다. 삶의 의의의 실현이다.
그렇고 보면 과학과 종교는 그 영역이 다르다. 그러나 다를수록 서로 참고하고 서로의 거울에 비추어 자기를 반성해야 한다. 과학은 과학자가 하는 일인 까닭에 과학자들이 방종하면 과학이 기괴하고 방종한 발달에 이를 수 있다. 종교를 참고하여 바른 길을 가야 한다. 한편 종교는 과학을 받아들여 몸에 익혀서 종교의 본연을 더 살리도록 해야 한다. 서로 접근하여 종교와 과학이 하나가 되도록 나아가야 한다. 이는 부부가 일체가 되는 것과 같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더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