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02년 성서와 문화

기와 조각 하나의 상상력

성서와문화 2009.12.28 15:25 조회 수 : 1508

 
[ 작성자 : 허만하 - 시인 ]


지리산 피아골에 부도의 부도라 일컬어지는 연곡사 (구례군 토지면) 동(東)부도를 만나 보려 찾아갔던 것은 지난 한겨울 이슬비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던 눈발은 남해 고속도로의 남강 휴게소를 지나자 서서히 이슬비로 바뀌기 시작했다. 자욱히 물안개에 가린 섬진강 모습을 처음 보는 딸애는 조심스럽게 지리산 산자락을 찾아 들었다. 그늘진 풀숲에 희끗희끗 눈 자국이 남아있는 아름다운 얼룩을 바라보며 축축한 자연석 돌계단을 부축으로 간신히 올라섰을 때 고동색 밤나무 낙엽들 틈새에서 호젓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동부도의 정교한 조각을 구면처럼 대면할 수 있었다. 탑신 좁은 공간이 담고 있는 구만리 하늘을 날고 있는 가릉빈가의 부드럽고도 강경한 힘을 만났을 때 문득 억새풀 서걱이던 가을의 경주 논두렁길이 떠올랐다. 그 때만 하더라도 논두렁 돌무더기에는 때로 깨어진 기와 조각들이 끼어 있었다. 그 조각을 집어 올리던 아내 저고리 옷고름이 맑은 하늘을 흔들던 가을바람에 펄럭이던 모습까지 떠올랐다. 대개가 ?쭉대기?이어서 다시 제 자리에 버려졌지만 젊었던 우리들은 가릉빈가랑 천인 과 천마 등 한국적 상상력이 낳은 아름다운 기와 무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절터를 부는 바람과 사귀었었다. 한 겨울 이슬비 속에서 들릴락 말락한 가릉빈가 날개 소리를 들었을 때 문득 한편의 시가 떠올랐다. 그것은 흔히 있는 경험이 아니었다. 이번에 격조 있는 한 문예지(문예중앙 여름호)의 청탁에 의하여 그때 떠올랐던 시상을 정리하여 송고할 수 있었다. 피아골 산골짝 조각 솜씨를 찾아보았던 그 날 우리 나들이는, 풍족하지 않는 살림 속에서도 정신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길 위에 섰던 우리들 젊은 날을 복원 시켜주었다. 그것은 은혜였다.
나들이 기념으로 지표면에 흩어져 있던 기와 조각을 살피던 아내는 쭉대기 기와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붉게 변색한 기와는 불길을 입었던 증거가 된다. 우리들이 물결무늬라 이름지은 ( 흔히 보는 동심원 같은 부분이 다른 물결에 가려 잇는 형태가 되풀이 되는 무늬로 평와(平瓦) 등쪽 무늬-미끄럼을 막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배쪽으로는 흔히 그 시대 그 고장에서 만든 삼베 자국이 남아 있는데 섬유 굵기가 저마다 다르기 일수다.) 낯익은 무늬가 있는 조그마한 기와 조각이었다. 이 평범한 무늬와 동일한 무늬를 만났던 것은 뜻 밖에도 멀리 떨어진 충남 안면도 땅 끝 (태안군 고남면)에 있는 고남 패총 박물관 ( 금년 4월 3일 개관)에서이었다. 고남리라는 이름 없는 고장에서 발굴된 선사시대 출토 유물을 주로 전시한 아담한 지방 박물관의 체험 학습실에서 사용했던 평와 탁본 한지 한 장을 방문 기념으로 가져 온 우리들은 우연히 두 쭉대기 기와조각의 물결무늬가 동일한 사실을 알고 놀란 것이다. 같은 기와 틀을 사용했을 리는 없을 터인데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 기와 조각과 태안반도 고 건축에서 나온 기와가 꼭 같은 물결무늬를 보이는 것은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지난 봄날에 이름 없는 박물관 실습실에서 아내가 뜬 그 기와 조각 탁본 무늬를 바라보면 안면도 땅 끝 조그마한 포구 영목항 잔잔한 앞 바다에 떠 있던 섬 그늘과 장난감 같이 움직이지 않던 몇 척 어선이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그 위에 아스럼하게 경주 들녘을 불던 바람이 겹치기도 한다.

 


우리는 또 다른 정교한 조각 솜씨를 전남 화순 이양면에 있는 아담한 사찰 쌍봉사에 뒷산 산허리에 있는 철감 선사 부도탑에서 만나 볼 수 있었다. 이 부도탑을 이 자리에서 이야기 하게 된 이유는, 1) 이 탑이 두 팔을 쳐들고 춤을 추면서 날개를 펼치고 날고 있는 환희의 가릉빈가 (나는 그렇게 이름 짓고 춤추는 가릉빈가라는 시를 쓸 수 있었다.)를 탑신에 조각하고 있는 점. 2) 옥개석 조각이 정교하여 지붕 기와골이 있을 뿐 아니라 기와 끝 와당에 백제 와당에서 흔히 보는 홀 잎 연화문 무늬를 조각하고 있는 정교한 기법을 여실히 표현하고 있는 점들이 다른 부도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 부도(국보 57호)를 연곡사 부도(국보 53호)보다도 더 애착을 가지고 살펴볼 수 있었다. 이 부도탑 조각을 만난 자리에 주저앉아 잎진 백일홍 나무 가지 끝을 스치는 산바람을 바라보며 나무뿌리에 발이 걸리면서도 아내의 부축으로 겨우 비탈길을 걸어 올라오기를 잘했다는 성취감에 흐뭇해 할 수 있을 만큼 이 부도는 아름다웠다. 이 고장 이름 없는 한 석수 솜씨에서 나는 돌에 새겨진 와당 무늬를 처음 보았던 것이다. 영산강 상류의 여윈 물줄기가 스러지는 야산 평지에 자리 잡고 있는 쌍봉사는 아름다웠다. 나지막한 담 너머 목조의 탑이 솟아 있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탑이 아니라 목조의 대웅전 모습이었다. 몇 번의 병화에 불타버린 대웅전을 다시 지은 것이라는 설명판을 읽고 문득 시의 첫줄이 떠올랐다. 이 자리에서 그 첫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불길이 휩쓸었던 쌍봉사 대웅전 훤칠한 키가 잿더미가 되어 무너질 때 불꽃도 잿더미 위에서 멸망했다.” 나는 대상의 소멸 위에서 화려하게 꽃피는 불꽃도 그 대상의 소멸과 함께 멸망하고 만다는 평범한 이치가 그날따라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 잿더미 속에서 두 손을 쳐들고 춤을 추며 날아오르는 부활이 철감 선사 탑에 조각되어 있는 날개를 단 동자 같은 가릉빈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떠나는 일은 낯선 바깥과 열린 마음으로 사귀는 일이다. 이 사귐을 통하여 생소했던 지형은 낯익은 풍경이 된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그리움으로 나그네는 길 위에 선다. 그것은 바깥을 향한 나들이가 아니라 사실은 자기의 내부를 향한 발걸음이란 것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말했다. 나들이에서 돌아 올 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어느덧 달라져 있는 것이다. 자기의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을 찾아 노르망디로 마차를 굴렸다는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발견을 위한 길은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눈으로 바깥을 바라보는 데 있다는 말을 했다. 하찮은 일에 감동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현대는 잃어가고 있다. 무주 구천동에서 돌아오며 넘게 되는 빼재에서 내려다보는 거창 쪽 전망은 아름답다. 흘러내린 길의 아득한 행방을 바라보기도 하고 겹쳐진 길을 내려다 볼 수도 있다. 재는 고갯마루 높이가 가지는 전망이 열어주는 새로운 세계뿐 아니라 휘어지는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가지는 많은 모서리가 숨기고 있는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드릴을 가지고 있다. 재를 하나 넘는 일은 미지와 사귀는 일이란 면에서 깨어 있는 정신에게는 조그마한 나들이와 비길 수 있다. 이번 빼재에서 아내는 길가에서 불두화 흰 꽃송이를 보았다 했다. 우리는 제 작년 강원도 운두령을 넘었을 때 산협의 창촌리 길가 외딴집 담 자락에서 보았던 불두화 안부를 생각했다. 길 위에 서는 일은 단순히 경치를 만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정신의 깊이와 넓이를 키우는 일이다. 성장한 정신은 평소에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하찮은 일에 주목한다. 참된 아름다움은 대체로 이름 없는 곳에 느닷없이 나타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