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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눈으로 "창세기"보기

성서와문화 2009.12.23 19:59 조회 수 : 1868

 
[ 작성자 : 박영배 - 신학 ]

 

오늘날 세계교회와 신학계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관심의 하나는 인류가 어떻게 하나 밖에 없는 지구를 보존하며 오늘의 환경오염과 생태계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지구의 전 생명권을 지켜 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특별히 오늘의 이 문제가 기독교와 신학계에 준 큰 파문은 오늘의 환경 오염과 자연파괴, 및 생태계의 위기를 가져온 근본 원인이 기독교 자체에 있다는 주장이다. 즉 기독교가 서구에 전한 창조신앙이 그 주범이라는 비판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창조신앙 내지 창조신학을 비판하는 학자들의 요점은 지금까지 기독교가 전하는 창조신앙의 틀을 전적으로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지난 2천년 동안 기독교가 가르쳐 온 신의 창조설은 너무도 인간중심인 세계관에 기초하면서 모든 창조과정이 인간창조와 함께 완성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인간이 창조의 완성이요, 창조의 면류관이며, 창조에 중심이 된다고 가르쳐 왔다.
그러기에 자연세계는 인간을 위한 실용적인 가치로서의 신의 선물에 불과한 것이지 자연 그 자체로서의 의미와 가치 및 권리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인간중심의 세계관은 오늘의 각종 자연환경의 오염, 생태계 파괴와 더불어 지구의 전 생명권의 위기를 몰고 온 주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주장들이 신의 창조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지난 2천년 동안 가르쳐 온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은 분명히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기독교는 창조신앙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함께 신학적 반성을 요한다는 것이다.
즉 오늘의 세계교회와 신학계는 창조신앙 내지 창조신학의 제반 내용을 다시 한번 새로운 시각으로 성찰할 것을 요청 받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창조신앙(신학)이 지닌 세계관의 문제이다.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타나는 창조 기사의 주된 메시지는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이 그 핵심이다. 즉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계의 중심이며, 그 세계는 인간이 마음대로 지배하고 정복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보존되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다만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의 뜻을 따라 세계를 돌보고 관리해야 할 청지기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려는 세계관은 인간이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차지하고 정복하려는 근대인의 욕망을 신앙적(신학적)으로 정당화해 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별히 창세기 1장 26절의 “다스리다” 라는 말의 본래 의미는 “돌보다” 라는 뜻으로, 그리고 창세기 1장 28절의 “정복하다” 라는 본래의 의미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복을 주신다는 구절과 결부하여서 해석되어야 한다.
즉 인간이 자연을 다스리는 자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자연세계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 돌보고 가꾸어야 할 책임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위에서 말하는 “다스림”과 “정복”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자비한 파괴와 착취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연을 인간의 욕심대로 착취하고 파괴하고서는 인간이 평화와 축복을 누릴 수 없을 뿐 아니라 인간의 생존권 자체가 무서운 재앙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세기의 근본 메시지는 인간이 자연을 돌보고 가꾸면서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소산을 먹고 건강과 행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피조물인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나아가 우주의 전 생명권에 평화와 공생적인 삶을 위한 것으로 해석되어져야만 한다.
다시 한번 열린 마음과 새로운 눈으로 창세기를 볼 수 있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