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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타령

성서와문화 2009.12.23 19:58 조회 수 : 2049

 
[ 작성자 : 아랑. 김현혹 - 써든 일리노이 주립대 교수, 언어학 ]

 

한자권(漢字圈)에 사는 사람들은 글자를 단순한 의사전달의 수단으로만 보지 않고 그것이 실재를 상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실재 그 자체로 보는 경향이 있다해도 그리 과언이 아니다. 넉 ‘사’(四)자를 죽을 ‘사’(死)자와 음이 같다 하여 이를 기피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풍수에 맞지 않는다 하여 궁궐이나 묘소를 옮기고 택지를 바꾸듯이 사람의 운세를 이름 석자로 풀이하는 구습은 아직도 끈질기게 남아 있다.
모르기는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이름 석자에 집착하 는 사람들도 드물 것 같다.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형제들이 돌림자를 같이 쓰는 일은 있어도 까다롭기가 우리 같지는 않다. 나의 경우를 보면, 항렬이 같은 형제와 사촌들은 나타낼 ‘현’(顯)자를 돌림으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끝의 자는 모두 획 속에 흑 ‘토’(土)자가 끼어 있어서, 나는 구슬 ‘옥’(玉), 지금은 타계하고 없는 아우는 터 ‘기’(基), 그리고 사촌들은, 땅 ‘곤’(坤), 가꿀 ‘배’(培)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묘한 것이, 나의 구슬 ‘옥’자에서 맨 위의 한 ‘일’ 자를 빼고 점을 지우면 남는 것이 바로 흙 ‘토’로, 한복판에 의젓하게 자리잡고 있어 나의 장손의 위상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가 하면, 동생의 흙 ‘토’는 터 ‘기’(基)자도 ‘옥’같이 글자의 주간부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글 전체로 보면 하단에 놓여 있어서 우리 형제의 서열의 차를 도식적으로 반영하고있다. 그런데 흙 ‘토’가 한결같이 변(邊)으로 되어있는 사촌들의 끝 이름자는 그들이 족보상으로 엄연히 방계임을 상징하고 있어 직계인 ‘현옥’과 ‘현기’와는 완연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뭐 운세다 운명이다 할 것까지는 안 되지만, 나는 이 구슬 ‘옥’자 때문에 간혹 불편을 느낄 때가 있다. 흔히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여자 분인 줄 알았다는 말은 들어온 터이라 웃고 넘기지만, 학술지에 ‘그녀’의 분석이 이러저러하다 하며 내 논문이 인용될 때면, 4만5천도 넘을 한자들 중에서 하필이면 멀쩡한 대한 남아에게 웬 구술 ‘옥’자가 걸린담 하고 짜증스러워 질 때도 없지가 않아, 고뿔 ‘영’, 길 ‘영’, 영화 ‘영’, 빛날 ‘찬’같은 멋진 글자로 끝나는 이름을 늘 부러워 해 온 터이다. 그러기는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갓난 얘기의 이름 석자 짓는 데에 한자의 생김새에 태어난 년월 일시와 아울러 족보상의 계열까지도 명시해야 했던 옛날 일이고 보면, 집안 장손 이름 끝자를 불가불 구슬 ‘옥’으로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선친의 고충도 여간이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이 되곤 하는 것이다. (옥을 갈고 닦음이라 탁마의 뜻이 있어 좋은 것을 누가 모르랴 마는...)
한자가 표의(表意) 문자인 탓으로 동양 사람들의 글자에 대한 의식이 표음(表音) 문자를 가진 사람들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은 쉬이 이해가 간다. 서양사람들의 이름은 신구약에 나오는 예언자와 사도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는 인물들의 이름을 따르기도 하고, 희랍신화나 옛 역사에 등장하는 영웅호걸 성인현자의 이름을 따기도 하고, 요즘 와서는 연예인 지명인의 이름, 특히 소프 오페라 연속극의 인기 출연배우도 푸짐한 이름 깜을 대 주기도 한다. 이렇게 따온 이름들은 또한 후대에 곧잘 되풀이되어 두루 돌려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조부나 삼촌 이름을 흔히 그대로 이어받는다. 가령 내 아내 ‘데일’의 먼저 번 남편네는 삼대가 다 ‘윌리암’이어서, ‘시니어 빌’, ‘빌’, 그리고 맨 아래로 B.J. (Bill John 의 줄임)으로 세례명을 붙여 구별해서 부른다. 부모나 윗사람의 이름 부르기를 타부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 풍습으로는 선듯 이해가 가지 않는 현상이다.
이렇게 보면, 서양사람들의 작명법은 우리조상 들의 그 것에 비해 단순하다면 단순해서 아취가 좀 없다고나 할까. 나는 가끔 강의를 하다가, 서양문명 서양문명 하지만 동양사람들의 멋은 너희네가 발 벗고 나서도 못 따른다고 농담 아닌 농을 하면 학생들이 어리둥절해 하는데, 간단한 예로 물건 집계를 할 적에 우리는 다섯 숫자를 유식하게 바를 ‘정’(正)자를 써서 셈을 한다. 그래서 바 른 正자 세 개를 열 다섯으로 계산하는 데 너희들은 어떠냐. 멋없이 막대기를 쭉쭉 나란히 옆으로 넷이나 내려긋고는 다섯째 막대기로 그 네개를 가로 걸쳐 그어서 한 묶음으로 헤아리고 있으니 세련의 도로 따지면 아예 말이 안 된다고 약을 올려 주곤 한다.
테레비를 보고 있노라면 광고 선전에 몇 살 안된 꼬마녀석이 컴퓨터에 매인 지애비 뒷전에 서서 이 컴퓨터는 쓰기가 하도 편리해서 “우리 아빠도 쓸 줄 아는 걸”하고 있는 세상이 되어버려서 산타할아버지의 썰매도 수퍼맨의 만또자락도 다 아득히 시간의 빙하속에 묻어온 이애들은 앤드로메다 성운속에 숨어 있을 저히들의 먼 고향을 찾아 헤매는 스타트렉의 후예들이다. 이런 세상에 한국의 옛 식자들의 성명 짓기 얘기 같은 거야 허황한 넋두리에 지나지 않겠지만, 요즘 미국에서 인기를 한창 모으고 있는 우리나라산 자동차의 차종 이름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넋두리도 한번 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소나타’라면 미국시장에서도 귀에 익숙해진 현대자동차의 의젓한 중형차다. 그런데 이 모델명을 처음 듣고 나는 약간의 의아감을 금할 길이 없었다. sonata는 두세개의 악기를 위한 17세기 후반 생긴 특이한 작곡형식이고 3 내지 4악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데 그런 말을 현대자동차의 신제품하고 얼른 연관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 듣기에 좋으니까 그렇게 한 것이라 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그래도 무언가 그럴듯한 뜻이 있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 추측으로는, 60년대 국산 차 ‘새나라’를 미국사람들이 발음하면 sonata를 발음할 때 나는 소리같이 들리므로 뜻이야 좀 모호해도 세련된 맛을 풍기기도 하고 우선 어감이 그럴싸하니까 sonata로 아예 정해 버리지 않았나 고 보는 것이다. 이런 예는 도요다가 미국으로 수출하는 ‘camry’라는 차종명에도 보인다. 이것은 일본 국내에서 시판하는 도요다 모델 crown을 일본말로 하면 ‘간무리’ 즉 왕관이란 말이 되겠는데 이것을 미국식 영어 음에 맞추어서 camry로 한 것이 분명하다고 나는 보고 있다. (어원상으로는 일본말 ‘간무리’는 중국에서 들어와서 우리말이 된 ‘관모’ 혹은 ‘관머리’와 뿌리가 같다.) 그렇다면 현대자동차의 sonata와 유를 같이 하는 것이라 하겠으나 전자가 왕관이란 뜻을 살리고 있는 점을 친다면 sonata보다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름 짓기로는 한 차원 높다 해야 할 것 같다.
지나치리 만큼 이름짓기에 까다로웠던 우리의 전통을 살려서 멋진 이름을 가진 우리나라 차들이 미국 땅을 주름 잡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작년부터인가 역시 현대가 내놓은 신종차 elantra가 자주 눈에 뜨인다. 물론 합성어로 끝소리 tra를 뺀 elan은 프랑스 말의 동사 elancer(돌진하다, 약진하다)에서 파생한 명사이며, 프랑스의 철인 벨그슨 (Bergson)의 ‘생의 철학’을 통하여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elan vital’(생의 도약)의 elan이기도 하므로 자동차의 이름으로는 안성마침인데 다만 끝소리 tra가 Cleopatra, orchestra, Sinatra 할 때의 tra라 멋을 지나치게 부린 것 같아 귀에 좀 거슬린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털어놓았더니, 웬걸 아내를 비롯해서 다들 멋있다고들만 하고 심지어는 불문학을 유 씨 버클레이에서 전공한 장녀 애린이는 “걸작인데 뭐”하고 한술을 더 떠니, 나도 이젠 망녕인가 싶어 은근히 걱정스러워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