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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退溪) 이황(李滉) 사상의 종교적 성격

성서와문화 2009.12.23 19:58 조회 수 : 2228

 
[ 작성자 : 이광호 - 연세대 교수, 동양철학 ]

 

금년은 퇴계 이황(1501∼1570)선생이 태어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KBS에서는 정월 초하루에 ‘Mister 퇴계’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여 일반인들이 퇴계를 친숙하게 느끼게 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후 퇴계와 관련된 학회와 연구소에서는 퇴계 사상을 재조명하기 위한 학술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관련 단체에서 퇴계의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사상을 재조명하려고 한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하였다. 한국 기독교계는 퇴계사상에 대하여 무지할 뿐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다.
한국의 카톨릭 교계가 천진암을 종교적 성지로 만들고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천주교도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열성을 보지지만, 다산사상의 학문적 연원을 밝히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퇴계는 남인 학통의 사상적 연원이며,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 성호의 학통을 계승하여 다산의 경학사상에 크게 영향을 미친 녹암(鹿菴) 권철신(權哲身, 1736-1801), 성호의 후손으로 성호의 학통을 계승하여 다산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이가환(李家煥, 1742-1801), 다산에게 종교적 영향을 크게 미친 천주교도 이벽(李蘗, 1754-1786), 그리고 다산의 형제인 정약종(丁若種, 1760-1801)과 정약전(丁若銓, 1758-1816) 이들은 모두 남인계의 유학자들이다. 기독교계는 이들이 남인계의 학자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해서 천주교를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규명의 노력은 별로 없다. 나는 [李退溪의 哲學思想이 丁茶山의 經學思想 形成에 미친 영향에 관한 고찰]({퇴계학보 90호}, 1996년 6월호)이라는 논문을 통하여 다산사상의 종교적 성향의 연원이 퇴계에게 있다는 것을 밝힌 일이 있다.
유학은 기독교와 다른 점도 많지만 유사한 점도 많이 있다. 특히 유학에서 하늘을 공경하는 사상은 기독교사상과 유사한 측면이 많으며 이러한 사상은 공자와 맹자 이전의 원시유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유학에서의 하늘과 인간의 관계는 기독교에서처럼 단순한 신앙과 복종의 관계가 아니다. 유학에서 하늘은 인간과 아주 가까이 바로 인간 안에 인간의 삶의 원리로서 내재한다. 인간의 본성이 하늘로부터 부여되었기 때문에 이를 ‘하늘의 명령’ 곧 天命이라고 부른다. 유학에서는 인간은 천명을 따라서 살아야 되며 천명에 따르는 삶이 인간의 삶의 길인 人道이다. 공자는 군자에게는 세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고 하였다. “천명을 두려워하고, 대인을 두려워하며,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한다.”(논어, 계씨편)고 하였다. 후대의 주석가들은 대인을 천명을 실천하는 자이기 때문에 두려워하며, 성인의 말씀 가운데는 천명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두려워한다고 하여 군자가 두려워하는 것을 천명으로 귀일시켰다.
퇴계는 대기만성의 학자로서 53세 이후에야 자신의 사상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하였다. 그가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한 작품은 추만(秋巒) 정지운(鄭之雲, 1509-1561)이 만든 [天命圖]를 개정하여 만든 [天命新圖]와 이에 대한 해설인 [천명도설]이었다.
그는 [천명도]를 그림으로써 하늘로부터 받은 인간의 지위와 직분을 보여주려고 시도하였다. 퇴계는 [천명도]에서 보여주듯이 인간은 천명이 인간에 내재되어 있음을 알고 인간의 직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학자가 이 그림을 통하여 천명이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음을 진실되게 알고, 덕성을 높이며 믿고 순종하게 된다면, 진실로 귀한 인간의 본성을 잃지 아니하고 인간의 삶의 표준이 자신에게 있게 되어 천지와 나란히 셋이 되어 천지가 하는 조화 발육의 공을 다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퇴계전서2, 천명도설)

 

퇴계에게 있어서 천명은 인간의 삶의 표준이었다. 천명의 문제는 퇴계철학의 핵심문제이며 이는 퇴계사상의 종교적 성격을 나타내는 제일의 징표이다. 천명사상은 다산에게 계승되어 다산 중용사상의 핵심이 된다.
천명론과 함께 퇴계 사상의 종교적 성격을 부각시키는 개념은 리발이다. 퇴계는 “사단은 리가 발하여 기가 거기에 따르는 것”이어서 순수하게 선한 감정이며, 칠정은 악으로 흐르기 쉽지만 “기가 발하여 이가 거기에 타면” 선한 감정이 된다고 하였다.
퇴계에 있어서 리는 진리이며 천이다. 그러므로 인간에 내재된 리는 곧 천명이다. 내재된 하늘인 천명은 현상 가운데 잠재상태로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능동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퇴계는 생각하였다. 특히 인간의 심성 가운데서는 천명이 살아서 능동적인 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윤리적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남인 학자들은 천명과 리발에 기초한 퇴계의 사상을 학습하며 자연스럽게 종교적인 분위기를 익히게 되었으며 이러한 분위기는 기독교의 수용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어느날 겨울(1779년, 다산의 나이 18세) 주어사에 머물며 ……녹암이 손수 규정을 주어 새벽에 일어나 얼음을 깨고 샘물을 움켜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는 [숙야잠]을 외우고, 일출할 때는 [경재잠]을 외우고, 정오에는 [사물잠]을 외우고, 일몰 후에는 [서명]을 외우게 했는데 莊嚴恪恭하여 법도를 잃지 않았다. “(여유당전서1, [先仲氏(若銓)墓地銘])

 

녹암 권철신의 주재하에 이루어진 강학회의 분위기는 종교적 분위기 그대로이다. 새벽부터 저녁이 되도록 암송한 내용인 [숙야잠]과 [경재잠], [서명]은 퇴계의 만년에 저술된 퇴계의 대표적 작품인 {성학십도}에 실려있는 작품들이다. [사물잠] 역시 퇴계가 항상 외우고 가르친 작품이다. 이 네 작품의 내용은 모두 천을 섬기는 일과 천명에 순종하는 윤리적 도덕적 삶을 주제로 하고 있다. 권철신은 천주교신자인 동시에 유학자였지만 사상의 괴리를 느끼지 않았다. 권철신 뿐 아니라 이승훈과 이가환 등 당시 카톨릭 신자가 된 남인계 유학자들의 대부분의 생각은 비슷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벽은 퇴계의 이발을 性靈의 발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생각은 남인계 기독교 신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덕조(1754-1786, 德操는 이벽의 원명)가 말하였다.……성리학자들이 말한 예에 따라 분석하여 논한다면 리는 도심이며 기는 인심이다. 마음이 性靈에서 발한 것이 리발이며 마음이 육체에서 발한 것이 기발이다.”(여유당전서2, 중용강의보)

 

이벽의 이러한 관점은 이기설에서 “기가 발하면 리는 거기에 탈 뿐”이라는 율곡의 설을 따르던 다산의 생각을 오히려 바꾸게 만들었다.

 

“퇴계의 理氣는 인간의 性情에 대해서만 논한 것이니 리는 도심이요 천리 쪽이며 性靈 편이다.……그러므로 ‘사단은 리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하여 리가 타는 것’이라고 말하였다.”(여유당전서1, 서암강학기)

 

이처럼 천명론과 이발설을 중심으로한 퇴계의 종교적 성향은 이벽과 다산을 비롯한 남인계 유학자들에게는 유학과 천주교를 자연스럽게 만나게 하는 사상의 고리가 되었다고 보여진다.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깊게 진행되어 기독교와 한국 유학사상의 이상적인 만남을 통하여 인류를 위한 새로운 종교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