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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현(士峴) 마경일 목사님과의 만남

성서와문화 2009.12.23 19:56 조회 수 : 2069

 
[ 작성자 : 이계준 - 신학 ]

 

내가 마경일 목사님을 만나게 된 것은 신학교 3학년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 전에도 학교 채풀에서 종종 설교하셨기 때문에 멀리서 뵙고 차가운 인상과 함께, 빈틈없고 정성이 깃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그에게서 감리교의 “교리장정”울 배웠는데 그 과목이 목사 될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이었지만 학생들에게는 관심 밖의 것이었다. 더욱이 그는 동대문 교회인가, 이화여고에 계시면서 강사로 오셨고 너무나 차갑고 날카로운 풍모 때문에 학생들은 감히 접근할 수도 없었다.
나는 신학교를 졸업하자 곧 육군 군목으로 종사하게 되었다. 그 때 배속 받은 부대가 오지인 강원도 화천읍 사창리이었다. 군목은 최소한도 일주일에 세 번, 주일 낮과 저녁, 수요일만은 반드시 설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자주 설교할 수 있는 실력도, 자료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학교 당국의 교과목 편성의 문제점과 나의 학문적 편식 때문에 설교자로서의 나의 능력을 키우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과거를 탓할 수 없을 만큼 긴박하였다. 무조건 한 주일에 세 번 설교해야 하고 더욱이 SO라는 군번의 소유자 곧 학도병들이 연대에 많았다. 그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전해야하니 나의 무력감과 긴장은 극에 달하였다. 그 때 나는 “구원의 배”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마목사님의 설교집 “생명의 개척자”이었다. 나는 그 책을 통해 처음으로 설교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함을 배울 수 있었고 뿐만 아니라 군목활동의 첫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내가 마목사님과의 관계의 거리가 약간 좁아진 것은 대학교목회 때문이었다. 내가 1967년 연세대학교에 왔을 때 그 분은 이화대학교에 계셨는데 마침 여러 기독교대학의 교목들이 친교와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교목회를 조직하고 마경일 목사님이 회장으로, 내가 총무로 피선되었다. 나는 이 모임을 통해 그 분이 결코 권위주의적이거나 폐쇄주의적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롭고 개방적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에게 인간적으로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1974년에 감리교가 분리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교단의 부정부패를 규탄하고 목회자 약200명이 탈퇴하여 감리교 갱신총회를 조직하게 되었는데 마목사님이 제 1대 총회장으로 피선되었다. 나는 대학에 있으면서 줄곧 감리교 갱신운동을 계속 추진하고 있었으므로 자연히 갱신총회에 합류하여 신학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6년 분리된 교단의 합동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중진목사들이 신학교 설립을 추진하면서 나더러 교장을 맡으라고 하였다. 나는 1975년 연세대에서 해직되어 있었다. 그 때 나는 마목사님을 교장으로 추천하고 나는 교무를 맡겠다고 하는 의견이 가납되어 감리교 총회신학교가 출범하게 되었다.
나는 마목사님을 웃어른으로 모시고 일하는 영광을 누리는 동시에 정확한 행정력, 깨끗한 재정운영, 비판과 사랑을 겸비한 교육, 젊은이들과의 낭만적 사귐 등을 보고 배우는 기쁨도 가졌다.
내가 미국 에모리 대학에 갔을 때 교회사 교수인 빌 말라드 박사가 계셨다. 그 분은 내가 한국인인줄 알고 마경일 목사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 분은 듀크대학에서 마목사님과 함께 공부하셨는데, 집에 초대를 받아 갔을 때 그는 옛날 노트에 마목사님 글씨로 적힌 “아리랑”과 “금강산 일만 이천봉”을 들고 제대로 노래를 불렀다. 마목사님은 명창이기도 하였다. 그 분은 스승과 제자들의 모임을 위해 “노소동락회”란 이름을 남기시어 박대선, 한준석, 유동식, 한승호, 박영배, 김기복, 이계준 등 여러분이 주기적으로 친교를 나눈다.
마목사님은 지병을 아시면서도 치료를 포기하고 자신의 종말을 조용히 용납하셨다. 의사 아들의 권유도, 제약회사 사장인 사위의 약도 모두 거절하고 마지막 날을 조용히 직시하며 기다리신 것이다. 새벽 3시경에 둘째 아들 상조선생에게서 비보를 받았다. 나는 통금시간이 끝나자 달려갔다. 그 분은 생시처럼 아무 말씀도 없이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계셨다.
마경일 목시님은 탈월한 설교가요, 사랑의 스승이며, 자유롭고 낭만적이며 올곧은 성품의 소유자이셨다. 오늘의 혼탁한 교계와 사회를 생각할 때, 그의 사람됨과 지도력이 더욱 아쉽고 그리워지는 감정을 떨처 버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