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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경외의 사상

성서와문화 2009.12.23 19:56 조회 수 : 2146

 
[ 작성자 : 전성균 - 미네소타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NEW York에 사는 막내가 지난 9월 11일 출근을 늦게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에 환난을 면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그 날 정상적인 일과에 따라 출근을 해서 억울하게 생명을 빼앗긴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가족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저리도록 마음이 아프다. 왜냐하면 나도 하마터면 그 마음 아파서 몸부림치는 무리 속에 속해 있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타임지는 6년 전에 Oklahoma에서 있었던 폭파사건의 희생자에 대한 조사보고를 하고 있다. 사건현장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의 거의 반수가 정신과 의사의 상담이나 치료를 받고 있고 지금도 168명의 희생자의 가까운 가족들은 상담을 계속 받고 있다니 50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New York과 Washington의 경우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정신적인 피해를 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마음의 상처가 쉬 없어지지 않고 오래 계속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생명들이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고 그 아픔으로 많은 생명들이 괴로워하고 있다.
이번에 특기할 것은 많은 희생자들이 휴대전화기를 가지고 있어서 가족들에게 마지막 말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보겠다.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배우자들에게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해. 자식들을 잘 부탁해.”로 끝났고 모두가 뜻하지 아니하게 닥친 이 엄청난 사건을 이해할 수 없음을 탄식하며 이 세상을 하직했다. 귀한 생명들이 무참하게 절멸되어 가는 악이 행해졌던 것이다.
20세기의 聖人이라고 불리 우는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선이란 생명을 유지하고 북돋워 주는 것이고 악이란 생명을 파괴하고 저해하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삶의 근본 법칙인 생명경외사상(Reverence for Life, 라틴어로는 Veneratio Vitae)을 외쳤고 아프리카에 가서 평생 흑인 원주민을 위한 의료봉사를 함으로써 이 원칙을 몸소 실천하였다. 그는 기독교인이었기에 그의 근본사상이 성경에 기초하고 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생명경외 사상은 어느 특정 종교나 인종이나 개인에게 국한할 것이 아니고 우주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선물이다. 한문에서도 生(살 생) 命(분부 명)으로 표현하여 살도록 하늘에서 분부 받은 것이 생명이라고 기술한다. 그러기에 모든 생명은 귀중한 것이다. 나 자신의 생명 뿐 아니라 내 이웃의 생명 또한 귀한 것이기에 그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고 받들어 주어야 한다는 이 근본 사상이 투철해질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올바른 궤도에 서게 되고 우리의 사회는 건전하고 평화스러운 사회가 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슈바이처 박사를 존경하게 된 것은 의예과 시절부터였다. 그의 저서를 읽는 가운데 인간으로서 또한 인술을 베푸는 의사로서 가질 기본자세에 대한 그의 사상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의대와 그 후의 대학원 시절 필자는 의학을 포함한 생명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함께 클럽을 하나 결성하기에 이르렀고 그 클럽 이름을 “Veneratio Vitae Club” 으로 하였다. V자가 두 개 들어가기에 VV 클럽으로 불렀다. 우리는 슈바이처처럼 말한 것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각자의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모아서 비용을 충당하면서 의사가 없는 무의촌을 찾아 다녔다. 우리는 우리가 베푼 적은 봉사의 몇 갑절이 넘는 기쁨을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맛보았다. 이 모임은 지금도 서울에서 이어가고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주위는 점점 삭막해지고 다음에는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살고있다. 삶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며 새로운 분출의 길이 틔어야지 이러한 상태로 지속해 가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우주와 세상과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그 분의 뜻이 우리의 삶을 주장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믿음 속에서 마음의 평안과 삶에 대한 용기를 얻어야 함은 이 시점에서 우리가 취할 온전한 태도이다. 한편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생명에 대한 경외사상을 강조해서 서로가 서로를 알뜰히 위하고 서로의 생명을 북돋워 주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 같다. 자기와 가장 가까이 있는 생명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하면 그 생명이 더 복될 수 있을까 보살펴야겠고 가까운 이웃의 생명에 대해서도 같은 마음으로 알뜰한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베푸는 따뜻한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번져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이번에 당한 생명절멸의 참혹한 사건을 통해서 악을 규탄하는 동시에 생명경외의 사상을 어느 때보다도 강조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생명들이 보람 있게 피어나갈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움직임이 여러 곳에서 활발히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우리 주위에서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로 퍼지고 모두가 선 ? 즉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고 북돋워 주는 일 ? 을 열심히 행할 때 생명을 절멸시키려는 악의 세력은 약해지고 마침내 선으로 악을 이기는 참된 의미에서의 승리가 우리를 찾아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또 한가지 특기할 것은 이 세상에 가치 있다고 여겨지던 것들도 극한의 상황이 닥치면 한 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무너지기 직전의 무역센터 80층에서는 돈이나 명예 그리고 출세 등이 아무런 작용을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 삶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가. 어떤 엄청난 사건이 닥쳐도 변치 않고 의지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깨달아 아는 것이라고 믿는다. 슈바이처 박사는 이 일을 깊이 생각한 끝에 선이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깊은 사상 즉 “생명경외의 사상”을 소개했을 뿐 아니라 버림받고 천대 받는 아프리카의 문둥병 걸린 원주민의 손을 잡아주며 그들의 몸과 마음의 상처를 고쳐주기 위해서 그의 귀한 일생을 온통 바쳤던 것이다. 그가 1952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은 당연하고도 적절한 일이었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