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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야 하는 인생

성서와문화 2009.12.23 19:55 조회 수 : 1674

 
[ 작성자 : 유동식 - 전 연세대학교 교수, 신학 ]

 

밝은 희망을 걸었던 새 천년의 첫 해가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희망보다는 어두움을 안겨준 한 해였다. 세계는 테러와 전쟁으로 얼룩졌고, 한국은 부정부패와 권력싸움으로 얼룩졌다. 경제사정은 날로 어두워져 가고만 있고 인심은 날로 각박해져 가고만 있다.
그런데 기독교는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가르친다. 기독교 신앙의 척도는 실로 얼마만큼 감사하며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것이 과연 오늘날 우리에게도 타당한 가르침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실은 이것을 가르친 바울이 살던 시대 역시 오늘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세계였다. 그들은 로마제국의 식민지 처지에 있었으며, 인권이나 자유는 사치스러운 꿈이었고, 먹을 식량마저도 궁핍한 세상에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라고 가르쳤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라 했다. 과연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우리들의 감사의 근거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일까?
성서에 제시된 감사의 근거를 생각해 보자.
첫째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통해 이룩하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게 하신 일이다. (요한 20:17) 그러므로 그를 믿고 받아드리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된 특권을 주신다.”고 했다. (요한 1:12)
천지를 지으시고, 역사를 섭리하시며, 우리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이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신 것이다. 그것도 소원한 관계가 아니라 친밀한 “아빠 아버지”인 것이다. (로마 8:15) 그러므로 우리는 아빠 아버지에게 무엇이고 털어놓을 수 있고 또 간청할 수도 있게 되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빌립보 4:6-7) 이 보다 더 큰 특권이 어디 있겠는가.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임마뉴엘”이라고 한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임마뉴엘이 이루어졌다. (마태 1:23)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하나님의 나라요, 그리스도를 모신 곳이 하늘나라인 것이다.

 

“높은 산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리스도인이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해야하는 근거는 여기에 있다.
둘째는 일본의 식민지 백성이었던 우리를 해방해 주셨기 때문에 감사해야 한다.
곡식이 무르익는 가을을 맞이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밭에서 곡식을 다 거두어드린 다음에는 이레 동안 하나님 앞에서 즐거운 축제를 올려야 한다. 그런데 그 이레 동안은 뜰에 있는 초막에서 지내야 한다. “이렇게 하여야 너희 자손들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그들을 초막에서 살게 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레위기 23: 39-43)
이스라엘 민족의 추수감사절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출애굽 사건 곧 민족적 해방이었다. 다른 민족의 노예로 있으면서 마음으로부터 축제를 올릴 수는 없다. 진정한 기쁨에 찬 감사의 축제는 해방된 자유민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한국인인 우리가 진정으로 즐거운 축제를 올릴 수 있게 된 것은 8.15 해방의 덕택이다. 인권과 자유가 박탈당한 식민지 백성으로서는 참된 기쁨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해방하시고 자주민이 되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마음으로부터 감사의 축제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분단국가가 되었고, 정치 경제적으로 불안한 사회 속에 살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자주민으로서의 기본적인 삶의 틀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밝은 민족공동체를 형성해 갈 희망 속에 살게 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의 두 번째 감사의 근거이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영육간에 개별적으로 베풀어주시는 은사 때문에 감사해야 한다.
지난 일년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다. 외형상으로는 각기 다른 양의 축복을 받았을 것이다. 어떤 이는 많은 것을 얻었고, 어떤 이는 겨우 먹고살았을 것이다. 어떤 이는 자기가 하는 일에서 성공했고, 어떤 이는 실패의 쓴잔을 마셨을 것이다. 어떤 이는 건강했고, 어떤 이는 병마에 시달려 왔을 것이다.
그러나 삶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주어진 그대로 의미 있고 가치가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많고 적고, 크고 작고하는 것은 비교하는 데서 오는 상대적인 것이요, 삶 자체의 의미와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주어진 삶을 기도하는 가운데 감사하며 정성껏 살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를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본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야하는 나그네 인생이다. 먹고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서 족한 줄 알아야 한다. (디모데 전서 6: 7-8)
그러나 이것은 결국 사라져갈 이 세상과 더불어 나날이 쇠퇴해 가는 겉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스도를 모신 그리스도인은 날로 새로워지는 삶을 살아간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창조적 생명이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은 일시적이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인 생명은 영원한 것이다. (고린도 후서 4: 16-18) 참 그리스도인이었던 바울과 함께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이름 없는 사람과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사람과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벌을 받는 사람과 같으나 죽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사람과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과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과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고린도 후서 6: 9-10)
이것이 그리스도를 모시고 하나님 안에서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요 행복이다. 우리가 감사하며 기쁨 속에 살아가야 할 근본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