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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공장

성서와문화 2009.12.23 19:54 조회 수 : 1864

 
[ 작성자 : 안상님 - 여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 신학 ]

 

“아! 공기 좋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딸이 아침에 마루에 나오더니 심호흡을 하면서 감탄하는 말이다. 서울 한 복판에서 이만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것도 다행이라 싶은 모양이다. 마당에 있던 나는 얼른 되받았다.
“그럼, 엄마가 산소 만들잖아? 엄마가 하나님하고 산소 공장 해.”
얼결에 한 말인데 다시 들어도 괜찮은 말이다. 나무를 심어서 산소를 내고 있으니 확실히 산소공장이라 해도 되겠다. 아마죤 강가의 숲을 개간하느라 야단들이라는데 세계 산소의 삼분의 일을 생산하는 그 숲이 줄어진다니 우리는 나무 하나라도 더 심어서 산소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70년대 말에 내가 교육총무로 일하던 여신도회 전국연합회에서 생명문화 운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 때 문동환 박사를 중심으로 생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호응하여 여신도회에서는 이를 중점사업으로 추진하였다. 공해로 찌들어 가는 환경에 대한 관심들이 지금의 문화는 죽음의 문화로 규탄하면서 삶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여신도들이 앞장서야겠다는 자각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창조질서에서 “땅을 정복하라”(창.1:28)를 문자대로 해석해서 인간은 땅을 마구 개발하면서 산업사회로 치달은 결과 오늘의 오염문제를 낳게 된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정복하라”는 “가꾸고 돌보라는 뜻이 있다”는 새로운 해석이 환경을 살리는 것이 크리스찬의 사명이라는 소명을 일깨워 주었다. “생명을 택하라”는 신명기의 말씀(30:15-20)을 읽으면서 생명운동이야말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가장 시급한 주제임을 파악하게 되었다. 성서연구, 바꾸어야 할 우리의 일상생활, 운동 전략등 세미나를 거듭하면서 열기를 더해갔다. 그 때 버리기로 한 것 중의 하나는 자동차를 쓰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나는 지금까지 자가용은 쓰지 않고 있다. 그 후 1990년에 서울에서 세계교회협의회의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대회가 모이었고 환경운동을 해야한다는 신념은 더욱 확고히 되었다. 살리는 일은 무엇이나 소중하다. 예수는 사람을 살리러 세상에 오셨으니 그 복음으로 살아난 우리는 우리 옆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또 여성신학에서도 생태학을 중요하게 다룬다. 나는 그저 살리는 이야기와 살리는 일이라면 신이 난다. 집안의 일을 살림살이라고 한 우리 조상들은 참으로 현명하다. 그저 살리는 일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이제는 하찮은 집안 일이라고 하던 것이 다 살리는 의미를 지니는 소중한 일이 되었다. 여성신학에서 신학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삶 속에서 살아내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14년 전에 이 집에 이사왔을 때 나무라고는 작으마한 청목 두 그루와 옥잠화 한 덤이가 전부였다. 다행이도 마당에는 모래를 덮은 땅이 있었다. 세멘트였다면 다 파내서 흙 마당을 만들었을 것이다. 마당에 장식으로 해 놓은 데도 다 부셔서 세멘트는 다 떼어내다 버렸다. 아랫채는 가개를 만들어 놔서 밖에서는 한옥인 안채가 보이지 않는다. 가개채 위는 세멘트 슬라브로 거기에 한옥으로 팔각정이 있었었다는데 우리가 왔을 때에는 다 허물어버리고 맨바닥이었다. 거기다가 흙을 퍼올려서 밭을 만들고 채소를 가꾸었다. 가장자리로는 무궁화 목백일홍 라이락 꽃사과 줄장미 찔래꽃 황매 산당화 구기자등 마당에 심지 못한 것들은 그 위에서 자란다. 흙이 깊지 못하니 늘 미안한 마음인데도 그것들은 잘도 자란다. 앞집에서 5층 건물을 지은 후로 채소는 별로 안되니까, 취 신선초 부추 머우 꽈리 미나리 등 숙근초를 심었다. 한국에서 음식 쓰레기로 8조원이 버려진다는데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전에는 어른들이 밥알 하나도 떨어뜨리지 못하게 단속을 하셨는데 요지음은 도무지 음식버리기를 무서워하지를 않는다. 이러다가 우리가 벌을 받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우리집 음식 찌끄러기는 거의 없고 과일 껍질이나 음식 만드느라 손질하고 남은 쓰레기도 소중하게 밭에다 묻어둔다. 좋은 걸음이 되고 그 밑을 파보면 지렁이가 오물오물 한다. 전에 낚시밥으로 만질 때는 징그러웠던 지렁이가 흙을 먹고 좋은 흙을 만든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아파트에서 6년 동안 살면서 나무를 보러 가야 한다며 한 달이 멀다고 숲을 찾아가야 했던 나였다 그러나 여기 창덕궁 옆으로 이사온 뒤에 안방에서 비원 숲을 바라보면서 그 병이 없어졌다. 이제는 일년 내내 아무데도 안 나가도 전연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휴일이면 서울을 빠져나가느라 아우성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다. 그 아파트 숲에서 얼마나 숨이 막힐가 싶다. 그러니 쉬는 날이면 무조건 빠져나가고 싶을 것이다. 내가 아파트에 살 때에는 베란다며 마루며 온 집안에 화분이 가득하여 거의 100개나 되었었다. 베란다에 흙을 넣어서 음식찌꺼기를 묻었었다. 그래서 흙이 아주 부드럽고 좋았다. 이사를 올 때 새로 오는 사람이 그 흙을 퍼다 버릴 것을 걱정하기에 내가 다 이삿짐에 실어 가지고 왔다. 이삿짐 나르는 사람이 그 흙을 자루에 담으면서 흙을 싣고 이사 가는 집은 처음이라고 투덜거렸다. “그 흙은 보통 흙이 아니에요. 제가 오랫동안 만들어온 좋은 흙이에요”하면서 그들의 양해를 구했다.
나무를 좋아하니까 자꾸만 사다가 마당 가득히 심어 놨다. 너무 많이 심어서 이제는 크게 자라지 않도록 잘라주어야 하는 일이 늘었다. 게다가 지난 2, 3년간 선인장을 기르다 보니 자꾸 늘어나서 300개나 되었다. 아파트에서 가져온 화분들도 아직 남아서 봄이면 마당에 내놓고 가을이면 집안에 들여놓는 것이 큰 일이었다. 이제는 힘이 들어서 도저히 못하겠기에 위 층 지붕 꼭대기에 온실을 만들었다. 평생에 가지고 싶었던 온실을 이제서야 만든 것이다. 예산을 많이 들일 수 없으니 하꼬방이 되었는데 그래도 거기 가면 괜히 좋아진다. 온 집안에 할 일이 널려 있는데도 내 손이 닿는 대로 생명들을 건사하면 된다. 미처 못해도 그들 나름으로 살아낸다. 내가 다 예뻐하니까 그 것들도 사랑을 먹고 신나나 보다. 온실에 갔다가 내려와서 마당을 거처 밭에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면 왠만한 운동량은 채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하러간 일이 없나 보다. 운동을 따로 할 사이가 없다. 집안에서 이것 저것 만지다 보면 하루해가 짧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