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01년 성서와 문화

준비하며 사는 삶

성서와문화 2009.12.23 19:53 조회 수 : 1609

 
[ 작성자 : 전성균 - 미네소타 주립대 교수, 의학 ]

 

사람은 누구나 죽음이 가까워 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이 끝나면 저 세상 즉 영원한 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조용히 준비하며 살아간다. 대학에서 함께 일하던 같은 연배의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준비를 서두른다. 그는 생전에 많은 일을 했고 늘 단정한 모습으로 인자하였고, 남의 말을 들어주고 자기의 생각하는 바를 분명히 알려주어 그와의 대화는 즐겁고도 유익했다. 그는 어느 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인격과 모습은 우리 마음속에 늘 남아 있다.

얼마 전에는 이곳에서 오래 사신 대선배의 부인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그 분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다음과 같은 영시 하나가 순서지에 끼어 있었다.

 

I’M FREE

 

Don’t grieve for me for now I’m free.
I’m following the path God laid for me.
I took his hand when I heard him call.
I turned my back and left it all.

 

I could not stay another day.
To laugh, to love, to work or play.
Tasks left undone must stay that way.
I’ve found that peace at close of day.

 

If my parting has left a void
Then fill it with remembered joy.
A friendship shared, a laugh, a kiss.
Ah yes, these things I too will miss.


But not burdened with time of sorrow.
I wish you the sunshine of tomorrow.
My life’s been full, I’ve savored much.
Good friends, good times, a loved one’s touch.

 

Perhaps my time seemed all too brief.
Don’t lengthen it now with undue grief.
Lift up your hearts and share with me.
God wanted me now; he set me free.


나는 이제 자유롭습니다.(영시 번역)

 

나를 위해서 슬퍼하지 마세요.
이제 나는 자유롭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그 길을 따라 갑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그 분의 손목을 잡았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남기고 되돌아섰습니다.

 

나는 하루도 더 머무를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웃고, 사랑하고, 일하고 뛰놀 수가 없습니다.
못 다한 일은 그대로 두고 가야 합니다.
하루가 저무는데 나는 평안합니다.

 

내가 떠난 후의 공백은
나로 인해 기억되는 기쁨으로 채워주십시오.
친구와의 사귐과 웃음, 입맞춤
그래요 이 모든 것을 나도 그리워 할 것입니다.

 

슬픔으로 너무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눈부신 내일의 태양이 비추기를 바랍니다.
내 삶은 넉넉했습니다.
나는 좋은 친구들, 좋은 시간들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내 시간이 너무도 짧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질없는 슬픔으로 내 시간을
연장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나를 원하십니다.
나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어느 날 나는 다음과 같은 글귀를 스스로 적어 보았다.


삶의 낭떠러지에 서서

 

삶은 강물처럼
조용히 유유히 흘러간다.
기쁨과 슬픔과 괴로움이
뒤섞인 강물을 마시며

 

어느 날 갑자기
강물은 낭떠러지에 와 닿는다.
속절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조용히 흐를 때의
모든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낭떠러지에 왔으니
이제 떨어져야 한다.

 

눈을 감고 기도한다.
또 하나의 세계를 맞이하는
기쁨을 맛보게 하소서

 

아름다움과 평안함이 있고
슬픔과 아픔이 없는
그 세계에서 주님께서
맞이해 주시옵소서

 

그리고는 그 낭떠러지를
훌쩍 뛰어 내린다.

 

시인 이해인 수녀님은 “오늘이 마지막이라면”이라는 칼럼에서 “살아 있는 오늘에 대한 충실성,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야말로 영원으로 이어지는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또 “더 많이 고마워하고, 더 많이 남을 챙겨주는 사랑을 해야지. 말도, 행동도, 기도도, 오늘 밖엔 없는 것처럼 최선을 다하고 성실을 다해서 살아야지.”라고 다짐한다고 했다.

 

사람이 평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는 것은 신앙이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우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죽음을 뛰어 넘은 구원이 우리에게 있음을 확신할 때 태연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위탁하시고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해 주십사 하고 기도하셨다.(마태 26:39)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영생에 이른다는 도를 깨달으면 우리는 새 생명 가운데서 매일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롬 6:4) 영생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떤 모양으로 죽음이 와도 별 상관이 없다. 한국에서 들은 이야기지만 6·25동란 때 일선 부대의 소대장은 기독교인이어서 평소 죽음과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전도에 힘쓰며,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자기 부하 한 사람이 총에 맞고 죽으면서 “소대장님, 소대장님은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만 저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갑니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평생 의심하면서 믿음의 생활에 못 들어간 영국의 어느 작가는 운명하기 얼마 전에 믿기로 작정하고, 성직자를 불러서 세례를 받고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을 때 우리는 지혜롭게 선택하여 우리에게 이 땅에서의 삶의 마지막이 닥칠 때 “주님, 이 부족한 자에게 맡겨주신 일 다 이루지 못하고 부르시기에 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믿음을 가지고 주께로 가오니 받아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하면서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요한계시록 7장에는 믿음을 가지고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간 성도들의 삶이 잘 그려져 있다.

 

나는 원래 정리하는 습관을 잘 기르지 못해서 무엇이건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은 움켜쥐고 버릴 줄 모른다. 집의 서재도 대학의 사무실도 정리해야 할 책, 논문이나 자료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혹 죽음이 갑자기 닥치면 이것들을 어찌할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얼마 전부터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을 버리는 작업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들을 추려서 특별히 마련한 곳으로 정리해 두는 일도 함께 하고 있다. 이따금 이 “특별히 마련한 곳”이 어디였던가를 찾아내는 데도 제법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따라서 이 일이 쉬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먼저 마음의 정리, 믿음의 점검부터 시작했고, 이 중요한 일이 준비되어 있으면 다른 것은 천천히 정리되어도 상관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