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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예술

성서와문화 2009.12.23 19:50 조회 수 : 1972

 
[ 작성자 : 최종태 - 서울대 명예교수, 조각 ]

 

종교와 예술은 본래 한 뿌리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 말을 뒤집어 본다면 종교와 예술이 그 지향하는 바가 한 군데로 같다 하는 말이 됩니다. 그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냐 하는 것은 알기가 어렵지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장 보배로운 것임을 일컬어 하는 말일 것입니다. 이름하여 최고의 가치, 더 없이 좋은 것…, 그런 곳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말합니다. 학문은 그 주변을 맴돌고 종교를 통해서는 그곳에 상주(常住)할 수 있다. 그러면서 예술은 그곳을 「수시 수시로 왕래한다」라고 말합니다. 학문(철학)은 변두리에서 그곳을 볼 수 있다 하는 것이고, 예술은 수시 수시로 그곳에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 있고, 종교를 통해서는 그곳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근세 유럽의 대철학자들이 한 말입니다. 나는 그 말을 의심 없이 믿습니다. 예술의 직관성을 두고 한 말일 성싶습니다. 예술은 계산을 넘어섭니다. 그 계산을 넘어서는 데에 예술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초월이라는 말을 가끔 듣습니다. 글자 그대로 본다면 이곳을 버리고 저곳으로 간다 하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불가에서는 도피안(渡彼岸)이란 말을 합니다. 바다를 건너서 저쪽 나라에 이르른다는 말입니다. 예수는 말합니다. 너의 멍에를 메고 나를 따르라! 그것은 현생적인 것의 포기를 의미합니다.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유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술가는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공자는 말합니다. 70이 되니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여도 진리에 어긋나질 않았노라. 예술을 통해서는 가끔 가끔씩 대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다 접어두고 철학과 예술과 종교가 하나의 곳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한 사실을 가지고 왜 특별히 생각할 필요가 있는가…, 오늘날 우리가 삶 속에서 그것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황금이 우선하는 시대가 되다보니 중요한 것이 뒷전으로 밀려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처럼 종교가 전 세계 구석구석에까지 많이 전파된 시대가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종교로 해서 보다 좋은 세상이 되었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늘날처럼 예술가가 많은 시대가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만큼 인류의 행복이 증진되었느냐 하면 그렇다고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 종교와 예술이 하나로 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문예부흥시대가 되면서 예술이 종교로부터 갈라섰습니다. 지금은 서로가 전혀 상관이 끊긴 시대가 되었습니다. 잘된 일인지, 잘 못된 일인지 그것은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예견한 학자들이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그래서 강조하려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종교를 통해서는 절대의 곳에 상주할 수 있다 하고, 예술을 통해서는 그 절대의 곳에 수시 수시로 왕래한다는 학자들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학자들은 일찍이 오늘의 사태를 예견하였던 것입니다.
종교는 종교끼리 서로 경쟁을 합니다. 세계의 종교가 한 마당에 펼쳐져 있습니다. 예술은 국가들간에 서로 경쟁을 합니다. 개성이라는 것을 절대적 가치로 내세워 그 외의 것에 대하여는 여념이 없습니다. 세계의 예술이 한마당에 펼쳐져 있고 우열을 다투는 경쟁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종교든 예술이든 우열을 다툴 일인가 하는 것에 관하여 한번 냉정하게 반성해볼 필요가 있지 않은지. 종교와 예술이 성하면 세상에 평화가 증진되어야 할 것인데 그 반대의 징후가 두드러지는 것은 이치로 보아도 틀린 일이 아닐까 누구든지 생각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종교가 성한 세상에 어째서 갈등이 깊어지고 예술이 성한 세상에 어찌하여 사람들의 마음이 거칠어지고만 있는가. 종교가 종교라는 틀 속에 갇혀있고, 예술은 예술이라는 그 틀 속에 갇혀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모두가 사람의 일인데 사람들이 소외당한 채 최고의 가치가 따로 설정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종교적이다 하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사랑은 걱정을 수반한다고 합니다. 추사선생의 나중 글씨들은 고요적적하고 쓸쓸함이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옛 화가 페르메르의 맑은 소녀상을 나는 잊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삼국시대의 금동미륵반가상을 나는 잊지 못합니다. 시서화(詩書畵) 일치를 목표한 중국의 예술을 나는 잊지 못합니다. 이집트의 영원한 돌조상들을 나는 잊지 못합니다. 모두가 종합적이고 근원한 곳을 향하여 확실하게 서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진선미(眞善美) 일치의 사상을 믿습니다. 사람들은 구시대의 유물이라고들 말합니다. 이 극단적인 분화의 시대에 종합의 문제를 생각한다는 것은 착오일는지도 모릅니다. 극단의 분화는 본질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에다 전체를 담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전체를 잃어버린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대의 미술품에서 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분화이전의 원형이 갖는 넉넉함 때문일 것입니다. 예술이 발전한다고는 아무도 말한 사람이 없습니다. 단지 변화할 뿐이라고들 말합니다. 늘 새로운 것이 근원의 모습일 것입니다. 근원으로부터 단절된 생명이 있다면 그것은 단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가 발견한 최고의 이상이 진(眞)이요, 선(善)이요, 아름다움입니다. 진의 행동, 선의 행동, 미의 행동이 따로 따로 있다면 부자연스런 일입니다. 시인은 노래합니다. 「본향으로 돌아가자. 시인은 근원에 가까이 감으로써 고향에 돌아온다.」 어떤 이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시 쓰는 일은 그대로가 즐거움이고, 치유하는 일이고, 그것은 성스러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이데커는 말합니다. 「오늘의 세계는 치유 받는 차원이 닫혀있다. 시인은 이 세상에 살면서 정신적인 것을 지녀야 한다. 성스러운 것이 나타날 때 시인의 영혼이 밝아 오른다.」 석도(石濤)는 이렇게 말합니다. 「태고 때에는 화법(畵法)도 없었다. 원초의 순박과 함께 자연이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거기에다 공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나는 오직 하나의 도(道)로써 모든 도를 통하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하이데커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오늘의 세계는 치유의 차원을 닫아 놓고 있습니다. 자기의 영역에다 차단막을 쳐놓고 옆을 볼 생각이 아예 없습니다. 하나의 도로써 모든 도를 관통한다는 성현의 말씀은 역사책에나 있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현금의 세계에 있어서의 종교와 예술의 관계입니다. 종교와 예술과 과학과 그 밖의 모든 현상들과의 관계가 다 그러합니다. 종교와 예술은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이 말은 진리입니다. 예술이 진리의 구현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습니다. 인류가 성(聖)스러운 것을 잃어버렸을 때 그것은 분명 밤의 시절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