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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의 백조의 노래

성서와문화 2009.12.23 19:49 조회 수 : 1784

 
[ 작성자 : 유동식 - 전 연세대학교 교수, 신학 ]

 

1983년은 장공 김재준 목사가 유신정권에 밀려 해외로 간지 10년이 되던 해이다.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그는 단풍이 짙은 카나다의 한 숲 속을 산책하던 중 “영감 같은 것이 떠올라서” 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한 찬가와 함께 자신의 신앙을 읊었다. 이것이 그의 백조의 노래였다.
3절로 된 장공의 노래를 들어본다.

 

1. 이 우주는 하나님의 집
하늘 위 하늘 아래
땅 위 땅 아래
모두 모두 아버지의 집

 

새벽 날개 햇빛 타고
하늘 저켠 가더라도
천부님 거기 계셔
내 고향 마련하네

 

장공의 시야는 우주적인 데로 확대되어 갔다. 젊었을 때의 그의 활동무대는 교회였다. 그는 생명을 잃은 보수적 정통주의로부터 한국교회를 해방하기 위해 투쟁했다. 군부 독재치하에서의 그의 활동 무대는 민중과 민족이었다. 억압된 우리 민족의 인권회복을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이제 인생의 마감을 가까이 내다보게 된 장공의 시야는 민족을 넘어선 우주로 확대되어 갔다.
그 무렵의 장공은 데이야르 드 샤르댕의 우주적 진화론에 공감하고 있었다. 우주는 물질에서 생명으로, 생명에서 영성으로 진화되어 간다. 그리고 그 진화의 다이나믹스는 ‘사랑’이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사랑의 공동체를 향해 진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장공이 말하는 우주란 자연과학적 대상으로서의 우주만이 아니라 영성 세계를 포함한 것이며, 인간의 생전의 존재 뿐 아니라 사후의 존재와 세계까지도 포함한 범우주를 뜻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우주이며, 우리는 그 안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의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가는 새벽인 것이다. 죽음 너머의 저 세상 역시 하나님 아버지의 집이며 우리들의 고향이다.

 

2. 이 눈이 하늘 보아
푸름이 몸에 배고
이 마음 밝고 맑아
주님 영광 비취이네.

 

새벽 날개 햇빛 타고
하늘 저켠 가더라도
천부님 거기 계셔
내 고향 마련하네

 

김재준의 아호 長空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들어 있다. 하나는 무한히 펼쳐진 하늘로서의 ‘九萬里長空’이요, 또 하나는 ‘無我 長空’이다. 무엇에도 집착 없는 무소유의 빈 마음이다. “무소유의 빈 마음(空) 속에 몰려드는 사랑의 회오리바람”을 지닌 것이 장공의 진면목이다.
푸른 하늘(창공)을 보고 이것을 몸에 지니는 것이 구만리 장공이요, 주님의 영광을 비추어 들어 낼 수 있는 것이 무아 장공이다. ‘창공’은 자연질서에 속하는 것이요, ‘무아’는 영적 질서에 속하는 것이다. 전자가 개체적인 한국 역사를 담는 그릇이라면, 후자는 보편적인 하늘나라를 담는 그릇이다. 장공은 바로 이 두 질서가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곳에 서 있었고, 두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는 데서 참된 삶을 찾으려 했다.
장공이 시종일관하여 주장해 온 것은 한국 역사의 그리스도화였다. “크리스챤은 한국역사를 그리스도 역사로 변질시켜 진정한 자유와 정의와 화평으로 성격화한 사랑의 공동체를 건설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창공과 무아의 조화 그리고 통합이 있다.
장공은 이 일을 위해 일생을 바쳐왔다. 우리들의 진정한 고향은 그리스도화된 한국이어야 한다. 그러나 고향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시는 것이다. 그 완성을 우리는 미래에서 기대한다.

 

3. 땅에서 소임 받아
주님나라 섬기다가
주님 오라 하실 때에
주님 품에 안기나니

 

새벽 날개 햇빛 타고
하늘 저켠 가더라도
천부님 거기 계셔
내 고향 마련하네

 

우주는 하나님 아버지의 집, 그 안에 있는 장공, 그는 역사적인 소임을 다하다가 머지않아 주께서 부르실 때 영원한 고향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리라고 읊었다.
“우리는 이제 한국을 우리의 소재로 받았다. 우리는 한국 역사 안에 그리스도의 속량역사를 조성하여 한국역사를 그리스도의 천국역사로 변질시키는 업무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의 소임이요 또한 장공의 소임이었다.
장공은 이 소임을 다 하기 위해 두 방향에서 헌신해 왔다. 하나는 올바른 교회 지도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육이었고, 또 하나는 불의한 현실에 대한 저항과 개혁운동이었다.
한국장로교의 초기 선교사들은 율법주의적인 보수주의 신앙으로 무장한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이 심은 한국교회를 지도하기에 알맞는 교역자 양성을 위해 힘써 왔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은 복음의 자유를 왜곡할 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교회사의 주류를 벗어난 것이었다. 이에 맞서 장공은 참된 복음에 입각해 “한국교회를 위한 세계적 교역자 양성”을 목적한 신학교육에 헌신해 왔다. 한신대학이 그의 기념비이다.
장공은 예언자를 연구한 구약학자로서 역사의식에 투철한 교역자였다. 따라서 불의의 역사적 현실에 직면해서는 과감히 예언자적 역할을 담당했다.
박정희 정권이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자 그는 분연히 일어섰다. ‘국제 앰네스티 한국위원회 위원장’(1972), ‘삼선개헌 반대 범국민 투쟁위원회 위원장’(1973), ‘민주수호협의회 공동의장’(1973) 등을 두루 맡아가며 투쟁에 나섰다. 결국 해외로 가야만 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북미주 한국 인권수호협의회 의장’(1975), ‘북미주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위원장’(1978) 등을 맡아가며 활동했다.
그러나 80년대로 들어오면서부터 그의 주된 관심은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형성운동으로 집중되었다. 한국역사의 그리스도화를 넘어서 전 우주의 그리스도화를 염원했던 것이다.
장공은 자신에게 맡겨주신 소임을 다하며 하늘나라를 섬겨 왔다. 이제는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의 품에 안길 날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새벽날개 햇빛 타고
하늘 저켠 가더라도
천부님 거기 계셔
내 고향 마련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