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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진화(1)

마이대니 2009.12.23 19:45 조회 수 : 1846

 
[ 작성자 : 장기홍 - 지질학 ]

 

창조의 신화』(Myths of Creation)의 저자 필립 프륜드(Philip Freund)는 그가 대학 신입생이던 때 천문학 강의를 같이 듣던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 친구는 성경의 천지창조를 그대로 믿은 나머지, 교수가 가르치는 내용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수학실력이 뛰어나 학기말시험 결과는 자기보다 좋았다는 것이다.
지질학과에 입학한 학생들 가운데도 자기가 공부하게 된 과학과 어려서부터 간직해온 천지창조의 신앙 사이에 모순이 있는 것 같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필자는 가끔 그러한 학생들의 고백을 듣는다. 시험답안지에 그런 고백을 쓰는 학생도 있다. 때로는 더 과격한 학생도 있는데 그들은 대개가 소위 창조과학자들의 영향 때문임을 알게 된다. 그러한 학생들이 내 강의를 듣고 있는 모습을 눈에 그려보자. 그 가운데는 아예 진화는 있을 수가 없고 전지전능한 신의 창조로 모두가 존재한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있다.
신앙으로 말미암아 내 강의내용이 부담이 되지만 학점을 따기 위해서 하는 수 없이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있다 하자. 이 얼마나 피차에 고통인가!
이런 경우를 생각할 때마다 ‘종교와 과학’의 문제를 알기 쉽게 해설하여 학생들이나 일반대중을 바로 이끄는 일이야말로 나의 임무에 하나라고 생각되었다.
‘종교와 과학’이라 하면 상당히 광범한 주제이지만 ‘창조와 진화’라는 제목으로 범위를 좁혀놓고 보면 이 주제는 바로 나 같은 사람이 다루어야 할 바의 것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 예수교에서 출신 하였고 지질학 중에서도 진화의 문제를 떠나서는 어느 한 가지도 다룰 수 없는 지사학(地史學)을 근30년간 강의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근래에 와서 창조와 진화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느낌이 들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이른바 창조론자들의 활동에 있다. 창조론의 진원은 미국에 있지만 한국에도 이른바 창조과학회라는 것이 조직되어 있고, 그들은 전공에서는 진화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의 창조론과 대립되는 과학이면 어느 분야든지 헐뜯고 부정하고 다닌다. 교회나 기독학생회에서는 흔히 창조과학회의 회원인 연사들을 초청하여 집회를 열고 있다. 그들은 그것이 기독교와 성경을 지키는 파수꾼의 일로 알고 열을 올리고 있다. 아니, 진리를 옹호하는 일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지적 수준에 따라 창조와 진화를 서로 모순된 것으로 보느냐 보지 않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그렇다면 문명국에서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결이 없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가장 문명한 미국에서 창조론자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그들의 조직은 보수파 교인들이 헌금하는 재원을 사용하여 소위 창조론을 연구하는데 막대한 인력을 동원하고 있다. 그들은 생물교과서에 창조론과 진화론을 나란히 실어 학생들에게 이 둘을 대등하게 가르칠 것을 주장한다.
필자 자신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하는 찬송가가 절로 나올 때가 있다. 실로 우리를 둘러싼 자연계는 경이로 가득차 있다. 자연계의 일부인 우리 인간 자신의 오묘함이야말로 실로 놀라움의 느낌 없이는 바라볼 수 없다. 인체의 구조와 생리, 자동적 조절기능 등등 그 오묘한 기작(機作)과 그것이 자아내는 의식과 정신의 현상을 여실히 들여다본다면 인간존재를 가능케 한 우주적 의지를 촌탁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만일 진화과학의 전문 학도가 아니었더라면 인간을 진화과정의 소산으로 실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필자가 생물진화의 지식이 전혀 없던 고대인이었더라면 초월적인 절대자가 절대적인 권능으로 마치 도공이 흙으로 그릇을 만들 듯이 사람을 만들어내었다고 생각하기 쉬웠을 것이다.
필자는 진화가 창조의 과정이라고 보는 사람들 중 하나 이다. 과학적 사고의 훈련을 쌓는 동안 필자는 창조적 의지와 능력이 우주 속에 내재 내지 잠재해 있어서 그것이 변천과정을 통하여 진화라는 형식을 띠고 펼쳐진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의지와 과정 없이 따로 신을 생각할 수 없다. 이런 경지에서 보면 “신이 있다”는 말과 “신이 없다”는 말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진화냐 창조냐”라는 질문은 적중한 질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의 문제를 직접으로 다루지 않는 과학자들 가운데는 진화와 창조를 서로 모순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진화를 부정하고 창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적으로 큰 세력을 가지고 있는 창조론자 집단은 그들의 주장을 ‘창조과학’이라 지칭하고 ‘창조과학회’란 모임을 만들어 활발히 보급활동을 하고 있다.
이 글은 진화과학회의 불빛을 짐짓 피하는 창조과학자들, 그리고 창조과학자들의 선동으로 과학의 불빛을 차단 당한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을 위한 것이다. 독자들은 이 글을 통하여 소위 창조과학은 실은 과학이 아님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며 생물 진화는 학설이나 이론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