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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과 구름과 詩

마이대니 2009.12.23 19:43 조회 수 : 1774

 
[ 작성자 : 허만하 - 시인 ]

 

풀밭에 드러누워 흰 구름을 쳐다본지 너무나 오래다. 초록색 풀밭에 몸을 던지다시피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는 것은 조그마한 감격이었다. 엷은 갯내에 묻어 있는 풀 냄새가 반가워서 어린 아기처럼 몸을 한바퀴 뒤집어 보기도 했다. 투명한 바람에 실려 온 물결소리가 귓전에서 부서지는 것을 아주 먼 나라의 일처럼 귀기울이면서 다시 구름을 쳐다본다. 제주도 섭지코지 언덕 위에서였다. 구름은 언제나 길 위에 있다. 눈부신 햇살 둘레에서는 은빛으로 반짝인다. 어스름을 앞질러 치자 빛으로 물든 구름은 시간 속에서 사라진다. 휘어진 지평선을 따라 미끄러지던 구름은 다시 바람 속에 자취를 감춘다. 더 먼 세계를 동경하는 영원한 순례자의 길. 구름에 대한 헤세의 아름다운 묘사에 홀리어 문고판 책을 엉덩이 주머니에 지르고 다녔던 중학생 시절. 그 무렵의 무구한 나날이 떠올랐다.
우도의 풀밭은 더 넓고 아름다웠다. 납작한 우도(소섬)는 한 쪽 끝에서 고개를 쳐든다. 사람들이 우도봉(132m)이라 부르는 이 지대는 산이라기 보다도 광활한 고원이었다. 이 고원 자락은 부드럽게 지면으로 흘러내린다. 1만4천 평을 웃도는 (시야에 들지 않는 우도봉 뒤쪽은 제외하고) 이 고원의 넓이를 초록색 풀이 덮고 있는 것은 드물게 보는 장관이다. 시야를 가리는 나무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았다. 고원의 한 쪽 끝은 깎아지른 바위 벼랑이다. 벼랑 발치는 시퍼렇게 맑은 바닷물에 잠겨 있다. 벼랑 쪽으로 붙어 서있는 울타리를 따라 사람들은 천천히 걸어 오른다. 나는 수직으로 서 있는 벼랑 정상을 거의 마주 볼만한 자리에서 (그곳에서 아름다운 지층을 만났다) 울타리에 기대어 뒤를 돌아보았다.
마을은 수평선에 키를 맞추듯 낮았다. 집도 밭도 바람도 수평선 구도에 맞추듯 스스로의 높이를 지우고 있었다. 문득 고흐 만년의 작품〈라 크로우의 추수〉가 가지는 분위기가 떠올랐던 것은 무리한 연상일지 모르지만, 황색과 연초록 빛 논들이 수평선으로 정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기하학적 분위기 때문에 고흐 자신이 자기의 풍경화 가운데서 가장 잘된 것이라 말했던 아를르 시절의 그 그림이 생각났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마을 이름은 모르지만 그 경관은 우리 가족들이 함께 동의한 잔잔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누렇게 익은 그 보리밭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검멀래 에 이르러서였다.
이 풀밭을 내려 올 때 누군가 〈초원의 빛〉이라 말했다. 엘리아 카잔 이란 이름이 화답하듯 뒤따랐다. 그 동안 기억의 밑바닥에 숨어 있던 옛날 영화 제목이 문득 떠올랐을 만치 고원의 풀밭은 남국의 맑은 햇빛을 받아 싱싱한 빛을 뿜고 있었다. 구름 그늘이 떨어져 있는 곳에서는 그만한 크기의 무거운 초록색을 보이고 있었다. 구름 움직임에 따라 반짝임의 농도도 그 자리를 옮기는 것을 바라보면서,〈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은 흘러간 명화 제목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영국 시인 워즈워드의 시 구절이란 사실을 상기했다.“풀잎이 빛날 때, 꽃이 아름다이 피어날 때 / 그 시절 다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서러워 말라 / 그 속에 숨어 있는 힘을 찾아볼지니.” 우리 둘레에서 사라지고 있는 풀밭과 시를 나는 우도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풀밭에 벌렁 누울 수 있었다. 그리고 구름의 행방을 한참 쳐다 볼 수 있었다.
섬에 오를 때 서둘던 나머지 놓쳐버린 우도 팔경 표지석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돌아올 무렵이었다. 안내 표지석의 네 째 줄의 '지두청사 地頭靑莎'가 바로 오늘 걸었던 풀밭이고 그 풀이 잔디라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이 잔디밭은 우도봉을 휘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검말래 (검은 모래라는 뜻이다)에서 작별인사처럼 위를 처다 보았을 때였다. 갈색이 섞여 있는 초록색 풀은 바람 때문인지 땅바닥에 붙다시피 누워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부드러운 능선에 걸려 있는 한 덩이 구름 언저리도 은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근래 풍경은 한 권의 시집이란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풍경을 찾아 길 위에 서는 것이 한 권의 시집을 읽는 행위인지 또는 한 권의 시집을 쓰는 일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집이 꼭 글자로 쓰여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풍경은 우리가 수동적으로 받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찾아내는(선택하는) 작업 끝에 얻어내는 귀한 소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 한 토포스를 찾아 길 위에 서는 것이 나들이의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