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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참회록

마이대니 2009.12.23 19:36 조회 수 : 1681

 
[ 작성자 : 아람.김현옥 - 쎄던 이리노이주립대학 교수, 언어학 ] 


일리노이 127번 도로가에 있는 라일플종묘원의 두 채의 온실이 삼동을 지나서 비니루포장을 재치고 문을 연다. 수백종이 넘는 오만가지 봄꽃들 사이로 손님들이 붐빈다. 대일도 나를 부축해서 부지런히 그곳을 찾아 간다. 제라늄꽃을 설흔 그루쯤을 사면 금방 자동차 투런크와 뒷좌석이 가득해진다. 그녀의 진료소 문앞 배란다랑 계단 양가를 제라늄화분으로 단장을 한다. 나머지는 집으로 가져와 뒷뜰에 줄지어 놓고는 한 여름내 보라색 제라늄꽃을 즐긴다.

 

작년 좀 늦어서 사월도 지나 오월초에야 라일플을 찾았다. 그 해 따라 좀 분홍이 진한 꽃잎이 활짝 핀 무궁화가 유난히도 내 눈길을 끌기에 대일더러 저것이 한국의 국화라고 일러주었더니 금방 “하이비스커스, 샤론의 장미!” 하고 반색을 하며 그냥 지나치려는 나를 되세우고는 얼른 한 그루를 내 팔에 안겨 준다.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삼천리 강산을 덮고 있을 무궁화라는 꽃을 가까이에서 눈여겨 본 일 조차 없는 나였다. 그저 그것이 나라꽃이고 공문서에 의례 찍힌 무늬, 순경 아지씨 모자에 멋없이 붙은 닉켈부치 휘장 정도로만 여겼지 무궁화가 특별히 뭐 아름답다거나 사랑스럽다고 여긴 일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바른 말일 것이다. 무궁화가 우리 민족의 강인성을 표상한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오랑케와 왜구의 말발굽에 짓밟힌 우리의 어두웠던 역사를 되새기게 하는 꽃이어서 좀체로 가까와지지 않는 것이다. 본심을 터러놓는다면 우리의 선인들이 하필인면 골르고 골라서 진저리 나게 피었다가는 지고 졌다가는 피는 무궁화를 국화로 삼았을까 원망스럽기마저 하였다. 워싱튼을 끼고 흐르는 포토막강 기슭에 약속이나 한듯 한 날 한 시에 일본의 개화정부가 기증했다는 수백 그루의 벗꽃들이 소리없는 포죽처럼 터저피어 봄이 무르익었음을 알리고 그도 아차 할 사이에 억만개 낙화 되어 훨훨 흩날려 땅을 덮는다는 씨엔 엔 방송에 시기스런 짜증도 부려 본다. 소월의 주옥같은 시가 없었던들 우리말 <동무>처럼 타부가 되고 말뻔 한 진달레, 피어 간드러져 내 열다섯 청춘을 일깨워 주던 조춘의 개나리, 어언 초로에 든 지아이 신부 영자가 “오마 해당화!” … 미국 온지 십여년만에 본다고 눈물을 글성이든 그런 해당화, 보름달을 우리만 아는 달이라고 여겼듯이 미국에도 우리 꽃이 있구나고 신기해하든 적도 있었던 모란꽃 … 내 노스탈지아 속 깊이 사모처 있는 이런 꽃들에 비하면 무궁화는 신라 고도를 뒤덮은 아스팔트 관광도로 만큼이나 인위적인 것으로만 보인다.

 

그래도 무궁화 한 그루 쯤은 있어야지 하고 뒷뜰 탁자위에 올려 놓는다. 때 아닌 새 식구를 맞은 뜰이 어딘지 훤해진 듯 하고 내 눈길도 자꾸만 뜰로 쏠리곤 한다. 대일도 대일 이었지만 정작 가볍게 흥분하고 있었던 것은 나 스스로 였는지 모른다. 그럴 줄 알았으면 진작 한 그루 사다 놓을 것을 하고 때 늦게 좀 뉘우처지기마저도 하였다. 다섯 개의 큼직한 잎을 있는 데로 벌린, 더도 말고 딱 한 송이의 꽃봉우리 밖으로 암술 수술이 기운차게 치솟고 있었다. 그토록 한 나절 싱싱 하던 꽃잎도 어두어지기가 무섭게 시들어 들기에 빨리도 지는구나 하고 약간 실망 섞인 핀잔을 주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늦잠을 자고 나와 정원 한 가운데를 보자 나는 갑작스레 엄숙해지고 말았다. 또 한송이 다른 무궁화가 솟구처 오르는 정념에 못 이기듯 초여름 햇살 속에 마치 한 개의 기적처럼 가냘피 떨며 빛나고 있었다. 맨발로 정원에 뛰어 나가 몇장이고 카메라에 담곤 하였다. 대일이 때 아니게 흥분 한 나를 의아해 하거나 말거나 백과사전을, 심지어는 도서관까지 가서 식물사전을 뒤적이고 컴퓨터에 매달려 인터넷에 하이비스커스 항목을 찾아 해메는 등, 나는 무궁화의 아름다움에 사로 잡힌 한낮 포로에 지나기 않았다.

 

접씨꽃과 목화꽃과 함께 아욱과에 속한다는 하이비스커스는 별종이 이백종이 넘는다는 데 우리나라의 국화인 무궁화는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Hibiscus Syriacus 일명 “샤론의 장미”(The Rose of Sharown)로 불리는 아세아산 관목종인 모양이어서 1967년판의 사뮤엘 마틴, 이양하, 장승은 공저의 한영사전에도 그렇게 나와있다. Hibiscus Syriacus은 홋겹으로 십센치 거리만큼의 큼직하고 탐스런 다섯 개의 꽃잎을 피우는 데 그 색깔도 빨강에서 흰색까지 다양하단다. 그런 꽃잎을 열고 내 인지손가락 만한 긴 수술이 밖으로 높히 솟아난다. 자세히 보면 빨간 수술 끝은 다시 여러개의 작은 가지를 치고 있다. 암술들은 꽃잎 뿌리에서 나지 않고 수술 봉우리에서 한 두어쎈치 아래 수술 둥지에서 자라나 수술관을 에워싼다. 꽃잎들은 아래 끝이 붙어 있어서 만발이 된 후에 질 때면 한잎씩 따로 떨지지 아니하고 접은 부채같이 오무리고 떨어지는 것이 벚꽃의 어지러운 산화에 비해 단정하다고나 할까, 깻잎 모양을 한 잎사귀는 짙은 녹색에 도자기같이 반질하게 윤기가 나서 언제나 싱싱해 보인다. 나는 무궁화 나무는 관목이어서 나지막 한 줄만 알았는 데 키도 팔구 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 한 여름동안 우리집 무궁화는 수 없는 꽃으로 뒷뜰을 밝히고 나와 대일의 가슴을 연잇는 흥분으로 채워 주었다. 한 달 간격으로 한 며칠을 쉬는 모양이어서 뜸해서 소식이 없다가 다시 피는 것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곤 하기도 하였다. 하루에 한 송이가 귀하게 피니까 한달이면 설흔 개, 그러니까 오월 한달서부터 찬서리 내리기 전 구월까지 백오십일, 그중 스무날을 쉬었다 해도 백개하고도 설흔 개의 꽃이 피고는 지고 졌다가는 피고 한 것이었다.

 

화분 체 응접실에서 겨울을 나는 우리 집 무궁화는 화분에 꽂힌 작은 프라스틱 푯말에 보면 키는 다 커 봤자 영점구 미터에서 일점팔 미터가 고작이라고 하니, 어쩌면 우리 집 프로리다산 무궁화는 샤론의 장미가 아니고 차이나 하이비스커스라는 별종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러면 어때, 백설흔 몇개의 불꽃을 튀겨 낼 정념을 가꾸며 오늘도 우리집 무궁화는 소리없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2001년 2월 미국 중서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