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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고작업에서 얻은 교훈

마이대니 2009.12.23 15:41 조회 수 : 1476

 
[ 작성자 : 김효숙 - 조각가 ]

나는 조각을 만들고 가르치며 살아왔다.
조각을 만드는 재료나 그 기법은 다양하여, 조각가의 성격과 체질에 따라 그가 즐겨 사용하는 재료가 있게 되고, 그 재료를 다루는 기법 또한 표현하려는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생겨지게 된다.
어떤 조각가는 단단한 돌이나 나무를 쪼아 형상을 만들고, 어떤 이는 강한 쇠붙이를 뜨거운 불에 달궈 두드리고, 녹여 붙여가며 자신을 표출한다.
내 경우는 주로 흙을 주물러 붙치고 떼어가며 나의 생각과 느낌을 형상화해 왔다. 그런데 이 흙이라는 재료가 부드럽고 망가지기 쉬운 재질이여서 완성된 작품 그 자체로 보존할 수 없기 때문에 보다 단단한 자료로 바꾸어 두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 그 뒤처리가 불가피하다. 완성된 흙 원형의 속을 비우고 잘 말려 항아리처럼 질구이(테라코타)로 만들거나, 석고뜨기란 것을 하여 흙 원형을 석고원형으로 바꾼 후 다시 영구보존을 위해 주물작업을 통해 청동작품으로 완결시키케 된다.
이렇게 단단한 재료로 바꾸는 과정에서 작품원형은 파손되거나 없어질 염려가 있게 된다. 석고뜨기란 먼저 완성된 흙 원형 위에 물에 갠 석고를 일정한 두께로 덮어 씌어 석고 겉형을 만들고, 쪽문을 내어 그 속의 흙을 모두 긁어내어 비운 후 흙이 있던 자리에 석고를 다시 넣어 굳힌 후, 겉 석고 겉틀을 깨어내 버림으로서 흙으로 만들었을 때와 똑 같은 석고 원형을 얻게 하는 작업이다.
이 석고뜨기 과정은 창의적인 조형의 과정이 아니면서도 하나 하나의 과정에서 실수를 할 경우 애써 심혈을 기우려 만든 작품을 잃어버리게 되거나 흠이 가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초심자에게는 여간 신경이 쓰이고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나도 대학교 삼학년, 처음으로 국전에 출품하기 위해 밤을 새어가며 석고뜨기를 하는 도중 지치고 무리한 작업으로 석고 겉틀이 깨져 낭패를 본 경험이 있다. 너무나 허탈하여 고열에 시달리며 크게 앓고 일어났었다.
이제 사십년 가까이 조각을 하며 살면서 수 없이 석고뜨기를 하고 이젠 요령이 늘고 익숙해져 큰 작품도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해내고, 어떤 때는 흙 작업 동안의 정신적 피로를 육체적 노동을 통해 쉬기도 한다.
이 석고뜨기 과정 동안에 드는 수고와 노동이 대단하여 처음으로 이를 경험하는 사람은 많은 이야기 꺼리를 갖게 된다. 학기말이 되면 한 학기 동안에 흙으로 만든 작품을 석고로 옮기는 필연적인 과정을 학생들은 치르게 된다. 조소과 학생들은 대부분 입학 전에 경험을 갖고 오지만 타 학과(회화, 공예….)의 기초소조 과목에서는 처음으로 석고뜨기를 하는 학생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 흥분과 경험이 진하다.
나는 학기가 끝나는 마지막 시간에는 전체 마무리를 위해 평가회 겸 종강파티를 꼭 했는데 이 때 학기 동안에 자신이 느끼고 깨달은 것을 자유롭게 이야기함으로써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내 스스로도 한 학기 동안의 결과를 재확인하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장 가까운 체험인 석고뜨기에 대한 경험담이 많이 나오게 된다.
어떤 학생은 너무 힘이 들어 조소과 학생들과 선생인 나를 존경하게 됐다고도 하고, 또 어떤 학생은 정성들여 만든 흙 작품을 긁어내 없앨 때 너무 아까웠다고도 하고, 또 어떤 학생은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정성을 다해 만든 작품 위에 허연 석고를 덮어씌울 때는 두렵기도 하고 허무하게 느껴졌는데 마지막 석고의 겉형을 깨낼 때 속에서 자신이 만든 똑 같은 작품이 조금씩 조금씩 얼굴을 나타낼 때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고 흥분한다. 그래 한 조각씩 겉석고가 떨어져 나갈 때마다 환호의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런데 몇 해 전의 종강파티 때였다. 전례와 같이 돌아가며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있는데 한 여학생이 자기는 이 흙 작업과 석고뜨기를 통해 깊은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흙을 한점 한점 붙여 가며 조그만 흙덩이 하나도 좀 더 나은 형태를 위해 아끼고 더해 정성껏 형태를 만들어 가고, 또 이렇게 소중하게 만든 작품에 석고를 발라 새로운 재질로 거듭나게 하는 힘든 과정이 마치 어머니가 자신을 몸 속에 품어 고이 기르시고 출산하는 과정과 같게 느껴졌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아픔의 깨짐과 고통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시고 기르셨다는 그 감사와 감격의 이야기를 하며 북받쳐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우리 모두는 뜨거운 마음으로 함께 눈시울이 붉어졌고 모두 숙연해져 아무 말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 학기 동안 유달리 빈둥대며 시간을 보냈던 한 여학생이 어럽게 말문을 열었다. 친구가 저렇게 깊은 생각과 체험을 하는 동안 성실치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지금이라도 이렇게 깨닫게 해준 친구에게 감사하며 아직 미비한 마무리 작업을 성심껏 끝내 오겠노라고 약속했다. 나 또한 석고뜨기를 하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곤 한다. 흙을 없애 속을 비우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실체를 갖기 위한 자기부정의 의미와, 겉형을 깨 버리는 아픔과 결단을 통해 진정한 거듭남의 의미를 깨우처 보게 되는 것이다.
석고뜨기의 모든 과정들은 늘 나에게 “부정과 긍정” “파괴와 창조” “죽음과 생명” “비움과 체움” “십자가와 부활”의 문제들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