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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존중과 사회복지제도

마이대니 2009.12.23 15:40 조회 수 : 1239

 
[ 작성자 : 강호성 - 한성신학대학교교수, 사회복지 ]

한 한의학 전문가의 강의내용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내용인즉, 삶과 죽음에 대한 선문답 등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성경에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내시는 기적을 보이셨고, 석가모니께서는, 한 아낙이 자기아이가 죽은 줄도 모르고 업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하니까, 그제야 석가모니를 찾아가서 죽은 내 아이를 살려달라고 하소연하자, 석가모니께서는 죽은 사람이 없는 집에 가서 불씨를 지펴오면 죽은 아이를 내가 살려주마, 고 말씀하셨다. 그 길로 아낙은 죽은 아이를 업고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한 집도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이 없더라(모두가 죽은 조상이 있다)는 것에 그 아낙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인도의 어느 한 지방에 아주 덕망과 학식이 높은 도사가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도사를 맞아 가르침을 듣기를 원하였는데, 마침내 그 도사를 만나게 된 무리의 대표가 말하기를 「도사님! 청컨대 무지한 저희들을 위해 가르침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라고 청하자 할 수 없이 그 도사는 단상으로 올라가서 하는 첫 말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아는가? 라고 물으니, 무리들이 모두 “모릅니다”. 라고 대답하니 도사께서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라고 말하고는 단상을 내려오고 만다.
이에 무리들이 또 간하여 불쌍한 우리들을 위해 꼭 가르침을 달라고 조르면서, 이번에는 이들이 짜고 이번에 또 물으면 이제는 무조건 “다 안다”고 대답하자고 약속을 했다. 마지못해 단상에 올라간 그 도사는 또 묻기를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는가? 라고 묻자 무리들이 이구동성으로 “알아요”. 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도사는 다 아는 데 내가 더 이상 무슨 가르침을 줄 수 있겠는가? 라고 하며 단상을 내려오려 하자 또 무리들이 앞 다투어 말하기를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고 떠나시면 어찌합니까? 제발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라고 애걸하면서 서로 짜기를 이번에 또 물으시면 반은 “안다”고 하고 나머지 반은 “모른다”고 대답하자고 단단히 약속을 한 뒤 그 도사를 단상으로 모셨다. 아니나 다를까, 도사는 예의 그 질문을 또 하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는가? 라고 물으니까 이 기회를 놓칠세라 절반은 “예”하고 절반은 “아니요”라고 대답하고는, 무리들이 이번에는 가르침을 주시겠지, 하고 쾌재를 불렀는데,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절반은 안다고 하고 절반은 모른다고 했으니까 아는 절반이 모르는 절반을 가르치면 되겠네”. 하면서 기어이 자리를 떠났다.」는 우화가 요즘 같은 세태에 솔솔한 재미를 더한다. 최근의 모 모 일간지에 실린 신문기사가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한 사례는 기존의 생활보호법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바뀜에 따라 생활보조금의 액수가 월등하게 줄어들어 일어난 사건이고, 또 다른 기사의 내용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의 실시를 위해 과중한 격무에 시달리던 어느 한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여성)이 위암말기 판정을 받고 10월 21일, 진단10일만에 숨진 사건이다.
전자의 경우는 금년 10월 1일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라 이전(생활보호사업)보다 오히려 국가보조금이 줄어든 극빈자가 생활고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애처로운 사연이다. 그것도 벌써 두 건이나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 중 서울의 한 경우는 수급권자(client)의 나이 49세에, 무직이고 2급장애인이었는데 생활보호법이 적용되던 지난 9월까지는 월21만원의 생활보조금을 받았으나, 10월부터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실시됨으로 해서 아내가 파출부 일을 해서 월 50만원을 번다는 것이 자산조사과정에서 밝혀져 10월부터 보조금이 월 7만 원으로 대폭 줄었다고 한다. 숨진 수급권자의 부인은 “남편이 수입이 줄어들자 동사무소에 취로사업을 신청했다가 간질증세 때문에 안 된다는 말을 듣고 크게 낙담했다”고 전했다.
또 천안의 한 경우는 수급권자의 나이 46세에, 무직이었는데 이 경우도 기초 생활보장제의 실시에 따라 생활보조금이 21만원에서 6만2천원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수급권자는 현재 특별한 수입이 없이 혼자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따로 사는 큰아들(17세)이 중국음식점에서 월 50만 원을 번다는 것이 실사과정에서 밝혀져 보조금이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계에 대한 이렇다할 방법도 없는데 탄력성 없는 제도 때문에 아까운 목숨을 스스로 끊어야 하는 안타까움이 늦가을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는 보다 더 심각하다.
전국에 4,800명의 사회복지사가 공무원으로 현직에 몸담고 있으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실시에 따른 수급자 선정, 조사, 사후관리 등 가히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다고 당사자들은 하소연하고 있다.
이러한 위험성은 비단 숨진 P씨만의 일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예컨대 경기도만 해도 P씨 외에 여성 사회복지사 5명이 이번 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업무를 보다가 유산을 했다고 한다.
얼마나 업무가 고되었으면 고귀한 생명체가 유산될 만큼 자기 몸조차도 가누기가 힘들었을까? 병원 갈 틈도 없이 격무에 시달려야 하는 사회복지전담공무원, 그 뿐만이 아니다. 현재 사회복지전담공무원 정원이 732명인 경기도의 경우 벌써 올 들어 40여명이 퇴직을 했다고 한다.(퇴직율이 5%가 넘는 수준) 그러면 과연 위의 두 경우가 얼마만큼 그 실상이 열악하기에 그런가를 잠깐 살펴보자.
첫째, 기존의 생활보호법을 전면 개정해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바꾸고 그 시행을 지난 10월 1일자로 한다고 했다. 그것도 법률 제정이 1999년 9월 7일이었음으로 법률 제정 후 겨우 1년만에 시행하는 무리를 범해 충분한 준비가 미흡했다는게 전반적인 복지전문가들의 분위기이다. 즉, 예산확보문제, 사회복지전담공무원 확보문제, 자산조사의 기준과 방법, 빈곤선의 계측기준과 방법 등 여러 가지 준비과정이 간과되거나 또는 소홀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난 10월 초까지도 기초생활보장 수급금액이 최고 1,200,000원 (6인가구 기준)과 930,000원(4인가구 기준)이라고 홍보하다가 지난 10월 17일에야 보건복지부 공익광고를 통해 발표된 내용을 보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학생들에게 이번에 실시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과거의 생활보호법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처럼 우리 실정에 맞는, 그러나 조급한 실시가 문제이긴 해도 단계적으로 보완하면- 좋은 법이 될 것이라고 입이 마르도록 자랑하였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지급액은 홍보된 금액이 아닌 최저생계비에다 가구소득과 타 지원액을 뺀 나머지 즉, 차액지급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150여만 수급권자들에게 최고 120만원이니 하는 얘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뿐더러 설령 그렇게 될 것이었다면, 미리 실제로는 이렇게 된다는 것을 사전에 고지하거나 충분히 홍보를 하여 수급권자들로 하여금 지나친 환상이나 기대를 떨쳐버리게 했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런 과정 없이 바로 시행한 것은 지나친 행정편의주의식 발상이라고 밖에 달리 볼 수가 없어진다.
지금이라도 제도의 문제점을 빨리 보완하여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혜택을 보지 못하거나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수급권자들이 법적인 보호를 사회복지권 차원에서 누릴 수 있도록 조치가 취해져야 하겠고, 전국의 사회복지전담공무원들이 살인적(?)인 격무에서 다소나마 해방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선(전문인력수급)이 시급하다고 본다.
어제 필자의 여학생 제자 한사람이 남들이 모두 선호한다는 사회복지전담공무원직을 10년 경력을 접고 지난 10월 1일자로 사직했다는 씁쓸한 소식을 접하고, 앞으로 학생들에게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좋은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짐을 느끼면서 이 가을을 보낼 생각을 하니 갑자기 한기가 엄습해 오는데도 도저히 자력으로는 막지 못할 것 같다.
책임이론은 사회복지이론에서 회자(膾炙)되는 용어이다. 天人合一說에 바탕을 두는 이론으로서 帝王의 덕치사상을 강조하는 것으로 민생구휼의 책임은 군주가 져야 한다는 사상으로, 신라 제3대 유리왕이 신하와 더불어 순행을 나갔는데 길에 한 노파가 飢寒에 못 이겨 죽어 가는 것을 보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가 작은 몸으로 왕위에 앉아 능히 백성을 기르지 못하고 老幼로 하여금 이런 지경에 이르게 하니 이는 곧 나의 죄라」 하여 친히 옷을 벗어 그를 덮어주고 음식을 권하여 먹인 후 관리에게 명하여 곳곳마다 홀아비(鰥), 홀어미(寡), 고아(孤), 아들이 없는 이(獨), 늙은이(老), 병든 이(病)로서 자활할수 없는 자를 위문하여 식료품을 주어 부양케 하였더니, 이에 이웃나라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오는 자가 많았다. 이 해에 민속이 즐겁고 편안하매 왕이 처음으로 도솔가를 지으니 이것이 가락(可樂)의 시초가 되었다고 기록(三國史記)되어 있다.
즉 帝王이 백성이 곤고하게 되었음을 자책하며 근신한 데서 이 땅에 사회복지제도가 생겨나게 된 근거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