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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ie Chan을 보니 Bruce Lee가 생각난다.

마이대니 2009.12.23 15:40 조회 수 : 1389

 
[ 작성자 : 이상훈 - 시카고대학 학국학 교수, 신학 ]

요즘 미국에서는 Jackie Chan (성룡)의 인기가 대단하다. 수년 전부터 미국 영화시장을 치고 받고 차더니 마침내 2년 전에 Rush Hour 이란 코미디 영화의 대성황으로 Sylvester Stallone 또는 Arnold Schwarzenegger에 버금가는 액션스타로서 자리 매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Saturday Night Live”와 같이 대중스타 인가 역할을 하는 유명 쇼에 초청되어 홍콩 발음이 그윽한 영어로서 미국인들을 웃기기도 하고 토요일 아침이면 “Jackie Chan”이라는 아이들의 만화영화에 주인공으로까지 등장한다. 그의 인기는 미국인들 사이에 인종을 막론하고 높지만 한국계를 포함한 동양계 미국인들 사이에 특히 높은 것 같다. 나는 이런 Chan의 영화를 볼 때마다 Bruce Lee (이소령)가 절로 생각난다.
나의 제수도 Chan의 열렬한 팬 중 한 사람이다. 한번은 Chan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수씨가 나에게 Chan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좋아하지만 Lee 보다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더니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의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뛰어난 무술솜씨 그리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용기에다가 서민적이면서도 세련된 익살과 옆집 아저씨와 같이 친절하면서도 밉지 않게 생긴 사내의 상을 소유한 Chan에 익숙해져 있다.
제수씨는 비록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서너 살 때 부모와 같이 조국을 떠나서 남미를 거쳐 미국에 이민 와서 유년기, 사춘기를 보낸 삼십대 초반의 여성이다. 이와 같은 제수씨에게 Lee가 다소 꺼림칙한 것은 당연지사일 수도 있다. 무술솜씨와 생김새에서는 Chan 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치더라도 늘 뭔가에 눌려 가지고 화가 잔뜩 나서 곧 폭파할 것만 같은 그의 스크린 이미지, 또 위장을 불허하는 그의 동양적 매너리즘은 미국화 된 제수씨에게 너무 심각하고 이색적으로 비쳐질 것이다. 어쩌면 제수 씨와 같이 80년대에 사춘기를 맞은 문화적 2세들이 70년대에 사춘기를 보낸 나와 같은 1.5세들처럼 Lee를 좋아하길 바라는 것은 시대착오일지도 모른다.
Lee는 미국에서 팽배했던 치욕적인 동양남성 stereotype를 격파한 인물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내가 Lee를 처음 알게 된 때는 미국에 갓 이민 왔던 1970년대 초기였다. 1971년도 12살 때에 시카고로 이민 왔었으니 한 14살쯤 되지 않았나 싶다. 현재 시카고의 한인인구는 대략 150,000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때에는 한국인들 사이에 미국 이민 붐이 불기 몇 년 전이어서 시카고의 한인 인구는 2,000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이 인구 중에는 학생들도 있었고 나머지 거주인들 대부분은 식당, 공장, 세탁소, 등 노동업에 종사했다. 길거리에서 한인을 만나면 반가워서 인사했고 영어를 능숙히 하는 한인들이 많지 않았으며 백인들에게 주눅이 들어서 사는 한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시기에 나는 어느 친지 아저씨를 따라서 극장에서 Lee의 걸작인 Chinese Connection을 봤다. 일제시대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인들에게 온갖 차별과 불의를 당하던 한 중국 청년(Lee)이 분노를 참다못해 복수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일본인들을 차고 때려죽인 다음 자신도 일인들에게 총살당한다는 줄거리였다. 잔인했지만 한국초등학교 6학년까지의 교육을 받고 이민해서 반일 사상에 투철했었던 나에게는 통쾌한 영화였다. 그 이후 Lee의 영화는 개봉되는 대로 다 보았는데 Return of the Dragon 그리고 Enter the Dragon과 같이 Lee가 자기 보다 훨씬 크고 힘센 백인들을 두드려 패는 영화를 특히 재미있게 보았다. 그 당시 내가 사귀었던 한인 남자아이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 같다. 실제로 Lee의 인기는 아이들 또는 동양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어른들 그리고 비동양인들 사이에서도 높았다. 타 인종 중에서는 흑인들이 유난히 Lee를 좋아했었다. 기본적으로 Lee의 영화는 재미있었다. 그의 액션 연출이 워낙 뛰어났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Lee가 나를 사로 잡은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배역들이 품어내는 강력한 동양 남성상이었다. 그의 영화 이미지는 백인들 앞에서 쩔쩔매는 요리사, 세탁소 주인, 또는 (MASH라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TV 풍자코미디의 경우에는) 소품과 다를 바없이 수동적인, 오리엔탈리즘에 길 들린, 동양남성 stereotype를 격파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Lee가 비록 은막에서이긴 하지만 특유의 반항적 카리스마를 발산하면서 압제자, 특히 백인 압제자들을 때려 누이는 장면을 볼 때마다 그 치욕적인 stereotype이 박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불어 어디를 가나 “Chink”라는 인종 모멸적 용어를 피할 수 없었던 7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적 상황에서 백인들이 Lee 앞에서 쩔쩔매는 장면을 볼 때마다 대리 복수감을 느낀 동양남자는 나만이 아닐 것이다. (”Chink”는 “Chinese”에서 비롯한 비방어로서 동아시안인 모두에게 적용되고 있다.)
아이러니 하게 이와 같이 하나의 stereotype를 지우는 역할을 한 Lee가 고의가 아니게 새로운 stereotype를 세우는 역할도 했다. 그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면서 미국인들 일부가 동양인 모두를 그와 같은 위협적인 존재로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양남자들 모두가 Lee와 같이 쿵푸를 잘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미국인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웃긴다면 웃기고 고민스럽다면 고민스러운 해프닝이 여러 동양인들에게 생기게 됐다. 나와 친한 목사님 한 분의 경험이 좋은 예다. 그분도 1971년도에 미국에 오셨는데 나보다 10년 가량 연상이시다.
Tennessee주 Nashville에 소재한 Vanderbilt Divinity School에 유학하러 오셨다가 정착하시게 됐다. 그 분은 신학교 시절 정규학업 외에 틈이 나는 데로 교도소 선교에 힘을 기울이셨다고 한다. 한 165cm의 키에 68Kg의 체구를 가지신 목사님은 결코 험상궂은 인상이 아니시다. 무술이란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으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목사님이 교도소를 방문하실 때마다 재감자들은 손으로 앞을 막는 시늉을 하면서 당신은 쿵푸의 고수이니까 내 근처에 오지마라라고 반농반진심의 말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분이 교도소 방문중재감자들이 문제를 일으켰을 경우 교도관들은 목사님을 앞장세워서 문제를 해결코자 해서 난감했었다고 하셨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Lee가 누구인지 알기도 전에 학교에서의 경험이다. 미국에 도착한 나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기에 5학년으로 재 편입되었다. 그리하여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시 졸업하고 이어서 중,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내가 초등학교에서 처음 들은 말 중 하나는 “Do you know karate?” 아니면 “Do you know Kung Fu?”였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Karate와 Kung Fu 둘 다 처음 들어 보는 단어들이었다.
나중에서야 그 말이 당수나 쿵푸를 아느냐라는 질문인 것을 알았다. 그만큼 Lee의 영향이 널리 퍼져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시절에 Lee가 유행시킨 Karate와 Kung Fu 때문에 상당히 애먹었다. 학교에서 싸움 꽤나 하는 얘들이 다 나와 한 판 겨루어서 내가 정말로 Karate를 하는지 못하는지 확인을 해야만 직성이 풀릴 것처럼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왜소하고 소심했던 나는 누가 때리면 가만히 있지는 않았지만 싸움은 잘 못했다.
따라서 나에 대한 얘들의 일방적인 관심은 고민스러웠다. 사실 한국에 있었을 때 태권도를 배우고 싶었지만 아버지께서 그런 것을 배우면 험악해진다고 하셔서 못 배웠다. 결국 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는 아버지께서도 마음을 바꾸셔서 늦게나마 허락하셨지만 어설픈 태권도 청띠 실력으로 싸움에 재주 있는 아이들을 당해내기는 역부족이었다. 싸워서 눈이 퉁퉁 부을 만큼 얻어맞기도 하고 그렇게 때려준 적도 있다. 다행히 고등학교에서는 나를 괴롭히는 아이가 없어서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Lee가 타계한지도 어언간 30년이 가까워진다. 그 사이 미국인들이 그렇게 이색적으로 여기던 동양무술도 미국 대중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아 갔다. 왠만한 미국 액션영화에서 앞차기, 옆차기, 뒤돌려차기, 등은 필수이고 다수의 대학교에는 동양무술 클럽이나 동아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Lee가 은막에서 눈에 띄게 동양무술을 과시했다면 한국 태권도 사범들은 묵묵히 미국 곳곳에 도장을 세워서 무술을 일반인들의 삶과 밀착시켰다.
그리하여 동양무술과 미국문화는 서로에 동화되어 갔다. Chan과 같이 미국 대중의 감을 잘 집는 동양 무술인이 성공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동양무술에 감이 좋은 Chuck Norris와 같은 미국배우도 인기를 누린다. 태권도가 올림픽의 한 종목으로 채택된 것도 이와 같은 상황과 깊은 관계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동양무술이 미국 대중문화의 한 부분이 되어 가는 동안 동양인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동양인들을 다 무술의 고수로 착각하는 미국인들은 이제 별로 없다. 동양인들 특히 많은 한국인들은 아직도 세탁소 또는 동네 식품점과 같이 노동집중의 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동양인들을 예전과 같이 별 볼일 없는 변두리인들로 보지는 않는다. 미국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동양인들이, 특히 이민 1세 이후의 동양인들이, 너무나 많아졌기 때문이다. 동양인들에 대한 새로운 stereotype가 있다면 그것은 모범적 소수인종 (model minority) 이라는 것이다. 생색이 깃들이고 외람스러운 표현이지만 옛 stereotype들에 비하면 낫다. 이와 같은 stereotype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동양인들, 미국을 유아기부터 자신의 나라로 생각하고 자란 제수씨와 같은 이들에게는 Lee 보다는 Chan이 훨씬 더 친근하고 매력적일 것이다. 그러나 타지에 와서 온갖 서러움을 겪으면서 제수씨의 세대를 키우신 사돈님들의 세대에게는 Chan보다는 Lee가 더 실감적이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이 두 세대 사이에 끼어서 Chan을 보는 1.5세들은 Lee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