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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발 교회의 기억

마이대니 2009.12.23 15:38 조회 수 : 1456

 
[ 작성자 : 박이엽 - 방송작가 ]
 
원래는 황량한 언덕이었을테지요.
도무지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었는데, 오갈데 없이 떠돌던 사내 하나가 거기다 움막을 쳤었답니다.
판 무식인데다 몸마저 성치 못했던 그 사나이는 근처에 있는 교회에 가서 허드렛 일도 거들고 심부름도 해주고 하며, 교인들이 주는 얼마 안되는 돈으로 먹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보니까 이 보잘 것 없는 움막집에 식구가 한사람 늘었더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아니고, 지팽이나 목발을 짚고서야 겨우 몸을 옮길 수 있는, 아주 병약한 사람이었답니다. 한데 이건 또 웬일입니까? 그러한 식구가 며칠 뒤에 또 한사람 늘었습니다. 역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병자였습니다. 그러고 며칠 못가서 또 한사람, 또 한사람... 이리하여 황량한 언덕위의 이 움막집은 마침내, 목발 짚고 지팽이 끄는 행려병자들의 합숙소처럼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움막집에는 딱 한가지 규칙이 있었습니다. 그 규칙이란, 맨 처음 이 움막집을 지은 사람, 즉 인근에 있는 교회에서 심부름꾼 노릇을 하여 얼마간의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정한 것인데, 모든 이들이 아침 저녁으로 한데 모여 기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 뿐이었습니다. 각자 마음대로 행동하였고 누구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아,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요. 날마다 몇사람씩의 새로운 행려병자들이 이 움막집을 찾아들어 왔건만, 이 움막집의 식구가 전체적으로는 별로 불어나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날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그 만큼의 숫자가 이 곳을 떠나갔으니까요.
왜 떠나갔느냐고요?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그 것입니다. 즉, 병이 나서 병원을 찾아왔던 사람은, 병이 나으면 떠나기 마련입니다. 처음에 행려병자로서 목발짚고 들어왔던 사람들은, 이곳에서 함께 기도생활을 하는 중에 병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병이 나은 그들은 필요 없게 된 목발들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가버렸는데, 한 때는 이 언덕이 그들이 버린 목발들로 뒤덮이다시피 했었답니다.
그 교회는 지금 카나다 몬트리올의 전체 시가지가 시원스럽게 내려다 뵈는 언덕 위에 웅장한 자태로 서 있습니다. 그리고 본당 출입구 위에는 수백개의 목발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데, 그 옛날 움막집을 거쳐 나간 행려병자들이 병이 나아서 떠날 때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간 목발들을 후대에 새 성전을 지으면서 발굴하여 전시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이 이야기의 신빙성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10여년 전 그 곳에 가서 그 무수한 목발들을 처음 쳐다 보았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마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 머리 속에 박혀있는 생각은, 그 목발들이 실은 그 옛날 움막집을 거쳐나간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들 자신의 것, 우리들 각자가 잠시도 놓지 못하고 살아가는 권력의 목발, 금력의 목발, 지식의 목발, 하다 못해 어느 집 청소부의 목발, 그런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하나님 계신 성전 앞에서는 그토록 초라한 무용지물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