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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예술과 종교적 예술

마이대니 2009.12.22 17:47 조회 수 : 1524

[ 작성자 : 유동식 - 전 연세대학교 교수, 신학 ]


1.종교-예술적 존재
예술이란 미적 이념의 형상화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이런 뜻에서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예술가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이 인간이다. 종교의 핵심이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에 있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피조자인 인간은 그 존재자체가 종교적이다. 그런데 인간은 “예술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의 본질은 “종교-예술적 존재”라는 데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발견한 가장 오래된 인류의 문화 흔적은 구석기인들의 것이다. 프랑스 남서부에 있는 라스코 동굴에는 수많은 동물들의 형상을 그린 암벽이 있다. 생동감 넘치는 그림들이다. 이것은 약 2만년 전 구석기 시대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그림들은 결코 감상을 위해 그린 작품들이 아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동물사냥을 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명의 안전과 성공적인 사냥을 위해 초월적인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 제의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 동굴의 벽화로 남아 있는 것이다.
고대인들에게는 삶과 종교와 예술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였다. 살기 위해 사냥을 했고, 사냥의 성공을 위해 신령에게 제사를 지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종교와 예술이 둘이면서 하나였다. 곧 인간이 본래 종교-예술적 존재라는 사실의 실증을 구석기인들의 문화 흔적에서 본다.

 

2.종교와 예술의 관계 변천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본래 모습은 종교-예술적 존재였다. 인간에게 있어 종교와 예술은 둘이면서 하나이다(二面一). 그것은 마치 음 양이 하나의 태극을 만든 것과도 같고, 인간 예수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하나인 것과도 같다.
그러나 기독교 문화가 형성되고 교회가 세상에 군림하는 중세 서구에서는 종교가 예술을 지배하게 되었다. 둘이면서 하나가 아니라 종교가 지배하는 주종관계로 변했다. 그리하여 종교를 주제로 형상화한 종교예술이 형성되었다. 이것은 기독교 미술에서뿐만 아니라 불교 미술에서도 그러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자 종교예술에는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곧 종교와 예술이 둘로 분리되고 만 것이다. 르네상스가 인간을 발견하고 종교적 지배로부터 해방한 것은 옳았지만, 종교 없는 예술, 예술 없는 종교를 초래함으로써 인간의 본래적인 존재 양상을 상실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술 없는 종교는 도덕을 위한 종교로 변하던가 영적 구원을 파는 장사꾼의 종교로 변해갔다. 종교의 타락을 몰고 온 것이다.
한편 종교 없는 예술은 자신을 우상화한 예술지상주의로 흐르던가, 아니면 기술(art, Technique)의 무제한적 발전으로 오늘의 과학 기술문명과 위기를 낳게 했다.
중세로부터 왜곡된 인간상은 드디어 종교와 예술의 분리로 인해 본래적 인간성 상실이라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먼저 깨달은 것은 예술가들이다. 그들은 예술에 있어서의 종교적인 차원을 도입했다. 종교와 예술의 재통합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중세적인 종교예술의 재현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종교적 질문과 그 응답을 형상화하고 표현하는 “종교적 예술”을 전개해 나갔다. 그 전형적인 인물로 파브로 피카소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3.<게르니카>와 인간의 실존 상황
<게르니카>는 1937년 나치 독일공군이 스페인 프랑코 정권의 용인하에 케르니카를 무차별 폭격한 것에 대한 피카소의 분노를 표현한 그림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의 묘사가 아니라 본래적인 존재로부터 이탈한 오늘의 문화와 인간의 참상을 폭로한 종교적 그림이다. 어두움이 공간을 채운 흑백으로만 그린 그림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인간의 실존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모든 형상은 형태적 변형(deformation)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사물의 표피적인 이해를 파기하고 본질적인 심층 이해를 도모하는 동시에, 현대의 부조리와 불안 상황을 표현하는 형식이기도 하다. 왼쪽에 있는 황소는 광폭하고 음탕한 미노타우로스이다. 20세기에 등장한 독일, 스페인, 이태리, 일본의 파시즘과 군부독재정권의 상징이다.
황소 턱밑에서 죽은 어린이를 안고 울부짖는 여인은 바로 황소에게 능욕당한 백성이다. 그 밑에는 부러진 칼을 움켜쥔 채 쓰러진 죽은 청년이 있다. 인간의 미래가 죽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칼을 쥔 청년의 손위에는 한송이의 가냘픈 꽃이 피어 있다. 황소의 횡포로 청년의 죽음도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중앙에는 청년을 짓밟고 신음하는 군마가 있다. 죽음을 앞두고 몸부림치는 파시스트들의 신음이다.
오른쪽 납골당 속에는 울부짖는 어린이와 여인들이 있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에 있는 한 여인은 등불을 움켜쥔 굵은 팔뚝을 중앙을 향해 쑥 내밀고 있다. 납골당을 뚫고 나온 등불이다. 구원의 등불인 것이다. 죽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그 현장에 하나의 등불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 현실을 소재로 한 인간 실존의 상황을 그린 오늘의 종교화이다.

 

4.구원의 해방과 <삶의 기쁨>
<게르니카>의 배경이었던 파시즘의 패망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독재정권과 제국주의의 공포로부터 세계가 해방되었다. 인권과 삶의 기쁨을 되찾는 역사가 전개되어 갔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식민지들이 독립을 서두르고 있던 1946년, 피카소는 새로운 연인 지로와의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름다운 지중해 연안에 머물고 있었다. 역사와 개인과 자연이 다같이 존재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을 그때 그는 <삶의 기쁨>을 제작했다. <게르니카>가 죽음의 언덕 골고다의 십자가를 상징했다면 <삶의 기쁨>은 부활의 아침을 노래하고 있다. 구원과 해방의 새로운 세계의 전개이다.
<게르니카>가 검정과 회색 일변도의 그림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삶의 기쁨>은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삼원색의 그림이다. 하늘과 바다와 육지가 있고, 파랑과 노랑과 빨간 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게르니카>는 형태 변형의 기법을 구사했지만 실재 사물들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삶의 기쁨>은 아라베스크 문양 형식으로 그린 신화들의 그림이다. 신화는 영적 초월적 세계의 사실들을 이 세상적인 것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부활에 대한 새로운 존재와 세계의 표현을 위해 적절한 매체가 있다면 그것은 신화적인 것들이다. <게르니카>와 <삶의 기쁨>은 그 내용에 있어서도 대칭적이다. 황소 미노 타우로스는 피리 부는 목신 켄타우로스로 변했고, 청년을 짓밟고 죽음을 외치던 군마는 디오니소스(박카스)의 춤추는 무녀로 변했다.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는 재생의 부활 신이기도 하다. 신음하던 여인들과 어린이들의 자리에는 지신의 피리소리에 맞추어 춤추는 염소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제는 등불이 아니라 태양이 빛나는 하늘과 바다와 땅이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기쁨을 구가하게 하는 창조적 구원과 부활의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