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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Carmen) - 구멍난 스턱팅의 매력

마이대니 2009.12.08 16:32 조회 수 : 1455

[ 이상범 - 밀알교회목사 ]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은 메리메의 중편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원작자 메리메가 그리는 카르멘의 용모는 이렇다. “살결은, 매끄럽긴 했지만 구리빛에 가까웠다. 사시인 듯한 눈은 초리가 길면서도 동그래서 빛이 났다. 입술은 약간 도툼한 편이나 단정했고 그 사이로 껍질을 벗긴 아몬드 알보다 더 흰 이를 이따금씩 들어내곤 했다. 삼단같이 긴 머리칼은 좀 굵은 편이었지만 칠흑같이 검었고 까마귀의 날개처럼 검푸른 광택을 머금고 있었다.” 또, “작은 몸집에 비해, 뚜렷하고 큰 눈, 젊고, 발랄한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야릇한 야생 미를 발산하고 있었다.”라고도 쓰고 있다.
영상매체의 발달로 집에 앉아서도, 많은 오페라를 귀로만이 아니라, 눈으로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나, 한 편 당혹스러울 때도 있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 출연하고 있는 명 소프라노들 - 아그네스 발차, 마리린 혼, 레온탄 프라이스, 로스 앙헤레스 - 등 기라성 같은 프리마돈나들 가운데 그 누구도 메리메가 그리는 카르멘에 근접한 용모를 지녔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페라의 주연으로 무대에 설 수 있으려면 빨라도 삼십대 후반이거나 사십대는 되어야 한다. 이미 허리는 절구통이 된 다음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나름대로 카르멘의 매력을 재현해내는 것이 신통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세비리아의 담배공장 위병으로, 순진하고 충직하기만 했던 호세가 카르멘을 보게 되자 당장에 그 매력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호세가 카르멘에게서 보았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원작자 메리메는 호세의 입을 통해서 이렇게 그리고 있다. “그 여자의 붉은 치마는 너무 짧아서 여러 군데 구멍이 난 그녀의 흰 스턱킹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있었지요… 모록코 가죽의 빨간 구두는 여간 예쁘지가 않았는데, 그 구두를 묶고 있는 리본 또한 타는 듯 붉은 빛이었습니다…”
카르멘을 놓아 준 대가로 호세는 영창신세를 지게 되지만, 호세는 굇심한 카르멘을 잊지 못해 한다. “왜 나는 이런 벌을 받게 되었나? 나를 업신여기는 저 하잘것 없는 보헤미아 여인 때문이 아닌가? 아마 지금쯤은 거리에서 도둑질이나 하고 있을 테지. 그 따위 여자 때문에 나는 일생을 망치려 하고 있지 않는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호세는 그 여인을 잊을 수 없어 한다. 무엇 때문에?
“그녀가 도망칠 때, 호세 코앞에서 아른거리던 구멍난 스턱킹”이 도무지 그의 눈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고 메리메는 쓰고 있다. 호세를 꼼짝 못하게 한 것은 바로 그 구멍난 스턱킹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나가는 말로라도 절대로 카르멘다운 용모를 갖추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오페라 가수들이 카르멘을 성공적으로 연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 그 비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프리마돈나들의 스턱킹에 구멍만 내면 만사 오케이란 말이 아니다. 그들의 노래와 연기가 구멍난 스턱킹으로 집약되어질 수 있는 야성적인 분위기를 충분히 표출해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막이 오를 때 다소 어색했던 분위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긴장감으로 틈이 없어지니 말이다.
또한 여자의 아름다움이란 미스 코리아적 균형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하고 싶은 것이다. 구멍난 스턱킹으로 뇌쇄적인 매력을 연출해내는 여인이 바로 카르맨이고 보면, 구멍난 스턱킹으로 집약되는 여인의 매력은 호세만이 아니라 오페라를 즐기는 모든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기에, 절구통 아주머니들이 오페라 무대를 주름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말이다.
1953년 봄이었던가? 부산 임시 수도 당시, 토성초등학교 교정에서 세계적 아르토 마리안 앤더슨의 독창회가 있었다. 두 시간을 버틴 극성 덕에 가설 무대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필자는, 정작 앤더슨이 무대에 오르자 나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눈을 가릴 수 밖에 없었다. 갓 스물을 넘겼을 총각은 차라리 괴물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기는 왜 그렇게도 검으며, 뚱뚱하다는 표현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그 몸통하며… 그러나 한 곡, 두 곡, 그녀의 유난히 검붉고 두터운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 가운데, 앤더슨의 모습은 천사는 아닐지 모르지만, 분명히 성자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