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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새긴 사랑과 아름다운

마이대니 2009.12.08 16:29 조회 수 : 1389

[ 유동식 - 전 연세대교수, 신학 ]

 

1. 밀로의 비너스

 

인류가 갈망하고 추구해 온 것은 “사랑과 아름다움”이었다. 우리들의 존재 근거인 창조주는 “사랑”이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창조한 모든 것을 보시고 좋다 아름답다고 하셨다. 인류는 하나님과 그의 창조적 세계를 흠모하며 살아온 것이다.
인체의 아름다움을 먼저 발견하고 이것을 찬양한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의 예술가들이었다. 시인들은 신화를 통해 아름다운 인간상을 전형화하였고, 조각가들은 이것을 돌로써 형상화하였다. 이상적인 인체상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고전시대의 조각들이 그러하다.
기원전 4세기 말경 마게도냐의 왕 알렉산더는 지중해 일대와 동방의 제민족들을 정복함으로써 헬레니즘 시대를 형성하게 했다. 이것이 기독교 형성의 문화적 배경이 되었다. 신약성서는 당시의 통용어인 그리스의 코이네였다.
헬레니즘 시대의 세계화와 풍요로움은 세속화의 풍조를 몰고 왔다. 이상적인 정신적 아름다움보다는 육체적인 미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 시대에 널리 숭상된 것은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였다. 이것을 로마시대에는 비너스라 불렀다. 아프로디테는 육체적인 에로스 사랑의 여신상으로 조성되었다.
그런데 B.C 200년 경에 조성된 최고의 아프로디테상이 있다. 이것이 <밀로의 비너스>이다. 최고라고 한 것은 육체와 정신미를 균형있게 담은 작품이라는 뜻이다. 단순히 관능적인 육체가 아니라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지닌 몸매와 단정한 얼굴을 가진 여인상이다. 그리스의 이상을 담은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상이다. 휴머니즘이 추구한 이상적인 인간상의 결정체이다.

 

2. 석굴암의 관음보살

석가여래는 입멸에 앞서 제자들에게 유언했다. “나의 가르침과 계율이 내가 죽은 후에는 너희들의 스승이 되리라. … 게을리 하지 말고 수행에 힘쓰라.” 그로부터 수백년에 걸쳐 불자들은 수행에만 힘써 왔다.
그러나 일반 신도들에게는 형상화된 신앙의 대상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불탑으로써 충족했으나, 차츰 부처님의 형상이 요청되게 되었다.
이 무렵에 알렉산더의 동방 침략이 인도의 서북부 간다라 지방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그리스의 조각문화가 전파되어 왔다. 필경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의 이념도 동반되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불상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점차 인도 뿐만 아니라 중국 등 불교가 전파되는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간다라의 불상은 다분히 그리스적 풍모를 하고 있다. 그러나 차츰 인도화되고 중국화되는 토착화 현상이 일어났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중국의 수와 당나라 시대의 불상양식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시 한국화의 길을 걸었다.
한국에 전래된 불교미술은 8세기에 조성된 석굴암에서 그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한 나라의 제작이 아니라 실로 수와 당의 불교의 결정체요, 나아가서는 동양의 종교와 예술의 귀결이었다.”(야나기)
석굴암 주실의 본존불은 진리를 깨달은 이의 형상이다. 곧 인간 석가모니와 진리가 하나로 된 형상이다. 진리란, 인간에 대한 사랑이요 자비이다. 불상은 곧 자비상이다.
본존불 바로 뒷벽에는 자비의 화신인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부처님의 본질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관음보살은 순결한 사랑과 아름다움을 지닌 거룩한 처녀상이다. 그녀의 머리에는 십일면이 있어 세상 구석구석의 신음을 듣고 본다. 중생의 모든 괴로움을 빠짐없이 구제하기 위해서이다. 그녀는 부처님의 등을 응시하고 있다. 그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들은 둘이 아니라 하나의 자비의 화신이며, 사랑과 아름다움의 화신이다.

 

3. 로마의 피에타

기독교화된 로마제국 안에서는 일체의 형상 조성을 금했다. 십계명에 따라 모든 현상을 우상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의 조각미술의 전통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동방의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그리스도나 마리아상을 표현하는 성상 “이콘”이 제작되었다. 하지만 8, 9세기에는 성상에 대한 우상 논쟁이 일어나고 성상파괴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같은 시대에 한국에서는 석굴암이 완성된 것이다.
그리스의 미술과 기독교문화가 만나게 되는 것은 천여년의 중세기를 지난 르네쌍스 시대에 와서이다. 교회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와 인간과 자연을 재발견함으로써 고대 그리스의 휴머니즘을 재생시키려 했던 것이다.
미술계에서는 기독교의 소재들을 형상화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레오날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 등이 있었다. 그중에도 풍부한 작품을 남긴 이는 미켈란젤로이다.
1498년 미켈란젤로는 어떤 추기경으로부터 조각 의뢰를 받았다. 내용인즉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앉아 있는 마리아 상이다. 당시 “로마의 어느 미술가도 만들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제작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완성된 것이 대리석으로 만든 <피에타>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24세였다.
죽은 아들을 무릎 위에 안고 있는 성모의 슬픔을 뜻하는 “피에타”지만, 그것은 단순한 슬픔의 형상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은 “죽었으되 살아있는 모습”이다. 근육과 혈관들이 살아있다. 부활을 기다리는 시체인 것이다. 그의 죽음과 부활은 인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사건이다. 성모 마리아는 시체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안고 앉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를 내려다 보는 성모의 얼굴에는 슬픔을 넘어선 사랑이 감돌고 있다.
30여세의 아들 그리스도보다도 어머니 마리아가 더 젊게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작가 스스로가 말했듯이 마리아는 영원히 순결한 성처녀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갈망하고 추구하던 “사랑과 아름다움”은 그리스의 비너스상으로써 표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숭고한 자비의 사랑으로 승화된 것은 석굴암의 관음보살상에서였다. 이것이 다시 신적인 아가페의 사랑과 아름다움으로 완성되게 된 것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