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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으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성서와문화 2009.12.23 15:42 조회 수 : 1432

[ 작성자 : 박영배 - 신학 ]

 

세상을 살면서 우리의 마음을 강렬하게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사랑을 경험할 때이며, 삶의 근원에서부터 변화를 경험하게 하는 것도 사랑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 속에서 영원한 것 세 가지를 믿음, 희망, 사랑이라고 지적하고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보다 더 대담하게 하느님은 곧 사랑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 요한 1서 4:16 ).
실로 이 말씀은 하느님과 사랑에 대한 깊은 예지와 통찰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요한1서 4:16에 의하면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으나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계속 하기를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시다고 한다.” 이 또한 사랑을 매개로 한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놀라운 관점이 아닐 수 없다. 구약의 이사야는 하느님을 파악하는데 특별히 하느님은 거룩하고 성스러운 분으로서, 아모스는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시는 분으로서, 그리고 호세아는 창녀와도 같은 이스라엘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으로 파악하였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상고한 말씀에서는 보다 직설적인 표현으로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라 한다.” 그러기에 우리가 사랑 가운데 있을 때 일체의 불안과 공포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고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 낸다는 것이다.(요한 1서 4:18). 사실 두려움이란 징벌이나 고난이나 시련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참된 사랑이란 모든 것을 감내하고 이기는 힘이기에 그 앞에 두려움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가 참된 사랑 안에 거할 때 우리를 엄습하는 온갖 불안과 공포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그러기에 생의 참된 용기와 힘은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예수의 제자들의 삶을 생각할 때에도 그 무식하고 겁이 많고 비굴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 원동력은 뒤늦게 나마 깨닫게된 예수의 사랑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선생이 떠나간 후 비로소 선생의 그 엄청난 사랑을 깨닫고 천하에 두려움이 없는 인간으로 변해갔던 것이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조그마한 계집아이의 말에도 겁에 질린 체 달아난 베드로가 그 후 3천명이 넘는 군중들 앞에서 담대히 예수를 증거 하는 사람이 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실로 놀라운 역사의 교훈은 1세기 당시 그 화려한 로마의 영광과 문명이 한쪽으로 퇴락 해 가는데도 30을 전후한 몇몇 젊은 제자들의 집단만이 온갖 시련과 박해 속에서도 역사의 여명을 꿈꾸며 희망과 생명력으로 넘쳐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 같은 변화된 삶을 살 수 있게 하였는가! 그것은 예수에 대한 사랑의 경험이다. 신약성서는 이와 같은 사랑의 고백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은 이 위대한 사랑을 이어 받고 산다는 것이다. 즉 크리스챤의 삶이란 필연적으로 형제와 이웃을 사랑해야하는 계명을 받고 사는 삶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하다는 이 계명을 받고 있다” (요한 1서 4:21)는 사실을 언제나 마음 속 깊이 되새기여 살아가야 할 것이다. 최근 한국교회는 교회가 가진 부와 지식과 인력과 힘을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일에 대단히 인색하다는 비판과 자성의 소리를 듣게된다.
우리는 또 다시 사랑과 평화의 주님을 기다리는 강림절을 맞아 더욱 겸허한 심정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삶 속에 구현되기를 기원하면서 이 계절을 맞었으면 한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