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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무각사(無覺寺)를 보는 감회

 

최종태 (대한민국예술원회원, 조각가)

 

광주천주교주교관 안에는 조그만 화랑이 있었다. 얼마 전 그 곳에서 전시회 초청이 있어서 그래서 모처럼의 나들이를 하였다. 그런 중에 김희중 대주교님하고 인사차 점심을 하게 되었다. 가까이에 절이 있는데 하시면서 가 보겠느냐는 의향을 물어서 우리는 차머리를 돌렸는데 금시 숲이 우거진 산길을 타고 이른바 무각사(無覺寺)라는 절에 당도하였다.

도심에 산이 있는 것도 의외였고 깜짝할 사이에 산속의 절을 만나는 것도 놀라웠다. 법당 전면에 낯익은 그림이 걸려있었다. 높이가 2m 폭이 8m라 하였다. 단상에 올라가서 그림을 만져보는데 유화(油畫) 그림이라 하였다. 그리는 데 2년이 걸렸다고 했다. 또 한 방에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를 색유리로 만들어 설치하였는데 절에 스테인드글라스를 들여온 것이다. 또 한 벽에는 수묵화 같은 수법으로 소나무를 그린 그림을 걸었는데 그것 또한 어색함이 없었다. 모두가 불교미술이란 전통을 뒤집은 것인데 모두가 신선하고 좋았다. 이럴 수가 있나 하게끔 혁신적인 발상을 조형예술로 성공시킨 것이다. 한국불교미술의 새 역사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여서 그 의미를 높이 사고 싶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현대미술을 절 안에 들여온 것인데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는 말이다.

천주교미술은 토착화를 해야 하고 불교미술은 현대미술을 수용해야 한다! 이것이 내 평소의 지론이었다. 그런데 불교미술 현대화가 광주 무각사에서 한 스님에 의해서 되고 있는 것을 보고 참으로 반가웠던 것이다. 나는 늘 한 사람의 머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계종에서 못하는 일을 시골 한 스님이 하고 있는 것이었다.

프랑스 동부에 우리가 잘 아는 몽블랑이라는 산이 있다. 그 아래 앗시(Assy)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에다 한 신부가 성당을 하나 지었는데 프랑스의 현대 미술가들을 초청해서 여태껏 없었던 새로운 집을 만든 일이 있었다. 1940년대 초에 뀌뜨리에(Couturier) 신부가 만든 그 유명한 앗시성당이 그것이다. 현대의 성당은 현대의 예술가들에 의한 작품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철학이 있었다. 마티스. 레제. 보나르. 샤갈을 비롯해서 루오의 유리화는 오직 그 성당에만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이후에 꼴뷔제성당이 만들어졌고 마티스의 이른바 방스성당이 된 것도 뀌뜨리에 신부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로마로 교황청으로 바람이 들어가서 베드로 대 성당의 문들이 현대의 조각가들에 의해서 교체되었고 조각가 만주(Giacomo,Manzu)가 교황 요한 23세의 초상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서 새로운 교회미술 선언이 나오게 된 것이다. 마침내 세상이 바뀌었다. 그 바람을 일으킨 것이 시골 한 신부의 생각에서 출발이 되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교회와 미술 간의 연이 끊어진 지 실로 200년 만에 교회가 눈을 뜬 것이었다.

광주 무각사를 보고서 나는 프랑스의 뀌뜨리에 신부가 생각났다. 한 스님에 의해서 불교미술이 바뀌고 있다. 사찰의 예술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돌아와서 나는 즉시로 춘천 장익 주교님한테 전화를 하였다. 명동성당에 정응모 신부님한테 전화를 하였다. 시골 한 스님에 의해서 불교미술의 새바람이 일고 있다는 말을 한 것이다. 종교미술의 예술화에 대한 이야기인데 우리나라 종교가 당면한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해서 일찍이 그 점을 깨닫고 정성을 기울였던 장익 주교님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광주의 무각사가 프랑스의 앗시성당처럼 될 것이다. 조계종에서 오래전부터 불교미술 새롭게 하기 운동에 관심이 있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공모전이라든지 노력은 하고 있지만 전통미술의 답습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전통을 깨고 나와야 하는 것인데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단적으로 말해서 예술가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에 당면하게 되는 것이다. 쉬운 말로 하자면 과거(역사)를 수용하고 소화해서 그런 다음 그곳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생명의 형태를 얻는 것이다. 세상은 쉴 새 없이 바뀌고 있는데 그 바뀐 세상이 과거의 방식으로 다스려질 수 있는 일일까. 예술은 끊임없이 허물을 벗는다. 국제 크리스챤미술가협회가 있고 그 기도문에 이렇게 쓰여 있다. “하느님 예술로서 찬미받으소서참으로 진리의 말씀이다. 아름다움이 아닌 형태를 가지고 찬미 받으시라 한다면 납득이 안 되는 소리가 아닌가. 이렇게 자명한 이치를 갖고서 세상은 억지를 부리고 있다. 요새 사람한테 구식 옷을 입히는 것처럼 그러고서도 그 자연스럽지 못한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의 것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달라진 현실에 와서는 호흡이 안 맞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의 예술가들의 예술작품으로 해서 종교미술이 예술화 돼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광주의 무각사가 한 일은 그 지역에서 검증된 예술가가 그들의 작품으로 하여금 절 공간에서 생명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이다. 그리하여 절에 새 생명의 바람을 일으켰다. 무슨 무슨 종교 할 것 없이 우리시대가 당면한 이 난제를 자각하고 바른 세계를 찾아서 노력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하는 일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이 종교하고 예술인 것 같다. 둘 다 머리로 생각만 하는 일이 아니라 궁극에 도달해야 하고 그것을 삶으로 실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이 말하기를 철학은 그 주변을 맴돌면서 그 궁극의 곳을 볼 수 있고 예술은 수시 수시로 그곳을 내왕할 수 있으며 종교를 통해서는 그곳에 상주할 수 있다고 했다. 어렵고 좋다는 말을 그렇게 말한 것 같다. 그 어렵고 좋은 것 오직 그것을 위한 형태로서의 상징이 종교미술의 예술화라고 볼 수 있다면 정말 해 볼만 한 일이 아닌가. 옛날에는 동서 간에 그렇게 하였다. 인류문화의 높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 종교적 미술이었다. 우리나라 역사만 봐도 세계를 빛내는 일이 모두 종교에서 나왔다. 예술과 종교가 함께 있을 때 좋았는데 오늘날의 사정은 달라서 서로가 각각으로 헤어진 지 기백년이 된 것이다. 참됨과 아름다움이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을 어디에서 또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뉴욕에 한 신부가 있어서 갈 때마다 만나는 분이 있다. 한 번은 내가 이렇게 물었다. ()가 이데올로기를 만나면 미는 죽는다고 하는데, 종교와 미가 만나면 어떠냐 하는 얘기였다. 종교는 이데올로기하고 다르다고 그러면서 역사를 다 봐라 아름다움과 종교가 잘 만났을 때 문화가 번성했다 그랬다. 내가 늘 마음에서 새기고 있는 것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신앙이 성할 때 종교예술이 성했고 종교예술이 쇠한 시대는 신앙도 쇠했다.

 

지난 오천년 인류의 역사를 짚어볼 때 종교와 예술은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정은 확실히 달라졌다. 서로가 당기는 에너지가 약해진 탓인지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베네딕도 교황님이 이런 말씀을 하였다. “미술가 여러분들, 거기는 파봐야 물이 안 나옵니다. 여기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이 있습니다.”

종교와 미술이 남남이 된 이 시대에 광주 무각사(無覺寺)의 일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한 스님이 시골 깊은 산 속에서 참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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