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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나라사랑(14) : 배민수의 하나님 나라를 지향한 기독교 농촌운동

 

박종현 (한국교회사학연구원, 한국교회사)

 

배민수 목사는 지난 호에 소개된 고당 조만식 장로의 민족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고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걸쳐 예수촌운동이라는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기독교 농촌운동을 벌였던 인물이다. 그의 운동의 핵심 사상은 그가 유학 중에 영향을 받았던 미국의 사회복음주의를 한국의 농촌 실정에 맞추어 실천하려던 일제하 기독교 민족운동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였다.

배민수는 1896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무관 출신 배창근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부친 배창근은 을사늑약 후에 일제의 한국 침탈이 가시화되자 의병을 모아 일본에 저항하였다. 그러던 중 일제에 발각이 되어 처형된 인물이었다. 배창근이 의병 활동을 시작하던 무렵 청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미국북장로회의 프레드릭 밀러 선교사를 만나 그의 가족은 기독교인이 되었다. 졸지에 고아가 된 배민수는 선교사 사택에서 가사일을 돕게 된 어머니의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부친을 여읜 배민수는 1912년 평양 숭실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기독교와 민족의 산실인 숭실에서 배민수는 민족의식과 기독교 사상을 마음 깊이 간직하게 된다. 평양 숭실학교에 재학하는 동안 배민수는 하와이의 노백린과 교류하고 김일성의 부친인 북간도의 김형직과 교류하는 한편 학생 30여명을 모아 조선민국회라는 애국계몽단체를 결성하였다. 일제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주적 독립국을 회복하려는 기독청년 애국단체였다.

그러나 조선민국회는 일제의 첩보망에 발각되어 19181월 전원 체포되어 처벌을 받았다. 이들은 혹독한 고문으로 점철된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 배민수는 1919년 거족적인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주변의 애국청년들을 모아 거사에 참여하였다. 3.1 만세 사건으로 배민수는 다시 투옥되어 1년 이상의 옥고를 치러야 했다.

1921년 출옥 후 만나 결혼에 이른 최순옥과 만남을 통하여 배민수는 생애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는 이전의 과격한 투쟁적 민족운동에서 벗어나 온건한 형태의 민족운동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는 평양숭실전문에 입학하여 다시 학업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미국 유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2910년대 당시 미국의 기독교 사상의 조류는 월터 라우센부쉬의 사회 복음운동(social gospel)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사회복음 운동은 당시 유럽의 기독교 사회주의가 기독교와 사회주의를 결합하려던 것과 달리 미국의 복음주의적 기독교 사상에 근거하여 미국의 사회적 질서를 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 기독교 사회주의가경제적 질서의 재편을 시도하였던 것과 달리 후자는 기독교를 통한 정치적 질서의 변화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배민수는 사회복음 운동에 깊은 영향을 받고 귀국하였다. 귀국한 후 그는 고당 조만식이 주도하던 기독교 애국계몽운동에 사상적 인적 영향을 받게 된다. 그는 1926년경부터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조선예수교장로회에서도 농촌부를 조직하여 1920년대 피폐한 농촌을 갱생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게 된다.

장로교 농촌부를 주도한 것이 배민수였다. 그가 귀국할 때에 미국의 한 부인이 기부한 거액의 기부금은 조선의 농촌운동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평양숭실학교 이훈구와 유재기 박학전 등과함께 농촌운동을 노회 단위로 조직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농업강좌 농촌계몽과 더불어 노회 단위의 농촌부를 예수촌이라 부르고 이를 하나의 자율적 신앙농촌공동체로 재구성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는 이것이 지상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의 모형이라고 보았고 그의 종말론적 구상은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조선농촌에서 구현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기독교 농촌운동은 내외의 비판에 시달렸다. 외부에서는 그의 농촌운동이 조선총독부의 산미증산과 농촌개발운동의 하부 구조에 협력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장로교회 내부로부터는 농촌부가 추구하는 것은 신앙운동이 아닌 세속정부가 해야할 성질의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농촌운동은 1935년까지 순조롭게 진행되며 영향력을 미쳤다.

그러나 대륙침략을 기획하던 일제는 조선에서의 민족주의 사회운동 세력을 척결하기 시작하였고 1936년 농우회 사건을 시작으로 기독교 민족운동세력을 와해시켜 나가기 시작하였다. 경북에서 활동하던 유재기 박학전 등이 검속되었고 주기철도 소환되었다. 농촌부는 급속하게 붕괴되었고 배민수는 미국으로 다시 유학길에 올랐다.

해방 후 귀국한 배민수는 이승만의 요청에 따라 신국가건설운동에 나서 해방 전 농촌운동을 다시금 시작하였다. 그의 농촌 사랑의 정신은 해방 정국에서도 사회적 영향을 끼쳤다. 그는 1958년 기독교농민학원을 설립하여 농촌운동을 이어 나갔다. 1968년 배민수는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최순옥 여사와 유가족은 일산의 농민학원과 농장을 연세대학교에 기증하여 현재 하나님 사랑, 민조 사랑, 농촌 사랑이라는 삼애의 정신을 기리는 유산으로 남아 있다. 배민수는 기독교 신학에서 간과되기 쉬웠던 하나님 나라의 구현이라는 종말론적 운동을 일제와 해방 정국의 조선의 농촌에서 신앙공동체로서 구현하려 시도한 기독교 운동의 선구자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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