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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심력 vs. 구심력 - 김순배

성서와문화 2019.10.03 15:14 조회 수 : 0

원심력 vs. 구심력

 

김순배 (한세대 겸임교수, 음악학)

 

바로크가 무르익어가는 17세기 후반이 되면 질서와 자유, 대비와 조화의 법칙들이 음악적 논리로 뚜렷하게 자리 잡는다. 급격히 부상한 콘체르토라는 단어에도 경쟁과 협동이라는 이율배반적 의미가 동시에 들어있다. 솔로와 오케스트라 전체, 또는 작은 그룹과 큰 그룹 사이의 대비와 협력은 음악의 보편적 원리가 된다. 한편 바로크의 눈부신 발명품인 오페라의 주요 구성 요소는 아리아와 레시타티브이다. 레시타티브는 줄거리의 전개나 상황을 설명하는 간단한 반주 붙은 낭송조의 대사이고 아리아는 그에 대한 인물들의 반응 혹은 심경을 본격 노래로 표현한다. 레시타티브는 정해진 박자나 뚜렷한 선율이 없고 즉흥적인 성질을 갖지만 아리아는 갖추어진 반주와 기승전결이 있는 완전한 노래이다. 대조되는 이 두 형태는 번갈아 등장하며 극 내용의 긴장과 이완을 책임진다. 기악음악에서도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전개되는 토카타 또는 환타지아, 프렐류드들과 절제된 규칙이 지배하며 철저히 이성적인 후가는 언제나 짝을 이루어 연주된다. 시대적으로 조망해 보면 교회음악이, 특히 종교개혁 이후, 건재한 가운데 세속음악 역시 발전과 쇄신을 거듭하고 있는 양상을 보여준다. 자유와 질서, 감성과 이성, 즉흥과 논리. 충동과 억제. 바로크시대 음악의 풍경을 살피다보면 원심력과 구심력이라는 상반된 단어가 자연히 떠오른다.

 

실상 원심력과 구심력의 문제는 음악에서뿐 아니라 인간 정신 전반 나아가서 삶 전체를 관류하는 포괄적인 화두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서의 원심력은 제반질서나 기존의 정해진 테두리를 깨고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적인 생각을 추구하며 나아가려는 기운을 지칭하고 반대로 구심력은 전통적인 틀과 룰(rule) 그리고 사람들 혹은 절대자가 세워놓은 법칙을 존중하는 영역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말한다. 이 같은 관점에는 이분법으로 논하기를 즐기는 서양적인 정신의 습성이 명백히 투영되어 있다. 이에 반해 뚜렷한 경계나 구분이 없이 이것이 저것을 포용하고 이것이었는가 하면 홀연 변하여 저것이 되기도 하는 동양정신의 세계는 서양의 그것과 사뭇 차이를 느끼게 한다. 20세기에 들어오면 이분법에 지친 서양 작곡가들의 동양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하는 현상도 일어난다. 어떻든 오랜 동안 서양 음악사를 지배해 온 정신은 정() ()그리고 그것의 합()으로 이어지는 변증법적인 세계이다. 구심력과 원심력의 첨예한 대립과 그것들의 극복 내지는 절충이 서양 음악사와 그것에 수반하는 미학의 역사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삶의 다른 여러 부분이 그러하듯 이 문제는 시대적, 지역적, 환경적 조건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나아가서 인간 정신의 본질적 역학과 긴밀히 관련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어떤 시대에나 이상주의자 혹은 낭만주의자들은 존재하고 이들은 한 시대의 원심력을 상징한다고 보면 맞다. 한 시대 그리고 한 작곡가 내부에서도 원심력과 구심력은 공존하는 형태로 나타나며 시간차를 두고 한 작곡가에게서 이 두 가지 경향이 차례로 나타나기도 한다. 17세기 바로크는 이 같은 현상이 음악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표출되는 시기이다.

 

일찌감치 아폴로와 디오니소스를 향한 제사의 패턴과 사용되었던 음악에서부터 구심력과 원심력의 원리는 작동되기 시작했다. 그 시절 두 신들에게 바치는 제사에 사람들이 동시에 참여했었다고 가정할 때 그들은 이 두 종류의 행사를 통해 극과 극 혹은 그 둘이 빚어내는 최상의 균형 상태를 맛보고 체험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렇듯 서양음악의 원류에서부터 두 개 극단은 존재했다. 기독교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중세에 들어서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교회 안에서 쓰이는 음악 즉 의전을 위해 사용되었던 음악은 최대한 의전이나 기능에 충실한 법칙의 음악이었다. 그러나 교회 안의 음악이 엄격하면 할수록 교회 밖에서는 보다 자유롭고 자발적인 형태의 음악이 성행하기 마련이었다. 교회 밖에서는 아 카펠라’(즉 무반주)에 대응하듯 각종 악기들이 신나게 반주하는 춤곡과 행사용 음악들이 활발히 만들어지고 사용된다. 이 세속음악에 대한 자료는 교회 안이나 귀족들의 궁정에서와는 달리 체계적인 보존이나 전수가 어려웠고 또 사람들은 그 부분에 무관심했기에 전해지는 것이 상대적으로 적을 따름 교회 밖 세속음악의 위용은 화려했다. 재미있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 밖에서 쓰이던 음악 이디엄들이 이윽고 교회 내 음악에 유입되고 접목된다는 사실이다. 이 현상은 오늘날의 교회음악 속에도 동일하게 존재한다. 세속적이고 대중적인 음악기법들이 교회 음악에 혼합되어 더욱 다채롭고 풍요로운 종교음악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다른 의미에서 구심력과 원심력의 공존이다.

 

르네상스 후반의 이탈리아 노래 마드리갈이 거의 디오니소스적인 엑스타지를 추구했다면 1600년 경 등장한 모노디는 다시 아폴로적인 것으로의 귀환이라고 할 만하다. 모노디로 환골탈태한 세속노래의 흐름은 이윽고 오페라라는 획기적인 장르의 탄생과 발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같은 시기 성악음악에 밀려 오랫동안 음지의 비주류였던 기악의 화려한 홀로서기가 진행된다. 공식적인 음악사가 교회음악의 정립으로 표상된다면 그 수면 아래에서는 무수히 다양하고 자유로운 세속음악의 기운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다. 주류와 비주류, 수면 위의 음악과 언더 그라운드적 음악은 어떤 시대 어떤 환경에서도 존재했던 것이다. 도전과 응전, 정과 반, 밀물과 썰물, 원심력과 구심력은 이렇게 밀고 당기는 상호 길항작용을 거치며 보다 혼합되고 총체적인 모습으로 다음 시대를 향해 전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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