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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비유와 오늘: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와 왕양명

 

김학철 (연세대 교수, 신약학)

 

누가복음 1025-37절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로 널리 알려졌다. 이 비유는 비기독교인들도 모르지 않고, 나아가 이 비유에서 유래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도 있다. 이 법은 자신이 위험하지 않은 데도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여 해를 당하게 한 사람을 처벌하고자 한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이 처벌받을 만한 법적인 죄라는 것이다.

이 비유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당시 ()법전문가가 예수가 진짜 선생인지 아닌지를 시험하러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겠느냐며 예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예수는 바로 답하기보다는 질문에 질문으로 응대한다. “()법에는 무엇이라 적혀 있소? 그대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이해하오?” 전문가는 모든 유대인이 생각할 만한 답을 내놓는다.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너의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예수는 그 대답이 옳다고 긍정하면서 질문자에게 도발한다. “그렇게 하시오. 그러면 살 것이오.” 질문자 입장에서는 허를 찔린 셈이 되었다. 예수의 대답은 그 법전문가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전제하니 말이다.

이런 식의 대화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교육적 대화다. 나머지 하나는 지적 겨루기다. 처음 예수와 법전문가의 대화는 교육적 차원에서 시작했을 수 있지만, 이제 후자로 진입하게 되었다. 법전문가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원했다.” ‘너의 하느님이 이스라엘의 야웨인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으니 그는 자신이 너의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더딘 것을 변명하고자 한다. 그는 예수에게 다시 질문한다. “누가 나의 이웃이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웃이 누구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게 과연 똑 부러지게 분명하지 않다는 말이다. 정교한 문제제기이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 답하기 쉽지 않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이웃인가? 얼굴도 모르고 인사도 하지 않는 그라기보다는 SNS 친구가 혹시 이웃이 아닌가? 당시 통념대로 같은 동족까지가 이웃인가? 그런데 도대체 유대인이란 누구란 말인가? 샤이 코헨이라는 유명한 유대인 학자가 1세기 유대인이란 누구인가를 두고 긴 연구를 했다. 그의 답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유대인이다.”였다. 법전문가는 자신을 정당화 하고자 한다. 사랑해야 하는 나의 이웃이란 도대체 누구인가?’

예수는 비유를 든다. 길 가다가 강도를 만난 어떤 사람이 있다. 강도가 탐낼 것은 그의 옷밖에 없을 정도로 그는 가난했던 모양이다. 그는 그것을 지키려다 흠씬 두들겨 맞아 쓰러졌다. 우리가 흔히 지나가는 대목이지만 강도 만난 사람의 이 벗겨졌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옷은 재산이기도 하지만 그가 어느 인종에 속한 어떤 신분의 사람인지도 알려준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모두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율법의 의무를 실행해야 하지만 만약 그 옷을 탈취당한 채 쓰러져 있는 이가 그들의 이웃, 곧 유대인인지 아닌지가 확실하지 않다면(사마리아인도 할례를 했으니 벗은 몸으로는 확실한 인종을 구분할 수 없다) 그들은 과연 그를 도와야 하는가? 이웃인 줄 알고 도왔다가 증오해야 마땅한 사마리아 사람이면 어찌하는가? 비유 속 제사장이나 레위인이나 질문을 한 법전문가도 나의 이웃이 누구인지 다 몰랐다. 그러나 그곳을 지나가는 다른 한 사람이 있었다. 유대인의 이웃이 아니었던, 도리어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었던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사마리아 사람도 강도당한 사람의 인종과 신분을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쓰러진 사람을 보자 불쌍히 여기는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먹고 마실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자신이 입어야 할 천으로 쓰러진 사람의 상처를 싸매었다. 자기가 탈 나귀에 쓰러진 사람을 태워 여관에 갔다. 그는 자신이 휴식할 시간에 그를 간호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써야 할 돈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며 고통당한 사람을 돌보아 주라고 하였다. 앞으로 발생할 비용도 자신이 감당하겠다며 말이다.

예수가 법전문가에게 묻는다.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었는가?” 누가 나의 이웃인지는 정말 섬세하게 논해도 분명치 않으니 정의내려 보라고 요청했던 법전문가에게도 누가 그의 이웃이 되어 주었는지는 너무나 자명했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지요.” 예수는 그대도 이같이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 비유는 끝난다.

비유는 끝났지만 이 비유를 들은 법전문가는 물론 오늘 여기서 이 비유를 읽는 우리는 모두 비유 속 예수가 말씀한 것으로 마음이 편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이웃알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우리 대다수와는 달리 예수는 그의 이웃되라고말하기 때문이다. ‘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부당한 폭력을 당한 사람, 재물을 빼앗긴 사람, 불운을 겪어 자기 힘으로 걸을 수 없는 사람, 상처 때문에 약과 붕대가 필요한 사람, 이 땅에서 존중받는 제도가 외면한 사람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되는가?’ 자신이 먹고 마실 것을 내어, 자신이 입을 것을 써서, 자신의 편의와 휴식을 잠시 뒤로 하고, 자신의 돈을 지출하여, 앞으로 있을 비용을 감당할 자세로 이웃이 되어주어야 한다.

이 비유를 다 읽고 나면 왕양명의 가르침을 모아 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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