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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張旭鎭) 화백의 먹그림과 그에 얽힌 이야기

 

김효숙 (전 여류조각가협회 회장, 조각가)

 

지난 봄, 오랜만에 포장된 채로 두었던 그림들을 펼쳐보게 되었다. 장욱진 화백의 먹그림을 펼치는 순간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림 속 여인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 것이다. 장 선생님이 나에게 바라시는 것이 이것이었는데, 내가 너무 무심하게 살고 있었구나 하는 자각과 함께, 깨어 있어오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으로 마음이 무거워져 왔다. 이 깨우침은 나 자신과 장 선생님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집에는 장 선생님의 먹그림이 세 점 있다. 모두 한 날 장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19803, 내가 동숭동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첫 개인전을 갖게 되었을 때 뜻밖에도 장 선생님 내외분께서 전시를 보러 오셨다. 그리고 가시며 법당 뜰에 놓고 싶으니 아무 작품이나 좋으니 하나 가지고 오라.”는 말씀을 하셨다. 작품 전달은 이런 저런 사정으로 다음 해 2월에나 이루어졌다. 작품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두 팔로 원의 공간을 만들고 있는 70년대 초의 여인좌상을 선택했는데 보시고 흡족해해 주시어 고마웠다.

장 선생님 댁은 내가 대학입시를 앞두고 아버지와 함께 간 적이 있는 명륜동 집 그대로였다. 미술대학을 가겠다는 딸이 염려가 되셨는지, 집안과는 친척뻘이 되며, 자랄 때 형, 누이 하며 가깝게 지내셨다며 그림을 가지고 가 뵙자 하셔서 갔던 곳이다. 그림 속 동화처럼 예쁜 양옥집 2층에 있는 화실에서 만면의 웃음으로 우리 부녀를 맞아 주셨던 기억이 새롭다.

그 사이 집은 많이 퇴색되어 보였다. 전과 달리 현관에서 그대로 양옥집 실내 복도를 거쳐 집 밖으로 나오니 햇빛 가득한 잔디 마당과 정자가 있는 조용하고 아늑한 한옥집이 전개되었다. 세속과 성()의 공간을 구분하듯 해탈문이라 쓰인 돌문이 있고 왼쪽 뜰 안 벽 쪽으로 연못 위에 반쯤 겹쳐지게 세워진 정자가 있었는데 시내의 집 뜰 안에 정자가 있는 것이 퍽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내외분은 윗목에 장롱 한 개만이 있는 소박하고 자그만 온돌방에서 나를 맞아주셨다. 장 선생님은 방금 그리시던 그림을 마치시고 사인을 하고 계신 참이었다. 도전하듯 앞을 응시하며 당당하게 버티고 앉아 있는 여인상 위로 큼직한 새 한 마리가 날아오르고 있는 여인 좌상이었다. 보는 순간 이 그림이 나를 그리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올리고 앉으니 사모님께 종이 한 장을 더 내라시고 새로 그림을 시작하셨다. 봉황처럼 보이는 닭이 왼쪽 하단에 크게 자리하고 그 오른쪽 위로 작게 서있는 사람이 있고, 오른쪽 맨 위에 해가 그려졌다. 허전해 보이는듯하던 하단에 사인을 넣으시며 그림을 마치셨는데, 닭띠 해에 닭띠인 나와 연관이 있게 느껴지는 그림이다.

붓의 멈춤과 빠름, 먹의 번짐과 갈필의 활용, 화선지를 돌려가며 힘의 방향에 따라 주어지는 적절한 강약의 변화, 거기에 뭉쳐진 덩어리의 힘과 가는 선이 주는 대비로 공간은 추호의 어긋남도 없이 구성되어 갔다. 그림을 그리시는 현장을 직접 뵐 수 있는 귀한 자리였고, 큰 공부가 되었던 기쁨과 감사의 시간이었다.

장 선생님께서는 먹그림을 유화보다는 좀 쉽게 대하신 듯하다. 그러나 나는 먹그림이야말로 화백에게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으로서 장욱진 스타일의 멋진 예술 장르의 하나라 여기고 있다. 화선지 위의 먹이 유화보다 더 직감적이고 직접적이어서 작가의 자유분방한 예술혼의 표현을 더 실감할 수 있고, 붓의 속도와 방향에서 주는 시간의 흐름과 멈춤, 감정의 움직임과 머무름 등, 작가의 호흡과 생각을 여과 없이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어느 경우, 그림을 줄 대상을 생각하며 그려지곤 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이 배어있어 친근감을 더 느끼게 한다. 먹그림은 무채색인 먹의 농담과 붓의 움직임으로 빠르게 공간을 구성해 가야 하기 때문에 많은 숙련과 예술적 저력을 갖지 않으면 어려운 작업이다.

 

모든 작가가 바라는 것은 자신의 삶과 예술 속에서 자신의 본색을 지키며 그 속에서 그 자체로 자유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장 선생님이 바로 그런 분이라 생각한다. 화백은 자신의 생활 가까이에서 접하는 것들을 따뜻하고 다정한 사랑의 눈길로 그렸다. 화가의 가족, 집과 마당, 그리고 주변의 산과 나무, 호젓한 정자, 그 자연 속에 함께 하는 가축들(강아지, , 돼지, )과 새들(까치, 참새), 생활주변의 기구들(장롱, 등잔, , 주걱, 모기장..)까지... 여기에 이 모두를 멀리서 감싸고 보호하듯 해와 달이 그려져 함께 하고 있다. 무엇이든 간결한 것을 좋아했던 화백은 심플(simple)한 삶을 살려 했고, 그림 이외의 것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화백이 자주 많이 사용한 나는 심플하다.”라는 말은 그래서 그의 상징어가 되었다.

어떤 대가도 노력 없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화백은 하루 4시간 이상 자는 것은 낭비라 여겼다. 저녁 8-9시면 잠자리에 들어 남들이 깊이 잠들어 있을 새벽에 일어나 마을 곳곳을 거닐며 새벽의 신선함으로 그림을 위한 충전의 시간을 갖고 그 충익한 감동으로 그림을 그렸다 한다.(장욱진산문집-“강가의 아틀리에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작업시간으로 새벽을 선택한 것이다.

화백은 유달리 나무를 즐겨 그렸다. 단독으로 크게 확대하여 화면 가득 그려진 나무에 해와 달이 떠 있거나 나무 위에 올망졸망 집들이 얹어지고 나무속에 새나 아이가 들어있는 등, 나무와 연관된 그림이 많다. 바람에 휘날리거나 줄지어 서있는 여러 그루의 나무들... 이 다양하게 그려진 나무들은 아침 새벽길에서 화가가 만난 고독하지만 친근하고 언제나 그와 함께해준 존재들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새벽, 아직은 달이 지지 않았는데 해가 다시 떠오르는 이 겹쳐지는 시간이 작가에게는 상상이 아닌 실재의 현실로서 홀로였을 화백의 마음에 위로와 희망이 되었으리라.

어린 아이의 그림처럼 단순하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그래서 생략할 수 있는 만큼 생략해 더욱 강한 이미지를 이끌어내는 힘이 화백의 특징이다. 이 단순하고 소박하며, 꾸밈이 없는 그림들은 마치 현대판 한국 민화를 연상시킨다. 자랄 때부터 보고 자라며 체화(體化) 되었을 충청도 고향의 자연과, 익숙했던 어릴 적 생활주변의 것들을 한국 사람들 속에 잠재되어 있는 원초적인 눈으로 그렸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된다. 바로 이러한 한국적 이미지들을 서양적 어법으로 표현해내는 통합 또한 화백의 특징이다.

화백은 작은 그림을 그렸다. 30호 이내의 크기가 작가가 책임 있게 소화해 낼 수 있는 범위라 여겼기에 그림 속의 작은 점 하나, 선 하나에까지 조형에 소홀한 데가 없다. 그림에 사인을 어디에 어떻게 넣느냐에 까지 마지막 구성의 중요한 완결 포인트이다.

 

내가 장 선생님을 만난 것은 몇 차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장 선생님이 나에게 주신 영향은 아주 크다. 아버지께 보내보라하시어, 미술을 전공하여 작품을 하며 살게 하셨고, 초기의 부족한 작품이지만 법당에 놓겠다시며 격려해 주시고, 이런 계기로 나에게 진정으로 전해주고 싶으셨던 예술가의 삶과 자세를 그림 속에 담아 주셨다.

나는 화백의 많은 그림을 보아왔다. 그러나 정면으로 앉아 눈동자까지 그려진 눈을 아직은 본적이 없다. 직접 나를 그렸다는 말씀을 들은 바는 없지만 그때 그 자리에서 그려주셨던 그림은 분명 나를 생각하며 그린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처음 그림을 받았을 때 두 눈을 부릅뜨고 당돌하게 앉아 있는 이 여인이 나와 거리가 멀게 느껴져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나이 70을 넘어 이제야 이 그림을 통해 나에게 전하고 싶어 하셨던 그 많은 말씀을 깨닫고 만감이 어리는 것이다.

화백은 쭈그리고 앉아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무섭도록 깨어있는 눈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누구와도 견주지 않고,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는 예술가의 고독을 오롯이 당당하게 견뎌내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신 것이다. 언제나 예술가는 고독한 존재지만 외롭지 않다. 머리 위에는 그 고독의 견딤의 영광처럼 큼직한 새 한 마리가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고 있다. 두 눈을 열린 창처럼 밝히고 깃털을 머리에 달고 응원하며 호위하듯 날고 있다. 화백은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통해 작가의 길을 가겠다고 첫 개인전을 갖는 나에게 예술가의 마음가짐과 이겨내는 힘을 그림을 통해 말씀해 주시려 한 것이다.

그림을 다시 걸어 놓고 나에 대한 장 선생님의 기대와 사랑을 다시 체감하며, 장 선생님과의 새로운 만남의 시간 속에서 깨어있는 작가의 길을 가려는 마음을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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