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8년 성서와 문화

종교 언어와 시의 형상화

 

고진하 (목사, 시인)

 

동틀녘 뒷산을 올랐다. 높지 않은 야산이다. 산길을 막 접어들었는데, 오동나무 밑에 사마귀 한 마리가 길을 막는다. <장자>에 당랑거철(螳螂拒轍)이란 말이 나오는데, 제 분수를 모르고 강적에게 대적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나는 그냥 혼자 웃으며 녀석을 지나쳐 다시 산길을 오른다.

문득 시인으로 등단하던 해에 사마귀를 붙잡아다 키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강원도 홍천의 오지에 전도사로 부임해 첫 목회를 하던 시절이다. 척박한 오지의 삶은 신산스러웠지만, 내 두 아이들에겐 오지의 삶이 생동하는 자연의 혜택을 흠뻑 누릴 수 있는 낙원과도 같은 곳이었다. 어느 날 여섯 살 박이 큰 아이와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풀숲에 앉아 있는 사마귀 한 쌍을 보았다. 아이가 저건 뭐냐고 관심을 보이길래 사마귀라고 얘기해주고 사마귀의 생태와 습성에 대해 찬찬히 설명해주자, 호기심이 많은 아이는 사마귀를 잡아다가 키워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아이가 하도 졸라서 사마귀 한 쌍을 데려와 사과박스에 넣어 키웠는데, 메뚜기나 여치, 방아깨비 같은 곤충을 잡아다 먹이로 주며 그 생태를 관찰했다.

그런 어느 날 저 혼자 사마귀를 관찰하던 아이가 서재에 있던 내게로 헐레벌떡 달려왔다. 뭔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일이니?” “아빠, 사마귀가 다른 사마귀를 잡아먹고 있어요.” 이미 사마귀의 그런 습성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사과상자 속에서 암컷이 날카로운 톱니발로 수컷을 움켜잡고 씹어먹는 모습을 보니 나 역시 충격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저런 광경은 사마귀들의 세계에서 늘 있는 일이라고, 수컷 사마귀는 이제 곧 태어날 새끼들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하는 거라고 얘기해 주었지만, 아이는 무섭고 징그럽다며 풀어주자고 했다. 우리는 곧 사마귀들을 풀숲으로 데려가 놓아주고 말았다.

그렇게 사마귀를 직접 키워보고 난 이후 난 우연히 파브르 곤충기를 읽게 되었다. 꽤 오래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셈이었는데, 곤충기 속엔 사마귀의 생태를 관찰한 기록이 상세히 수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제목이 충격적이었다. “기도버마재비사마귀의 라틴어 학명이었다. 나는 파브르가 인용한 이 라틴어 학명을 보는 순간 시 한편의 얼개가 머릿속에 대충 짜여졌다.

그날 밤, 나는 오두막 골방에 똬리를 틀고 앉아 원고지의 빈 칸을 메우기 시작했다. 등단한 지 얼마 되지 않던 그 시절 나는 자주 밤을 새우곤 했다. 시골 교회의 전도사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하던 때였지만, 나는 책상머리에 나는 창조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거창한 문구를 써 붙여 놓고 창작의 열망을 불태우곤 했다. 다음 시는 바로 그때 쓴 <사마귀>란 시이다.

 

푸른 들판을 배경으로 깔고 있는

성스런 신전,

치렁치렁 긴 베일을 늘어뜨린

무당이나 사제처럼

연한 녹색의 얇은 명주와 같은 날개를 펼쳐 들고

기도하듯 하늘을 향해

다소곳이 앞발을 모아 곧추세우고 있는 그녀는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염주알을 굴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염주알을 굴리듯

상하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살의(殺意)를 감춘 두 눈알,

오늘의 제물은 메뚜기 두 마리와

십자왕거미 한 마리, 또는

형형색색의 나비 몇 마리쯤이 될지도 모르겠다

 

문득 제단 앞에 꿇어 엎딘

경건한 수도자의 기도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날치를 잡는 작살처럼 날랜,

혹은 거대한 원목을 끌어당겨 씹어버리는 원형의

톱 같은 두 개의 톱니발 사이에

꽉 끼워진 제물들은 톱밥처럼 부서져

그녀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성찬으로 올려진다

그녀의 신성(神性)은 먹이를 얻기 위한

, 신성불가침의

불칼을 두른 저 울타리 속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다 용납될 수 있는 것일까

 

같은 알주머니에서 나와

같이 살아온 동족마저 살해하고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무수히 바글대는 흉물스런 새끼들이 담긴 알주머니를

토해 놓는 생산의 여신(女神),

괴이한 마성(魔性),

삐딱하게 보는 것이 익숙한 사팔뜨기들에게

일명 기도버마재비라고도 불리어지는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민음사. 1990

 

하여간 풀숲에서 먹이를 사냥하는 사마귀의 습성을 묘사하는데, 아이와 사마귀를 키웠던 관찰경험이 먼저 떠오르고, 10년도 지나지 않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이 자연스레 중첩되었다. 그 무렵 나는 5공화국 군부독재에 저항하며 민주화를 열망하던 기독교 잡지에서 일하다가 필화사건이 터져 강제해직을 당한 아픔을 대자연의 품에서 치유 받으며 지내던 때였다. 나는 성경이나 불경 같은 종교 경전도 소중히 여기지만 그보다 더 큰 경전인 대자연과 어울려 지내는 걸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는 시의 초반부터 초록이 무성한 들판을 신전으로, 사마귀를 무당이나 사제로 표현하는 등 시 속에는 종교적 언어의 사용 빈도가 높다.

사마귀가 먹이를 사냥하기 전 앞발을 기도하듯 모아 곧추세우고 있는 모습에 대한 묘사를 통해 나는 존재의 안팎이 다른 종교의 위선을 드러내려 했던 것 같다. 더 나아가 같은 알주머니에서 나와/같이 살아온 동족마저 살해한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고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파브르가 라틴어 학명으로 일러준 기도버마재비라는 표현은 종교의 위선과 정치의 마성(魔性)이 아주 오래된 것임을 일깨워준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일깨움은 수천 년이 흘러도 인간의 역사는 진보하지 않았다는 것, 이처럼 진보하지 못하는 인간의 역사를 증언하는 것이 절망스럽지만 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란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더러 오해하는 평자들이 있어 밝히지만 나는 그동안 시를 쓰면서 종교시를 쓰고자 의도했던 적은 없다. 이 시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이 시 이전에 나는 광주민주화운동이나 군부독재 치하에서의 아픈 경험에 대해 시적 언술을 한 적이 없었다. 사마귀라는 시적 매개를 발견함으로서 비로소 나와 우리 겨레가 겪은 참상을 시로 형상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를 발표하기 전에 나는 무척 괴로워했었다. 시인이며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목사라는 위치에 있으면서 시대의 아픔을 외면한다는 자괴감 때문에! 이 시를 세상에 내어놓은 후 내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을 조금 덜어낸 느낌이었다.

문득 꼽아 보니 이 시를 발표한 게 벌써 30년이 넘었다. 하지만 인간의 지성과 영성은 그 시절보다 크게 진보한 것 같지 않다. 지금도 신이 선물로 준 신성먹이를 얻기 위한 덫으로 이용하는 자들이 도처에 널려 있지 않은가.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이들의 마성이 SNS 같은 통신의 발달로 금세 드러나고 만다는 것이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떤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다고 했지만 요즘 하느님은 첨단의 기술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신성불가침의 불칼을 두른 울타리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 아닐까.

모름지기 종교란 삶의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바꾸는 예술이다. 나에게 있어서 시 혹은 문학은 이런 종교의 에센스를 언어라는 형식으로 드러내는 작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무척 오래 되었지만 종교에 대한 생각을 시적 형식으로 드러낸 작업으로 지금도 가끔씩 반추해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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