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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생각 - 장기홍

성서와문화 2019.10.03 15:05 조회 수 : 1

하느님 생각

 

장기홍 (경북대 명예교수, 지질학)

 

태평양전쟁, 해방 후, 6·25전쟁 등 난세를 살면서 나는 하느님 생각을 많이 했다. 어릴 때 하느님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고 배웠기 때문에 왜 그런 분이 현실을 이렇게 되게 두시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러나 종교적 관심을 놓지 않고 청소년기를 보낸 다행으로 나는 궁극적 관심사에서 멀어지지 않고 인생에서 초점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 회고하면 우리는 일본제국과 독일의 나치스와 공산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역사가 아무렇게나 되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는 생각을 한다. 예수는 우리에게 먼저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라고 당부하셨다. 우리는 진리에 헌신할 것을 생각한다.

결과적 설계(設計). 지질학과 생물학은 진화과학으로서 생물진화의 사실과 원리를 밝혔다. 필자는 지질학을 공부하게 되어 우주 물질의 조합이 원시생명체를 낳고 진화하여 인간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고찰하는 담당자로 살아왔다. 사람이 우주의 후예라는 자각이 순조롭게 얻어졌다. 물질의 일부는 우리 행성계에서 결합하여 30 수억 년 전에 생명체를 만들기 시작했고 차츰 진화하여 고기, 파충류, 포유류를 거쳐 사람에게 이르렀음이 화석의 연구결과로 밝혀졌다. 물질 속에 그런 소질이 없었다면 어찌 진화가 있었겠으며, 진화의 현 단계인 인류가 출현할 수 있었겠는가? 창조론자들과 진화론자들은 서로 반대하며 토론하나 창조와 진화는 동일하다. 요즘의 과학자들은 선배들이 일컫던 정향진화(定向進化)를 부정하면서 거저 변화해가다 보면 우연히 사람이 되기에 이른다고 말하나 우리가 결과를 두고 깊이 생각하면 필연이 더 지배적이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만일 장차 지구 같은 환경의 천체가 발견되면 거기서도 유사한 생물계가 있음을 볼 것이다. DNA의 오묘함은 물질의 신비를 잘 보여준다. 원소들의 원자와 분자들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결합해가면 마침내 생명에 이르고 사람으로까지 진화하게 되는 것이니 물질 존재 속에 설계 같아 보이는 소질이 내재해 있음이다. 맹목적으로 변화를 거치다 보면 결국 설계를 실현하는 결과에 이른다. 사람은 동물의 갈래를 타고 생겨난 일종의 짐승이며 경쟁하여 잡아먹어야 자기 육신을 살릴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실존이다. 과학이 없을 때는 창세기의 설화를 가지고 인간을 설명했다. 창조론자들은 아직도 창세기를 가지고 진화학의 대안을 삼으려 하나 지금 진화과학은 충분히 발달했다.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포식의 죄악이 있으므로 이해를 통해 구원받을 필요가 있다. 먹이사슬의 원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진화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하다.

역사의 하느님과 그보다 위의 하느님. 폴 틸리히는 역사의 질서하느님의 질서에 대하여 설교했다(‘흔들리는 터전김광남 역, 뉴라이프, 2008). 후에 그는 그러한 질서의 하느님을 역사의 하느님이라 일컬었다. ‘역사의 질서삶과 죽음’ ‘죄와 벌로 얼룩진 흥망성쇠의 질서이다. 어느 날 그 위로 하느님의 입김이 불어오면 모든 것이 풀 같이 시든다. 틸리히의 그러한 유신론은 주로 구약의 하느님관을 계승한 것이었으나 그는 후기에는 존재 그 자체로서의 하느님 곧 “(유신론적) 하느님 위에 계시는 하느님을 힘주어 일컬었다. 그러한 드높은 하느님은 궁극적 존재이며 영원한 생명이므로 그와 합일할 때 삶의 용기(courage to be)를 체험한다고 했다. (폴 틸리히 존재의 용기차성구 역, 2004, 예영커뮤니케이션). 그는 젊어서 제1차대전 때 군목으로서 전사자들을 위한 예배를 인도하고 늘 비존재(죽음)의 위협 아래 사는 실존을 체험했다. 그런데 틸리히가 귀가했을 때는 아내가 타인의 아이를 출산했다. 그러나 그는 아내와 아이를 받아주고 품어주었다. 그런 극적 생애를 통해 마침내 존재 자체(생명)이신 궁극적 하느님을 깨달을 수 있었으니 깨닫고 약동을 느끼는 그이를 상상해본다.

대우주 혹은 자연으로서의 하느님. 중세 스페인의 유대인 학자 모세 마이모니데스(1135-1204)는 존재(있음)가 곧 하느님이라 보았다. 후에 유대인 철학자 스피노자(1632-1677)는 우주가 곧 하느님이라 했으니 그들은 같은 생각이었다. 필자도 그들과 생각이 같다. 노자(老子)의 도()는 진리를 의미하는데 기독교에서는 진리이신 하느님을 일컬으니 도()는 하느님과 같다. 그런데 그의 도덕경(道德經)에는 도법(道法)자연(自然)’이라는 구절이 있어 도()는 자연(自然)을 본받았다 하니 자연이야말로 고차원의 하느님에 해당한다. 마이모니데스와 스피노자의 하느님은 자연과 같음이다.

아래층의 역사의 하느님과 위층의 하느님 위의 하느님은 동일한 유일신이지만 다만 사람의 안목과 주관으로 아래에서는 유신론적으로 보이고 위에서는 무신론적으로 보일 뿐이다. 상층의 하느님은 우리가 아무리 가고 또 가도 우주 안(내부)인 그런 내재적 우주에서 만나진다. 대우주에는 밖이 없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은 대우주 그것뿐이므로 우리는 대우주라는 유일 존재를 하나님 혹은 하느님이라 본다. 내재적 하느님이므로 범신론(汎神論)적이다. 신학에서는 범신론을 경계하나 내재적 신은 저절로 범신론적일 것이다. 존재 전체, 특히 그 전체성이 하느님이다.

창세기의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다라는 구절은 그때 무에서 유가 생겨났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그렇게 감화된 사람들은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되었다는 우주관을 쉬 받아들이지만 인도나 중국의 옛 자연관은 존재의 본래성과 영원성을 당연으로 여겼다. 하느님을 지나치게 인격으로만 보는 아상(我相)에서 벗어날수록 우리는 하느님을 바로 보게 된다. 근래 나는 폴 틸리히의 유신론적 하느님 위의 (무신론적) 하느님이라는 2층 신관(神觀)을 읽고 동지를 만난 기쁨이 있다. (폴 틸리히, ‘존재의 용기’).

고대그리스의 최초기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는 원요소(arche, 原要素)가 무어냐 하는 문제를 놓고 아페이론[apeiron, 무한소(無限素)]이라 하였다. 물이나 공기 같은 기성품은 원요소의 자격이 없고 무한정한 요소(아페이론)이라야 해당되리라 보았다. 유한을 초월하면 영원할 터이므로 그는 영원무궁한 원요소를 생각했던 것이다. 또 고대 그리스의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없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없음은 참이 아니고 유(, 있음) 곧 존재만이 참임을 그는 의미했다고 필자는 해석한다. ()에서 유가 생겨나는 순환이 있을 뿐임을 설파했던 것이리라. 모든 부분들은 시작과 종말이 있으나 우주존재 자체는 시작도 종말도 없고 그 내용물의 순환이 있을 뿐이라 보았다. 무수한 소우주로 이루어진 대우주를 나는 하느님이라 여긴다. 그것은 모든 부분들을 초월하므로 초월자다. 빅뱅으로 생겨난다는 우주는 부분적 우주 곧 일개 소우주일 뿐이다. 그런 것들이 무수히 모여 대우주를 이룸이니 대우주(大宇宙)는 무시무종(無始無終), 영원하며 무한하며 상대가 없는 유일자(唯一者)이다. 대우주는 영원히 자체 순환하는 대생명체이다. 기독교의 조직신학에서는 하느님을 영원, 절대, 무소부재(無所不在), 초월적이라 본다. 이를 두고 생각해온 나는 그런 존재는 대우주 밖에 없다는 데 도달하였다. 그러한 우주 속성은 앞으로 물리학과 우주론에서 논의될 줄 알며 조직신학의 전제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대리(代理)인 인간. 예수님만이 하느님 대리가 아니고 사람들은 누구나 하느님의 선()한 대리자가 될 사명이 있다. 도덕적으로 빼어난 사람은 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도 있고 인내천(人乃天) 곧 사람이 하늘이라 하는 사상도 우리 겨레에게서 나왔다. 이런 사상은 사람이 해야 할 하느님 역할을 상기시킨다.

2차대전 동안 독일의 나치스는 유대인 6백만을 살해했으나 구출될 기적이 나타나지 않자 유신론은 창백해졌다. 교황도 나치스의 만행에 대해 침묵했을 때, 미국은 어려운 참전을 결행하여 연합군을 승리로 이끌었다. 사람이 하느님을 대리하던 순간이다. 흑인을 부리고 토착인들을 내쫓고 교회를 세우던 백인들은 엄청난 죄인이었지만 하느님은 죄인을 통해서도 역사하심을 보여주시었다. 죄 많은 곳에 은혜 있음이다. 생명체의 최종 진화단계는 사람이며 사람은 하느님의 후예요 대리이니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이룸에 참여해야 한다. 사람이 하느님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희생과 순교를 피할 수 없으니 쉬운 일이 아니다. 나치스나 일제 같은 것을 예방할 지혜를 길러서 하느님의 사도가 될 수 있었으면! 이상에서 명백해지는 것은 창조주로서의 전체와 부분에 불과한 피조물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격차가 있음이다. 인간 예수를 창조주라 보던 견해가 과거에 있었으니 망령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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