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8년 성서와 문화

청산별곡(靑山別曲)을 읊조리다

 

임인진 (시인, 아동문학)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靑山)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靑山)애 살어리랏다

얄리 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

/살겠노라. 살겠노라. 청산에 살겠노라.

머루와 다래를 먹고 청산에 살겠노라./

 

그 옛날, 이 땅에서 힘겹게 살던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고려가요(高麗歌謠) 청산별곡의 첫 연이다.

우리 삶에 깊은 울림을 안겨줄 수 있는 시의(時宜)에 맞는 글발을 찾다가 문득청산별곡의 첫 구절이 떠올랐다. 오래 전,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익힌청산별곡에서 청산을 소재로 한 5연이 이제껏 뇌리에 남아 있을 줄은 나도 몰랐다.

옛 사람들의 순수한 우리말로 반복되는 어구(語句)3·3·2조의 운율에 이끌려 얄밉도록 해바라진 양성모음(陽性母音)의 후렴구까지 자꾸 읊조리게 된다.

그때마다 어렵고 힘든 삶의 고통과 비애를 견디다 못한 사람들의 애절한 하소연으로 가슴에 와 닿기도 하고, 세상 풍파에 지친 이들이 세상을 향해 간절히 외치는 절규(絶叫)처럼 심금을 울리기도 한다.

안으로는 척신(戚臣)과 무신(武臣)들의 권력욕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밖으로는 여진, 몽골, 왜구(倭寇)의 잦은 침략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으니 오죽했으면 청산과 바다를 현실도피의 공간, 삶의 이상향으로 설정해 노래를 불렀을까? 생각할수록 숙연해진다.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나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리노라

얄리 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

/우는구나. 우는구나. 새여, 자고 일어나 우는구나, 새여 ,

너보다 시름 많은 나도 자고 일어나 울며 지내노라./

 

새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의 이미지를 안겨준다. 하지만, 근심걱정으로 비애의식에 사로잡힌 이에겐 새들의 지저귐도 울음소리로 들린다. 구슬픈 울음소리 들으며 처지가 같은 동병상련(同病相燐)의 정을 호소한다.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잉 무든 장글란 가지고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얄리 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

/날아가던 새, 날아가던 새를 본다. 물 아래로 날아가던 새를 본다.

이끼 묻은 쟁기를 가지고 물 아래로 날아가던 새를 본다./

 

이런저런 번민을 안고서 살아가는 통속적인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구절이다.

 

이링공 저링공 하야 나즈란 디내와숀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또 엇디 호리라

얄리 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

/이렇게 저렇게 하여 낮은 지내왔건만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밤은 또 어찌할 것인가./

 

참고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고독으로 비탄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처절하고 막막한 허무감에 젖어 있는 모습이다.

 

어디다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

믜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서 우니노라

얄리 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

/어디에 던지던 돌인가, 누구를 맞히려던 돌인가.

미워할 사람도 사랑할 사람도 없이 맞아서 우노라./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은유적(隱喩的)으로 표현하고 있다. 운명적 비애의식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체념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조선 초기훈민정음반포 후 고려시대에서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의 악장(樂章)과 속요(俗謠)를 모아서 엮은악장가사(樂章歌詞)연대와 편찬자 미상에 기록되어 오늘까지 전해온다고 한다.

많은 고려가요 가운데서 백미(白眉)로 꼽히는청산별곡은 청산을 소재로 한 5연과 바다를 소재로 한 3(지면관계로 제외)까지 모두 8연으로 된 서정적 가요다.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 왔다는 가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부분 우리 고유의 언어로 씌어있다. 정확한 고어사전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말의 어원(語源)을 더듬어 조금씩 다른 풀이를 하게 된다. 또한, 원작자가 어떤 계층의 속한 인물인가의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각 연마다 삶의 고뇌와 비애를 애끊는 심정으로 호소하는 이야기가 서려있다. 절실하면서도 진솔한 체념적 애조를 띤 삶의 편린(片鱗)들이 찡하도록 가슴에 와 닿는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많은 노랫말을 익혀 왔으나 이처럼 곧이곧대로 속내를 몽땅 드러낸 가사는 어디에서도 못 본 것 같다. 아무런 꾸밈 하나도 없이 이런 저런 삶의 진실성을 순수하고 소박하게 드러낸 노랫말이다.

가슴에 손을 얹어본다. 삶의 고뇌와 비애를 극복할 수 있는 궁극적(窮極的) 한계는 깨달음이다. 풍성한 깨달음을 일깨워 주는 낙천적 후렴구를 입에 올려 다시금 읊조려본다.

얄리 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

빼어난 음악적 리듬감에 사로잡혀 온 몸을 들썩이게 된다. 어쩌면 나 또한 패망한 고려 유민(遺民)의 후예(後裔), 아니면 떠돌이 유랑민의 떨거지가가 아닐까?

멍울선 가슴에 또다시 손을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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