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8년 성서와 문화

문학에 비치는 복음 (13)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1904-1991)

정사의 종말(情事終末, End of the Affair)

 

이상범 (목사, 칼럼니스트)

 

<해설>

정부와 밀회를 즐기고 있는 중에 폭격으로 무너진 가구 더미에 깔린 정부(情夫)가 죽은 줄로 여긴 여인이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를 살려주기만 하면 그를 떠나 하나님을 믿겠노라고. 정부가 살아나자 하나님과의 약속을 위해 사랑하는 이를 떠난다. 외롭게 신앙과 사랑의 갈등을 견디는 사막같은 삶에 지친 여인은 병들어 삶을 마감한다. 정사를 통해서라도 사랑과 미움이 간절해지노라면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이야기일까.

 

그린의 작품에서는 자주 사랑이 간통의 탈을 쓰고 독자에게 물음을 던진다. 작가는 흔히 우리가 사랑이라 말하는 이성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어우러지기보다는 찢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 양, 죽음 혹은 자살로 처리하곤 했다. 사랑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을 무대로 하고 있다는 듯이. 그것만이 사랑의 본질이라 우기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사랑은 그렇게 되기 마련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리스도교와 관계가 없는 이들에게도 공감의 장을 열어주려는 의도가 감추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의 작품에서 하나님과 마주서게 된다.

 

<브라이튼 록>, <권력과 영광>, <사건의 핵심>을 거쳐 <정사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그린의 나이 34세에서 47세에 이르는 장년기에 완성된 네 작품은 그리스도교의 근원적인 미스터리를 주제로 하고 있다고들 말한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 그 중에서도 가톨릭 신자로서 그린과 상통하는 인생관을 가지고 있는 독자가 아니고서는 그 미스터리를 풀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들 작품은 신앙적 비밀에 동참하지 않고 있는 많은 독자에게도 풍요로운 진실과 감동을 나누어주고 있다.

 

그린이 <그리스도교의 패러독스>라는 글에서 말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임재 하는 곳에는 또한 하나님의 원수도 있을 것이고, 역으로 하나님의 원수가 없는 곳에서 하나님을 찾을 가능성은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악이란 선이 스스로의 완전성 때문에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그림자가 아닐까.……그리스도인은 의 국경지대에서 살고 있고, 그 언저리는 전란에 휩싸인 영토이고, 하나님은 당신의 군사와 더불어서 전투의 한가운데에 계신다.”

이를테면 나를 위해서 영혼을 잃는 자는 영혼을 얻을 것이다.”와 같은 가르침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신앙이란 반드시 딱 부러지게는 이해할 수 없는 어둠을 만들어 내기 마련이 아니던가. 신앙에는 신비와 패러독스가 공존하고 있음을 일러 준다. 신앙만은 모든 것을 딱 부러지게 단순화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이 세상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는 딱 부러진 해결책은 온전한 신앙일 수 없다. “

 

<줄거리>

19461월의 어느 날 밤, 소설가 모리스 벤드릭스가 쏟아지는 빗속을 초췌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헨리 마일즈를 만난다. 19446월 이후 처음으로.

헨리가 말한다. 요즘 들어 아내 사라의 거동이 수상하다고……. 일 년 반전까지 모리스는 헨리의 아내 사라와 사랑하는 사이였다. 불륜이긴 했어도 열정적으로 사랑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만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이후 만나지 못하고 있는 터였다.

 

나는 결단코 당신을 사랑한 만큼은 다른 남자를 사랑해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두 번 다시 사랑할 수도 없을 것이고요.” 그랬던 그녀가 갑자기 돌아선 것이었다. 모리스 또한 그녀를 사랑했다. 그러나 아니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녀의 사랑을 신뢰할 수 없어했다. 사라는 가정을 가지고 있고, 정사가 끝나면 돌아갈 곳이 있기에. 그렇지 않아도 모리스가 사라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다른 남자와 키스하는 장면, 문이 열리는 순간 두 사람이 어색한 듯 떨어지는 것을 본 것 같은 기억 때문에, 자신이 그녀의 첫 번째 불륜상대가 아니라는 의심이 그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사라에게서 꼬투리를 잡아 물고 늘어지는 것도 그녀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도 그는 여겼다.

한 해 반쯤 전 그녀가 나를 버린 것은 지금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남자를 만났기 때문이었을까? 다투고 짜증부리며 괴롭혔던 그녀, 결국 사랑은 정사가 되고 시작과 종말을 지니게 되었거늘……. 오래 전에 헤어진 연인을 두고 새삼 질투가 끓어오른다. 모리스는 헨리를 돕겠다는 듯이 탐정을 고용해서 지난날의 연인 사라를 감시하기 시작하는데…….

 

사랑을 정사로 치부해 버리고 싶어 했던 모리스와, 사랑은 끝이 날 수 없다고 여러 번 다짐하면서도 그의 곁을 떠나버린 사라, 그리고 둘 사이에 개입해 들어오는 그분.”

이 수수께끼는 5부로 구성된 소설의 3사라의 일기를 읽게 될 때까지 풀리지 않는다. 모리스와 더불어 여기까지는 속아 주던 독자도 그 범인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전개에서 다시 놀란다.

 

1944617, 사라가 모리스와 함께 그의 집에 머물고 있던 그날, 독일군의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린다. 모리스가 지하실로 내려 간지 2분도 안되어서 폭발음이 귓전을 때린다.……계단이 부서진 가재 더미로 뒤덮이고 찾아도 모리스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문짝 밑으로 그의 팔이 보이는데……그것은 분명히 죽은 자의 팔……나는 마루에 꿇어 엎디었다. 어린 아이였을 때에도 해보지 않던 노릇을……. 하나님, 그를 살려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당신을 믿겠습니다. 그에게 단 한 번의 기회를 주십시오. 그에게 그의 행복을 가지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믿겠습니다......”

 

모리스가 살아난다. 그러나 사라는 하나님에게 한 약속 때문에 모리스를 떠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하는 하나님, 만약에 당신께서 잠시만이라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신다면, 대신 내가 거기에 달리게 해 주신다면, 그래서 당신처럼 내가 괴로워할 수 있다면 나도 당신처럼 치유할 수 있을 터인데 말입니다.”

 

쉬 뉘우치지 않는 사라였지만 모리스에 대한 사랑이 고통에 눈을 뜨게 하는가하면, 남편 헨리에 대한 연민 또한 고통이 된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따라, “사막을 경험한 그녀는 괴로워할 뿐만 아니라 고통을 스스로 수용한다. “나를 위해서 영혼을 잃는 자는 영혼을 가지게 된다는 말씀. 그녀가 사막이라 생각했던 상황이 그 말씀의 참뜻을 그녀에게 계시해주는 것이었다.

공습이 있었던 날 새벽에 서약했던 하나님과의 약속,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미신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기적이었을까? 사라는 당장에 하나님을 믿은 것은 아니다. 그녀는 아직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사라는 신앙 대신 사막에서 괴로워하고 또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리스에 대한 사랑은 자각하고 있는 터였지만, “존재할지도 모르는 그 어떤 것을 사랑할 수는 없었다.

 

사라의 고통은 personal한 하나님을 이치로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알고 싶어 하지만 알아지지 않는 괴로움이었다. “1945102일의 일기에는 처음으로 그녀가 하나님에 대해 미움을 느꼈다고 기록했다. 미워함으로써 person을 알게 되었다고……그 순간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손가락을 소위 성수 속에 적셔 십자 모양을 내 머리에 그렸다.” 그녀는 가톨릭으로서 행동한 것이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이듬해 110, “아마도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은 마음이 생긴 것은 오늘 밤이 처음입니다.”하고 기도한다.

*작가에 대해한 정보는 본 시리즈 (5) <권력과 영광>을 참조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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