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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축제➄: 기독교와 축제

심광섭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원, 조직신학예술신학)

최근 한국사회는 지방의 지역마다 도시마다 축제의 마당이 펼쳐진다. 광고매체들은 지역의 축제를 1년 내내 알린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한국 캘린더의 1년은 축제의 시간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 축제들은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가 아니라 단기간에 만들어진 축제로서
자연의 흐름, 사계, 봄, 가을의 꽃(유채, 벚꽃, 매화, 산수유, 장미, 메밀꽃, 국화, 해바라기, 코스모스)과 지방의 특성에 따라 여름과 겨울에만 가능한 특별한 활동을 기획하여 마련한 축제가 대부분이다.

이들 축제에서는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 때로 노래와 춤을 추고 즐길 수 있는 날, 안식이 아니라 고단한 노동으로부터 잠시 이탈하여 쉼과 여흥을 얻으면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하루 소비하는 날이다. 목하 축제의 시간들은 한국 사람들이 일상에서 실제로 축하하고 싶은 시간들(설, 보름, 단오, 칠석, 한가위 등)이나 공동체의 이상적인 표상이나 축제의 원형적 모습의 재현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성경과 기독교에서 축제는 시간적으로 자연의 리듬에 근거를 두지만 그 의미는 하나님의 역사적 사건에서 얻는다. 구약에서는 출애굽과 그 이후의 가나안에서의 삶,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탄생,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기독교 축제에 유일회적이고 비교할 수 없는 의미를 부여한다. 한마디로 역사적 사건이 기독교와 유대교의 축제(절기)를 특징짓는다.

이스라엘의 절기는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시간을 경험한다. 이스라엘의 시간 이해는 빈 시간이 아니라 채워진 시간, 찬 시간, 충만한 시간(kairos)이다. “사건은 그것의 시간 없이 있을 수 없으며, 시간은 사건 없이 생각될 수 없다.” 사건의 질에서 하나의 단일하고 밋밋한 시간이 아니라 복수의 충만한 시간이 나온다. 근대인간은 ‘시간은 돈이다’라는 기치아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정복하기 위해 수량화하고 객관화함으로써 시간을 단수로 통일시켰다. 그렇지만 성서에 나타난 시간은 자연의 흐름에 따라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성실하심에 의해 정해진 복수의 시간이다. 유일회적으로 하나님이 창조와 함께 세운 언약이 절기와 축제의 시간들을 근거 짓는다.

<축제>는 시간의 지루한 시간을 흩날리기 위해 혹은 강도 높은 노동 후에 취하는 휴식시간이 아니다. 이런 휴식의 목적은 더 많은 노동과 생산을 하기 위함에 있다. 휴식은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취하는 재충전의 시간일 뿐이다. 

기독교 축제의 본질에는 안식이 있다. 안식은 일을 더 잘 하기 위해 일상의 분주하고 바쁜 움직임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휴식이 아니다. 안식에서는 자기 자신을 집중하고 모으며 통합할 수 있는 생동적인 밀도와 명상이 있으며, 이 생동적인 밀도는 자유 자재함으로 발전한다. 축제가 생산하는 가치는 좀 더 강도 높게 일하기 위한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만남에 있다. 현상적으로 보이는 혼돈과 일상적인 것의 부산함 너머의 실재의 통일성, 충만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얻고 경험하며 직관적으로 감지하기 위한 인간의 공동체적 만남이 축제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참된 축제의 시간-공간에서 시비와 도덕적 판단을 넘어선 선사된 시간의 경험과 거룩한 의미 충만의 시간경험이 생긴다. 문법적으로 정리된 언어 저편에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발생하며, 참으로 축제를 향유하는 자들에게 생명의 자궁이 열린다. 기독교의 축제는 교리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을 넘어 살아 있는 종교로서 <순간>(Augenblick)을 거룩하게 하는 예술의 장이다. 키르케고르에 의하면 순간이란 그리스도께서 존재하는 때를 말한다. 즉, 의로운 분, 순간의 사람이 존재하는 때를 말한다. 이런 순간은 영원의 돌파구이다.

이방인들 축제의 근거가 되는 신화는 역사적 사건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시원(en archē)이라는 신화적 시간 혹은 원형적 시간 속에 자리매김한다. 종교현상학이 분석하고 기술한 바와 같이 우주론적 제의는 세계발생의 반복 속에서 시간의 갱신을 통해 죄와 질병 등 부정적인 영향을 막거나 추방하여 과거의 억압(역사의 테러)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므로 축제의 규칙적인 반복은 과거 시간의 죽음과 새로운 시간이 재생되는 사건을 의미한다.

신화는 시간의 순환적 이해와 관련되며 그리스의 전형적 시간관이다. 엘리아데는 이러한 시간을 역사의 거부라고 본다. 바울은 축제를 시간에 맞추어 지키려는 갈라디아 교인들의 태도에 질겁하며 이렇게 훈계한다. “여러분이 날과 달과 계절과 해를 지키고 있으니,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염려됩니다.”(갈 4:10-11). 바울에게 교회 축제의 원리는 현존하는 그리스도뿐이다.

성서적 전통의 관점에서 역사는 하나님 행위의 장소이다. 시간은 선형적으로 정의되어 역사의 시작에 창조가 있고 마지막에 메시아의 도래가 있다. 하나님은 역사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이 시간의 선 위에 다양한 시점이 찍히는데 하나님이 창조하고 구원하고 성화하고 완성하는 시점들이다. 이 역사 이해는 신구약이 동일하나, 신약에서 역사의 가장 중요한 시점은 역사의 종말인 메시아의 도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이며, 이것이 역사의 중심적 중앙으로서 역사 전체가 여기에서 의미를 길어낸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과 부활을 통해 역사의 주님으로 계시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으로서 역사 전체를 포괄하며 역사의 모든 순간에 활동하고 현존하신다.

그러므로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은 가장 핵심적인 기독교의 축제일이다. 교회는 1세기 말엽부터 그리스도의 부활일인 일요일을 유대교의 안식일과 구분하여 주일로 삼고 일주일의 첫날로 지켰으며 교회에 모여 빵을 떼고 포도주를 나누는 성찬의 축제를 거행했다(행 20:7-12; 고전 16:2). 일요일은 부활의 날이며 주의 만찬이 축하되는 주의 날이고 한 주간의 첫날이다. 주일은 주간의 첫날로서 창조의 첫날을 가리키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창조가 새롭게 회복되는 날이다. 부활의 날은 새 창조의 날이다. 창조의 첫날 야훼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신 날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다시 새 날로 열리고, 그리스도의 재림 속에서 이루어질 역사의 궁극적 완성이 주일에 선취된다. 하나님이 과거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양한 결정적인 날들에 소통하고 인간을 부르고 요구하신 것처럼, 오늘 하나님은 우리와 소통하고 결단의 가능성을 갱신한다. 신명기적 ‘오늘’이 부활일인 주일에 축제로서 새롭게 선포된다.

오너라, 우리가 주님께 즐거이 노래하자.
우리를 구원하시는 반석을 보고, 소리 높여 외치자.
찬송을 부르며 그의 앞으로 나아가서,
노래 가락에 맞추어, 그분께 즐겁게 소리 높여 외치자.

오너라, 우리가 엎드려 경배하자.
우리를 지으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자.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가 손수 이끄시는 양 떼다.
오늘[hajjōm, הַ֝יֹּ֗ום]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어 보아라. (시 92: 1-2, 6-7)

기독교는 유대교의 창조의 축제일이었던 안식일을 주일 속에서 새 창조의 축제일로 받아들였다. 안식일은 자연으로서의 세계(시간과 리듬, 변화)로부터 창조로서의 세계(안식)를 구분한다. 자연은 시간과 리듬은 알지만 시간의 충만인 안식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식일에서 그의 창조를 기뻐하고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을 발견한다.

안식일에 인간은 노동과 사랑에서 노동을 끝내고 하나님과 그리고 온 창조와 마음껏 사랑에 푹 빠진다. 예수님은 첫 설교(눅 4:18-19)에서 희년(주님의 은혜의 해)을 선포하심으로써 안식일을 새 창조의 첫날로 만들었다. 주일은 시작의 축제일이며, 부활절은 새 창조의 힘에 참여하는 날이며 시작과 희망의 축제일이다.

그림: 인도 기독교 화가 Jyoti Sahi, Lord of Dance, 1980.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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