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8년 성서와 문화

종교와 축제: 굿, 말씀을 담는 몸의 문화

 

조성진 (한국예술협회 예술감독, 마임이스트)

 

이 시대에 무속과 축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 것인가? 너무도 반가운 주제다. 몸과 마음, 정신과 육체, 가치를 추구하는 것과 먹고사는 일, 의미와 재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이상한 동행, 지금은 이런 이중적인 삶을 더는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 아닌가? 미국의 히피는 한때 온전한 삶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부르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지만 우리는 이제야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축제는 삶의 원형 즉 온전한 삶으로 돌아가 보는 판을 벌이는 것이다. 근 백 년, 삶을 돌아보는 행위를 잊고 있던 우리가 어떤 계기에서건 축제를 다시 불러내는 것은 우리의 삶이 온전함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축제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 아스라하다는 것이다. 삶의 원형을 운운하기 이전에 축제의 원형부터 살펴야 할 것이다. 그 아스라함 때문에 많은 것을 상상력에 의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축제의 원형은 굿이다.

 

대학 시절 하비 콕스(Harvey Cox)바보제를 만났을 때 축제라는 말은 그 어두운 시절을 밝히는 보름달처럼 떠올랐다. 그 만남은 노천극장에서 벌어진 탈춤판과 오버랩 되었다. 우연히 마임을 배우고 노래와 춤을 즐기던 나는 말의 성찬인 개신교 예배를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래서 졸업 논문의 제목은 '축제로서의 예배를 위한 탈춤공동체 연구'였다. 그때까지도 굿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매우 실질적인 계기가 찾아왔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연이어 열리면서 항간에 이벤트라는 개념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난 평택에서 지역문화운동을 하면서 그 말을 건져 올렸다. 유명한 광고회사였던 제일기획에 이벤트 담당 책상 하나가 겨우 있을 때였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일본에서 광고산업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제5의 매체라며 그때까지 행사라고 부르던 것을 이벤트라는 조어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거다. 다시 말하면 이벤트는 행사의 테크놀로지요 광고산업이 개척한 새로운 영역이다. 그런데 행사를 잘 하는 법을 하필 일본에서 수입해야 했을까? 쉽게 답을 찾았다. 이벤트는 일본의 전체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목록을 만들고 점검을 거듭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니 이벤트는 조선시대부터 형성된 관료제도와 일제시대의 군사문화에 익숙한 한국사회에 적합한 방식이던 것이다. 난 궁금했다. 한국의 전통문화의 자산 안에서 행사를 잘 하는 법을 찾아낼 수는 없는가?

난 다시 바보제를 통해 알게 된 축제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에서 이에 상응하는 문화적 자산을 생각할 때, 그것은 굿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일상에 의미 있게 남아 있는 행사의 전통으로 유교식 제사가 있지만, 오늘의 삶의 복잡성과 활력을 내용으로 담아내지 못하고 메마르게 형식만을 되풀이하는 가운데 있다. 적어도 유교는 예와 악을 중시하는 면이 있어 행위와 관련된 일정한 문화를 낳았지만, 불교의 경우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같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행위와 관련된 문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있다 해도 불교의 옷을 입은 굿과도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축제는 몸짓 즉 퍼포먼스를 통한 집단적 소통과 기원의 형식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몸짓의 문화가 충만한 굿을 우리 축제의 원형이라고 해도 과한 생각은 아닐 것이다.

 

굿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이제까지 굿을 이해하려는 여러 노력이 있었지만 대부분 현학적이거나 종교적인 현상의 하나로만 보는 좁은 시야에 머무른 감이 있다. 나는 공연예술가로서 굿을 소통의 미학으로 보고 접근했다. 그 과정에서 굿이 공동체가 자신들이 직면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라는 것과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소통과 참여 그리고 창의와 같은 덕목의 원리를 축적하고 있는 원형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졸고 '굿 그 풀이와 놀이의 이중주'에 대강의 생각을 밝혀 놓았다.

문자가 발달하기 이전을 몸의 시대라 하고 문자가 발달한 이후 지금까지를 관념이 지배하는 마음의 시대라 한다면 앞으로는 마음이 다시 몸을 얻어 온전해지는 영성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을 해 본다. 우리말의 용례를 살펴보면 사람의 드러난 면을 몸이라 하고 숨겨진 면을 마음이라 한다. 민속학자 김택규는 마음 즉 숨겨진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을 풀이라 하고, 몸 즉 드러난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을 놀이라 구분하고, 굿은 이 두 가지 방식을 오가며 두 세계를 연결하는 행위라고 보았다. 무격이 제단을 향하면 풀이요, 굿중을 향하면 놀이라 설명하기도 한다. 나는 신끼라는 말이 풀이를 가능하게 하는 능력을 말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놀이를 가능하게 하는 능력은 . 다시 말하면 신끼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예민함이고, 끼는 몸을 잘 놀리는 능력이다. 굿은 바로 풀이와 놀이를 일치시키는 기술이다. 작두에서는 놀이에 해당하는 곡예와 풀이에 해당하는 신탁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놀이를 통해 풀이에 대한 굿중의 참여가 일어나는 것이다. 무격이 중심이 되는 굿에서 무격은 춤이라는 놀이를 통해 신의 세계에 들어가며, 마을굿에서는 난장을 통해 굿중 모두가 신명을 체험한다. 그러니 굿은 놀이에서 출발하여 풀이를 얻는 기술이다. 풀이는 요즘 말로 해법(진리, 말씀, solution)을 찾는 과정이며, 그 과정은 놀이로 이루어진다. 고대 제천의식에서의 음식가무(飮食歌舞)라는 놀이에 대한 언급은 그 구조로 볼 때, 동맹, 영고, 무천 등의 제천의식이 바로 굿의 시작임을 말해준다.

 

몸이 열려야 하늘이 열린다.

 

그렇게 굿은 몸을 통해 하늘을 만나는 기술이다. 축제를 비롯한 모든 의례는 몸을 바탕으로 한다. 여기서 몸은 도구가 아니다. 정신인 인간이 몸을 도구로 하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서의 인간이 하늘을 만나는 것이다. 굿은 몸으로서의 인간을 지지한다. 이는 니체 이후의 몸철학이 지향하는 바이며, 시대정신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인간에게 주어진 언어의 능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유교와 기독교는 우리에게 텍스트를 기반으로 진리에 다가가는 문화를 가져다주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몸이 소외된 말씀 또는 말씀이 결여된 몸을 넘어 말씀과 몸의 일치를 지향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오늘의 축제는 말씀이 결여된 천박한 몸의 문화에 머물고 있다. 굿은 말씀을 담는 몸에 대한 풍부한 전통을 갖고 있다. 생산이 넘치는 풍요의 시대, 그 축복을 온전히 누리고 나누는 장으로서의 축제를 위해 말씀을 담는 몸의 문화가 회복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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