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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깨끗한 사람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 조각가)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예수님이 말씀하시자 나이 많은 사람들부터 돌을 놓고 물러나더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성서에 명구(名句)들이 한량없이 많지만 이 대목은 그 의미도 그렇고 정말 통쾌하고 멋이 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금강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만사가 물거품과 같이 허망한 것으로 보이면 여래를 만난다(凡所有相 皆是虛妄 卽見如來). 공자님 말씀 중에 많이 알려진 것으로 사무사(思無邪)란 말씀이 있다. 시 삼백 편을 골라놓고서 그 속에는 사악(邪惡)한 생각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라고 기록하였다. 또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한 말씀을 남겼는데 그림은 마음이 깨끗한 연후에야 될 수 있다 하는 뜻이다.

이 말씀들을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 늘상 되새겼다. 그 언어로는 서로 달랐지만 그 겨냥하는 바는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세상만사가 허망한 것으로 보이면하는 말과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하는 말과 그 속에 사악함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 말이 뜻으로 보면 한 가지가 아닐지 싶다는 말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세상만사가 물거품과 같이 꿈같이 헛것으로 보이는 사람, 온갖 삿된 마음을 다 잠재운 사람, 그런 사람이면 하느님이 참 모습을 보여 주신다 그런 뜻인 것 같다. 내가 세례를 받고 한동안 예수님이 나한테 나타나는 그런 기적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 이십 년도 더 지나서야 그런 꿈을 포기할 수 있었다. 내가 그림에 뜻을 두고 좋은 그림을 만들려고 온갖 노력을 했지만 그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오십 년도 넘는 시간이 걸렸다. 思無邪. 繪事後素의 경지를 터득하는 것도 사람이 한 생을 걸고 노력을 해야 하는 일이다.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할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만 옛날 중국에는 일자무식인데 한 말씀으로 즉시 대오(大悟)하여 고승이 된 이가 있었다고 한다. 진리를 얻는 길이란 멀다면 한없이 멀고 가깝게는 지척일 수도 있다는 말일 것이다.

세상에는 책도 많지만 이러이러하게 공부를 하면 좋은 그림을 만들 수 있다고 써놓은 책은 없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이러하게 살면 된다 하는 그 묘법을 요약한 책은 보지를 못하였다.

내가 대학교 사학년 때인지 참으로 우연한 기회에 불경 공부를 하게 되었다. 반야심경강의를 두 주일쯤 들었을 때 어떤 날 저녁 머리맡에 있는 친구의 성경책을 펼쳐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하룻밤 사이에 성경책을 다 읽었다 할 만큼 그것도 뜻으로 읽힌 감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읽었다기보다 머리에 찍혔다고 하는 표현이 더 옳을 성싶다. 불경 공부를 했는데 어째서 복음서가 그렇게 읽혔나 하는 의문이 생겼다. 풀을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흘러서 법정(法丁)스님을 만났다. 내가 그 얘기를 물었다. 그랬더니 한 마디로 최 선생이 그때 경을 읽는 눈이 열렸다그러셨다. 그 한 마디에 그 오랜 의문의 숙제가 단박에 풀린 것이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실로 40년만의 쾌사였다. 한 번은 스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가 무슨 일인지 내가 그 차로 길상사를 가게 되었다. 가는 중에 삼청터널 근방에서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목이 마르다 하셨는데 그것은 사랑의 갈증 이였다.” 그러셨다. 내가 무슨 헛소리를 들었는가 했는데 분명한 일이었다. 법정스님은 말씀이 그렇게 신선하였다.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을 때 내가 그랬다. “좋은 스승이 있었는데 다 돌아가시고 요즘 심심하다그랬더니 하느님하고 놀면 된다그러셨다. 한 번은 혜화동에 계실 때 용건 없이 뵙고 싶다 그랬다. 그렇게 만나서 얘기 중에 마음 비우는 것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내가 말을 받아서 그 일은 나도 노력을 좀 해 보았지만 안 되던데요그랬다. 그랬더니 추기경님 말씀이 나도 그래!” 하시는 게 아닌가. 그러시면서 죽어야 돼한마디 더 보태서 죽어서 15분이 지나야 돼하고 웃으셨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죽고 나서 15분이란 얘기는 미국의 어떤 노 성직자의 말이었다.

금강경에는 또 이런 말씀이 있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어디에고 집착되는 바가 없는 마음의 상태를 찾아라 하는 뜻이 아닐까. 화가가 순수하게 내 맘대로 그려야하는데 머리를 비웠어도 손에 묻은 잠재한 습관이 나의 자유를 어지럽힐 수도 있는 것이다. 내 맘대로 그린다는 것은 그처럼 어려운 일이다. 아름다움은 지척에 있는 것인데 내 마음이 흐려져 있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본래는 맑았었는데 사는 가운데에서 흐려졌다. 낙원에서 추방되었다고 한다. 사람이 이 세상에 왔다가 정말로 할 일중에 지워진 그 낙원을 도로 찾는 일이 그 하나가 아닐까.

사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마스코스로 가는 길에서 큰 빛을 만나 눈이 멀었다. 뒷날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면서 새로운 사람 바울이 되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만사가 헛것으로 보이고 마음에서 삿됨이 추방되면 마음이 깨끗한 사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된다. 드디어 바라고 바라는 하느님을 만난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아름다움의 천지이다. 그것을 현재라는 땅에다 구현하는 것이 예술이고 종교가 아닌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고 세상만사를 허망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면 여래(如來)를 만날 것이다. () 삼백 편을 골라놓고 보니 거기에 삿된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 !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그대로 천국의 풍경이 아니던가.

나는 어릴 적부터 내 위에 항상 좋은 사람이 있었다. 옆에 항상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은 내가 나이를 먹어 혼자가 되었다. 김수환 추기경 말씀대로 하느님하고 놀 차례인가보다. 어느 먼 곳으로부터 오는 신호일까. 오늘도 쉴 새 없이 내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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