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8년 성서와 문화

 

산 마르코 성당과 지오반니 가브리엘리

 

김순배 (한세대 겸임교수, 음악)

 

음악사의 특정 시대마다 주도권을 갖는 나라가 존재한다. 중세에는 다성음악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프랑스가 교회음악의 강자였다. 프랑스 사람들의 굳건한 음악적 자존심은 이처럼 오래된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르네상스로 넘어올 무렵에는 지금의 벨기에, 네델란드가 있는 북쪽 지역이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했다. 르네상스가 성숙해 가는 동안 이탈리아는 다음 시대의 음악을 리드할 역량을 부지런히 축적한다. 이탈리아의 약진에는 정치적, 지형적 이유가 있었다. 중앙집권식 왕정 체제의 프랑스나 영국과 달리 지역별 도시국가와 같은 자치 정부 형태였던 이탈리아는 보다 적극적이고 독자적인 문화 육성에 유리했다. 베니스나 피렌체와 같은 도시국가들은 프랑스 및 네덜란드와의 활발한 교류로 음악적으로 비옥한 토양을 일구어 나갔다. 부유한 영주들은 북쪽의 작곡가들을 끊임없이 초청, 고용하여 지역의 음악 발전을 꾀하고 작곡가들 역시 이탈리아의 자유롭고 진취적인 분위기를 창작에 십분 반영하게 된다. 16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베니스의 산 마르코(St. Mark) 성당은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로 떠오른다. 이곳의 성가대 지휘자나 음악 감독 혹은 오르가니스트들은 당대의 기라성 같은 작곡가들이었다. 빌라르트(Willart) 메룰로(Merulo) 가브리엘리(Gabrieli)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가브리엘리(Giovanni Gabrieli(1557~ 1612)는 르네상스로부터 바로크로 넘어가는 16세기 말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개척하여 제시한 작곡가이다.

 

이즈음에도 산마르코 성당은 베니스 관광의 필수 코스로 되어있지만 여행자들은 대개 성당 앞 넓은 광장에 자리 잡은 기념품 가게 구경에 주력할 뿐 건물의 내부를 유심히 살피지는 않는다. 그런데 산마르코 성당의 내부에는 음악 발전의 중요한 단서가 숨어 있다. 음악감독이었던 가브리엘리는 성당 2층 중앙부분은 물론 좌, 우 발코니에 성가대석을 배치했다. 그리고 한 그룹과 다른 그룹이 번갈아가며 노래하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모두 함께 노래하도록 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음향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한 쪽 성가대가 노래할 때 소리는 당연히 약했고 삼면의 합창단이 함께 할 때 소리는 놀랍게 커졌는데 이는 바로 피아노(piano)와 포르테(forte)개념의 탄생이다. 오늘날에는 전혀 놀라울 것이 없는 음악적 표현 기법이지만 16세기 말까지 크게 혹은 작게 연주한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었기에 이는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크거나 작게 혹은 점점 커지고(crescendo) 점점 작아지는(decrescendo) 음량 표현과 함께 콘체르타토(concertato) 즉 경쟁하고 협동하는 표현의 방식이 도입되기 시작한다. 성가대 한 그룹이 노래하면 이에 질세라 다른 그룹이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것은 경쟁이고 동시에 모든 성가대가 참여하면 이는 협동이 되는 셈이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음향과 곡 구성의 방식은 서양음악에 있어서 가히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Cori Spezzatti’(분리된 합창대)를 만든 가브리엘리는 합창단의 성부를 64개까지 세분화하여 극히 정교한 콘체르타토 기법을 실험하였다. 악보에도 piano e forte라는 다이내믹 지시어를 최초로 써넣는다. 바로크 시대 이후 양산되기 시작하는 각종 Concerto(협주곡)는 가브리엘리의 산마르코 성당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곡 전개 방식은 음악에 모종의 활력과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며 표현의 폭을 드넓혀주는 효과를 낳으므로 작곡가들에게는 새로운 창작의 지평이 활짝 열린 것이다.

 

가브리엘리는 성당의 합창대가 불렀던 노래를 기악곡 형태로도 만들어 발표했는데 이 때 제목을 ‘sonata piano e forte’라고 붙였다. 크거나 작게 소리 내는 소나타라는 뜻인데 서양 음악의 대표 양식 소나타의 출발이다. 이 경우의 소나타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소나타 형식과는 무관하다. 소나타의 어원은 ‘sonore’소리내다인데 가브리엘리의 소나타는 사람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양식을 뜻하는 ‘cantata’와 구분하고자 하는 단순한 의미였다. 기악음악의 독립적 위상 확보와 더불어 소나타는 인성이 아닌 각종 악기 매체를 통해 만들어지는 음악을 뜻하는 상징어가 되고 칸타타는 노래로 표현하는 양식을 대변하게 된다. 칸타타 역시 흔히 오늘날 알고 있는 종교적 내용의 성악곡이 아닌 그저 목소리로 하는 음악이라는 어원을 가진다. 소나타와 칸타타라는 든든한 양 축을 만들어가진 16세기 말을 통과하여 서양음악은 보다 다양하고 정교한 창작메커니즘을 구사하게 되는 이른바 바로크 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베니스의 산마르코 성당과 탁월한 음악감독 가브리엘리는 이같은 흐름의 견인차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주목할 점은 독일, 벨기에, 프랑스 등 유럽 각지로부터 유수한 작곡가들이 가브리엘리의 문하로 모여들어 수학하고 다시 제각기 뿔뿔이 흩어져 이같은 음악 어법을 여러 곳에 전파했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발전은 전파와 공유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문화의 진보는 언제나 출중한 인물의 실험정신으로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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