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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나라사랑(11) : 기독교 복음의 빛으로 민족의 운명을 바꾸려던 사상가 도산 안창호

 

 

박종현 (한국교회사학연구원, 교회사)

 

 

구한국시대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이 때 한국에 전래된 개신교는 한국 민족이 처한 식민주의의 억압에 저항하는 중요한 정신적 그리고 부분적으로 물리적 동력이었다. 기독교는 일제의 억압에 대해 기독교 본연의 해방의 생명력과 정의와 사랑의 정신으로 식민세력에 저항하며 동시에 한국민족의 정신세계를 재구성하고 도약하려는 근원적인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구한국시대부터 많은 개화 지식인들이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 그중 단연 기독교 사상의 보편성과 한국민족의 특수성 사이에서 사유하고 민족의 운명을 기독교 안에서 찾으려 했던 이가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1878-1938)이다. 김구, 김규식, 이승만은 기독교인이었으나 그들의 구체적인 기독교 사상이나 영향력은 찾기가 어렵다.

김구는 오직 민족 독립을 최선의 가치로 여겼기 때문에 기독교계가 민족 독립의 가치를 위해 봉사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김규식은 민족주의자이며 동시에 사회주의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그에게는 기독교도 하나의 종교이고, 하나의 사상으로 이해될 소지가 높았다. 이승만은 노련한 정치가로서 자신의 정치를 위해 기독교와 기독교인을 소환하곤 하였다.

안창호는 이들과 달리 기독교의 보편적 진리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한국민족의 특수한 성격도 알고 있었다. 그는 결국 민족의 독립도, 독립 후에 일구게 될 새로운 국가도 모두 기독교가 알려준 진리를 통해 새롭게 형성된 새 민족, 새 시민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였다.

도산 안창호는 평안도 강서군 초리면 봉상리라는 마을에서 부친 안흥국과 모친 황씨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봉상리라는 마을은 대동강 하구의 작은 섬으로 도롱섬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는 하얼빈의 영웅 안중근과는 먼 친척이 되는 관계였다. 그의 가계는 원래 조선 중기 유력한 문신의 가문이었으나 그가 태어날 무렵에는 가세가 많이 기울어 그의 부친은 봉상리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는 일에 종사하였다. 그럼에도 안창호는 어려서 한학과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청일전쟁 중 동학이 외국군에 무력으로 진압되는 것을 보고 구국운동에 나서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가족이 이를 반대하자 그는 단신으로 상경하였다. 그는 정동에서 예수교 전도에 마음을 돌려 언더우드가 설립한 구세학당에 입학하여 신학문에 눈을 뜨게 되었다. 신교육은 그의 사상에 영구적 영향을 주었다. 그는 이렇게 만난 기독교와 신교육이 당시 기울어가는 조선이 갱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그는 기독교 개화군의 최전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가 구세학당을 마치는 1896년은 조선이 대한제국이라는 근대국가로 대전환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안창호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독립협회 관서지부를 조직하여 운영하였다. 그는 기독교의 본고장인 미국으로 1902년 유학을 떠났다. 미국 생활 중에도 그는 한국의 애국계몽 언론운동 및 현지 한인들을 규합 민족운동 단체를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그는 귀국하여 윤치호 서재필 등과 을사조약 무효 운동을 펼쳐 나갔다. 그는 1907년 귀국하여 기독교민족운동의 핵심 단체인 신민회에 참여하였고 대한협회 대성학원 등을 설립하여 애국계몽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탁월한 웅변술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여운형 조만식 등은 그의 연설에 감동이 되어 민족운동에 나서게 되기도 하였다.

그는 조직 구성에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기독교인이 주축이 된 신민회(新民會)의 조직을 그가 맡아 신민회를 일제가 퇴각 후에 전국적 행정이 가능한 조직으로 대체하려는 웅대한 계획을 추진하였다. 1910105인 사건으로 신민회가 와해되었지만 안창호는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유길준이 설립했던 흥사단을 재건한 것이었다. 그가 미국에서 조직한 흥사단 역시 국내와 국외를 연결하여 광복을 위해 헌신하려는 이들로 구성된 비밀결사로서 안창호의 조직력을 보여준 것이었다. 19193.1 운동으로 조국광복의 힘이 솟구치고 이 결과로 4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안창호는 이때에도 국내의 내부 조직을 재건하였는데 그것이 유면한 연통제로서 광복 후에 국내의 행정을 맡을 조직이었다.

1920년대 그는 기독교 민족운동 세력을 촘촘하게 연결하여 특히 서북지역의 교회들과 기독교 단체들을 중심으로 많은 민족운동 단체들을 설립하고 조직하였다. 당시 한국의 기독교는 기독교 선교를 통한 근대화의 기수였고 기독교 신앙을 통해 전통적 유교 윤리를 넘어서는 보편적 윤리 의식을 확산시켰다. 안창호는 이러한 근대 기독교 민족운동의 가장 탁월한 인물이었다.

그는 유명한 민족개조론을 주장하였다. 안창호의 사상을 물려받았다는 이광수가 민족개조론을 일본과 서구 국가와 같이 민족을 개조하는 것이라고 기술한 바 있으나 사실 안창호의 민족개조론은 일본이나 서구의 모델을 넘어서 기독교라는 보편적 윤리에 의해 민족이 바뀌어야 한다고 보았다. 안창호의 사상이 안창호의 소개자인 이광수보다 더 광대하고 근원적인 것이었다.

1932년 윤봉길의 홍커우공원 거사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일경에 체포된 안창호는 4년 형을 받고 복역하고 1935년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재검속 되었다. 동지들의 도움으로 가석방 된 안창호는 이상촌 건설 운동을 위한 노력에 시동을 걸었으나 건강이 빠르게 악화되어 1938년 서거하여 망우리에 안장되었다. 그가 이 시기를 견디고 살아남았다면 해방정국의 한국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안창호의 사상은 여전히 민족의 문제를 기독교적 보편성 안에서 해결하려 하였던 의미심장한 모델로 유효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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