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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뱃속의 요나 - 안옥수

성서와문화 2018.09.08 13:18 조회 수 : 8

 

고래 뱃속의 요나

 

안옥수 (인천대 명예교수, 교육학)

 

19504월에 S여대의 입학과 동시에 기숙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렇게도 바라던 서울의 학교생활이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학교에서 한국말로 공부하기 시작했고, 1948년에는 대한민국이 건립되었다. 우리 학생들은 공부하면 무엇이든 다 이룰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학교에 갈 때는 단아하게 교복을 입었지만 외출할 땐 그 당시 한참 유행했던 360도 후레아 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었다. 그렇지만 기숙사 생활은 엄했다. 10시가 되면 어김없이 점호가 시작되므로 10시가 가까워지면 복도에서 통통통 하이힐 튀는 소리가 콩 볶듯 한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점호 시간을 알 수 있다.

626, 전날 38선에서 북한군이 남하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기숙사 여대생들에게는 그리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1949년 미군이 고문단만 남기고 모두 철수했다지만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입학과 동시에 한 학기 등록금과 함께 기숙사비를 냈기 때문에 먹고, 자고, 학교 가서 공부하면 되는 생활이었다. 그날도 아침 식사를 하고서 손에 노트를 들고 계단을 따라 학교로 내려갔다. 여러 과가 1,2,교시 공통으로 듣는 윤리학 강의였다. 교수가 강의 노트를 교탁에 펴고, 강의를 시작했다. 한참 강의가 진행되는데 갑자기 밖에서 비행기 소리가 들리더니 기총사격을 하는 것 같았다. 아무도 무어라 말하지 않았는데 학생들은 모두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바깥이 조용해지자 학생들은 고개를 들고 교수만을 쳐다봤다. 교수는 탁자 위에 있는 강의노트를 덮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한 학생이 일어나 외쳤다. 자기는 순천에서 온 가정과 김00인데, 자기들은 여순 반란사건에 총알이 이쪽 창문에서 저쪽 창문으로 뚫고 지나갈 때도 수업을 했다고 한다. 교수가 멍하니 그 학생을 바라보더니 다시 노트를 펴고 1,2교시 강의를 모두 마쳤다.

시간표에 따라 다음 교실로 이동하려고 복도로 나갔다. 복도에 직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어쩐지 어수선하다. 다음 강의실을 찾아갔더니 텅 비어있다. 그리고 복도에는 임시휴강(臨時休講)이라고 세로로 쓴 붓글시가 붙어있다. 아무런 설명도 없다. 그날 공부는 포기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기숙사에서 곧 다가 올 중간고사 노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 때의 사회 분위기는 평양에서 점심 먹고, 압록강에서 저녁 먹는다고 떠들던 시절이다.

627, 날이 밝았다. 학교에 갔더니 텅 빈 학교에는 臨時休講이라는 표만 복도를 지키고 있었다. 기숙사로 돌아왔다. 사감실에서 큰 소리가 들린다. 기숙사에는 개성 유학생들이 많았다. 그녀들은 개성의 시가지가 38선으로 갈렸기 때문에 창 너머로 북한군의 훈련과정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그녀들의 얼굴엔 공포의 그림자가 어렸다.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그녀들과 국군이 지금 의정부를 탈환하고 북진 중이니 기다리라는 사감의 의견 충돌이다. 마침내 그녀들은 명을 어기고 기숙사를 떠났다. 나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

해가 저물었다. 내가 있는 방의 유리창이 따르르 떨기 시작했다. 전쟁이 시작된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만큼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것인지 거리를 간음할 수 없었다. 차차 떨림의 강도와 빈도가 더해 갔다. 불안하다. 방 친구들 모두, 더는 의연하게 있을 수가 없었다. 점호시간에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날 밤, 점호는 없었다. 일상 같았으면 조용할 시간인데 온 기숙사가 어수선하다.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종종걸음을 치는 발소리가 들린다. 조용히 제방에서 자는 학생은 없는 듯하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소식을 들으려고 해도 방법이 없다. 기숙사에는 사감선생님 방에만 라디오가 있었다. 대여섯 명씩 내려가 방과 복도에까지 앉아서 듣다가 다른 팀이 오면 교대를 했다. 서울 중앙 방송국에서는 음악이 흐르고, 간간이 M여사의 시낭송이 있었다. 답답했다. 바깥은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개성 가겠다고 아침에 떠났던 학생들이 비에 젖어 돌아왔다. 서울역까지 걸어갔는데 이미 개성은 함락되어서 고향사람들이 부상을 입고 서울역에 내리는 것을 목격했단다.

자정이 되자 갑자기 라디오가 찍찍 소리를 내며 방송이 중단된다. 쏟아지는 비 때문인가 하고 귀를 기울이는데 갑자기 여기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서울 방송국입니다.’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사감선생의 얼굴이 파랗게 변했다. 모두 사감선생의 얼굴을 바라볼 뿐, 아무도 말이 없다. 드디어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이제는 정부가 바뀌었으니 학생들을 책임 질 수 없다는 것이다. 각기 의사대로 하고, 자기를 따를 사람은 방에 가서 가장 귀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가지고 식당으로 모이라는 것이다. 방에 돌아와서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상황에서 무엇이 귀중한 것인지, 아니 내 것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어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데, 사감선생을 따르겠다는 학생들은 그녀를 따라 학교로 가는 계단을 내려갔다. 옷이 흠뻑 젖었다. 도착한 곳은 본관의 지하창고였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겁에 질린 학생들은 숨소리마저 죽였다. 시간이 흐르자 옷에 젖은 빗물이 몸에 스며든다. 주변을 둘러본다. 어둠 그 자체이다.

그 때, 갑자기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들었던 요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도시 니느웨로 가서 방탕하여 죄악에 찌든 이방인을 구하라는 하느님의 명을 거역하고, 욥바로 내려가려고, 배를 탔다가 하느님의 진노의 풍랑을 만나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오늘 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떨고 있는 우리는 누가 하느님을 배반하여 그를 노하게 했을까? 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우리 집안은 고려 말 명신인 안유의 26대 손인 순흥 안씨, 문성공파에 속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이는 조선조에 성리학을 도입한 분이다. 고려 시절에는 불교가 융성했다. 그러나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사직과 가족이 사회의 근간을 이루며 조상 숭배 사상이 강한 유교가 중시되었다. 이런 사회에서는 조상의 제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런 집안에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조상을 모실 수 있는 아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주일학교에 다니면서 모든 사람은 하느님이 창조했기에 모두 평등하다는 평등사상에 젖어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인간차별적인 사상으로 인해 아버지를 몹시 미워했다. 그러나 지금 서울에서 내가 죽으면 다시는 아버지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빌었다. ‘저를 살려주신다면, 아버지를 다시는 미워하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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