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8년 성서와 문화

 

진리가 주는 자유가 곧 구원(救援)

 

장기홍 (경북대 명예교수, 지질학)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은 4개 조항에 합의했는데 그 마지막 조항은 6·25 전쟁 때 전사한 미군유해 6000구의 반환이었다. 6000구의 대부분은 1950년 성탄절에 함경도 장진호에서 전사한 미군의 것이라 하니 새삼스럽게 놀랍다. 압록강까지 갔던 미군은 중공군의 기습을 받아 후퇴 도중 총상(銃傷)과 동상(凍傷)으로 사상(死傷)되었던 것이다. 중공군의 총을 맞고도 어쩌다 살아남은 미군병사 한 사람은 전우의 시체더미 속에서 중공군의 확인사살에도 총알을 면하여 예수님, 이제 당신을 뵈러 갑니다!”하는 기도를 올렸다(훗날 술회). 이 미군병사는 하느님께 버림받은 신세라 예수를 향해 기도했던 것이리라. (죽음에 직면하여 관념의 옷을 벗고 적나라한 맨 사람으로서 설 때를 실존(實存)이라 함.)

신학자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 계획에 연루되어 사형을 받기 전 오 하느님, 당신은 아십니다.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하고 하느님께 기도했다. 그의 나이 39, 약혼녀를 남겨 두고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으니 애석하다. 히틀러의 자살 3주 전이었다(이어 2차대전 종전). 본회퍼는 친구가 미국에 피난처를 마련했지만 뿌리치고 서둘러 조국으로 돌아가서 결국 그렇게 죽었다. 그는 예수 때문에 기꺼이 고난을 당하며, 오직 예수님만이 주님이심을 고백하며....오직 예수만이 절대적 주님이심을 고백한사람이라고 현대신학 이야기’(2004)의 저자는 평했다. 같은 저자는 우리는 예수의 제자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의 종교인으로 살고 있는가?” 하고 우리더러 묻는다. 이 글을 쓰는 필자는 이의(異議)가 있다. 사람은 한 종교인이 되어 다른 종교도 알면 더 넉넉히 예수교인도 될 수 있음은 경험적 사실이다. 자기 종교에만 너무 빠지면 자아도취 같이 된다. 그리고 필자는 본회퍼의 갸륵한 충직을 애석해 한다.

예수교인들(=기독교인)은 교조(敎祖)주님이라 부르는데 그 개념의 기원을 추적해 보자. 유대인들은 옛 다윗왕조 5백년을 늘 그리워하며 그때를 회복시켜 줄 왕 곧 메시아(구세주)의 출현을 기다린다. BC 6세기에 그 왕조가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된 이래 유대민족은 6백년간이나 외세 아래 있었다. 드디어 예수가 출현했으나 그는 뜻밖에도 하느님 나라를 전파했으므로 당시의 유대교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엉뚱한 메시아가 또 나타났구나!” 했던 것 같다. “어떻게 죽여 버릴까 의논했다.”(마가복음 11). 에세네파()의 사해문서(死海文書)가 발견되어 예수 당시 직전에 두 사람의 메시아가 십자가에서 처형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메시아 사냥이 더러 있었다는 이야기다.

나이 30이 갓 넘은 예수는 요단강 가에서 요한의 세례를 받고는 곧 독자적으로 복음(福音)전파에 나섰다. 제 일성(一聲)때가 찼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悔改)하고 복음을 믿어라였다(마가 115). 같은 취지로 전도했던 세례요한보다 적극적이고 열렬했던 예수는 서둘러 12제자를 뽑고 더 많은 제자들을 훈련시켜 각지로 파송하여 공격적으로 지상천국 건설에 매진했다. 그는 누구든지 두 벌 옷이 있으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라고 했다. 빈자, 환자, 죄인, 소외계층, 여자, 천민 등 가난한 자들과, 매춘부와 세리 등 회개하는 심령(心靈)들에게 전도했다. 평등과 박애의 하늘나라를 지상(地上)에서 건설하려 했고, 실현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예수는 평등의 원시 공산사회 같은 것을 꿈꾼 급진적 몽상가였다. 그의 하느님 나라 복음은 비록 유대교에서 파생되었으나 사실상 새로운 종교였고 예수는 그 개조(開祖)가 된다. 그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자칭(自稱) ‘사람의 아들인자(人子)라 부름으로써 자신을 인류(人類) 출신의 사람으로 자각했다. 주기도문에 있는 대로 그 나라의 이상(理想)이 지상에서 실현될 것을 꿈꾸었다. 이상과 현실의 현격(懸隔)에 부딪쳐 그의 꿈은 깨어졌으나 그의 정신은 제자들에 의해 되살아나고 계승되었다. 그런데, 제자들 생각에는, 예수의 처형을 방관한 하느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십자가형은 중()죄인이 받는 극형인데 어찌하여 스승이 그런 형벌을 받아야 했던가? 남들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처음에는 얼굴을 들 수 없었으나 차츰 예수는 하느님께 드리는 산 제사(祭祀)어린 양같은 제물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예수는 우리 죄로 인하여 희생됨으로써 우리를 속량(贖良)했다는 생각이었다. 우리 모두의 죄악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그는 죽고 우리는 살았으니 그가 우리 대신 죽은 것 아닌가!” 하는 논리에 따라 대속(代贖)의 교리가 자리 잡았다.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었다. 모든 교인들을 하나로 일치하게 하는 것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이다. 그 예수상()에 있어서 교인들은 하나가 된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특별하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여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천문(天問, 중국 옛 초나라 굴원의 질문)을 했다. 이 버려진 상황이 예수의 실존이다.

대속(代贖)의 논리에 따르면 예수가 피를 흘려 그 피 값으로 우리를 구원했으므로 속죄 입은 우리에게는 예수가 구세주요 주님이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에게 우리가 빚졌다는 은유(隱喩)는 기독교 윤리의 기초적 요소이다. 기원전 7세기의 고대 그리스의 아낙시만드로스는 우주만물이 속죄의 원리로 운행된다고 설파했다. 그에 의하면 우주의 무한성(無限性)으로부터 태어난 만물은 각기 분수가 있는데 분수 이상의 것을 넘보는 불의(不義)인 영생(永生)을 원한다. 시간이라는 심판관은 영생하려는 불의에 대해 처벌을 하는데, 그 처벌이 죽음이라는 것이다. 죽음이 속죄에 해당한다고 그는 보았다. 그는 그렇게 속죄의 원리가 우주적임을 논했던 것이다.

이제 예수의 교훈에 눈을 돌려보자. 그의 교훈으로 알려진 말씀들에는 온 유대 민족의 지혜가 농축되어 있다. 요한복음 8장에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당신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 했는데, 자유(自由)함은 곧 구원이 아니고 무엇인가? 예수에 의한 구원 못지않게 진리에 의한 구원(救援)도 중요하다. 또 그이의 이웃사랑과 원수 사랑의 교훈은 인류구원을 위해 아주 극적인 처방이다. 다툼과 싸움의 지옥인 현실에서 예수의 사랑의 교훈은 실행하기는 어려우나 그럴수록 하나의 궁극적인 윤리적 지표(指標)요 인생 항해의 등대이다. 대속에 의한 구원은 비교적 주관적이지만 진리의 구세(救世)는 상당히 객관적이다. 예수의 사랑의 교훈은 유명하지만 아직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교훈에 감화를 받으면 남을 대하는 눈이 달라진다. 그 사랑의 교훈에 접해본 사람과 아닌 사람은 아주 다르리라. 소록도에 한센병 환자가 많을 때 예수 믿는 천사들이 와서 일생을 바쳐 봉사했음은 널리 아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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