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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과 무한사이 - 최종태

성서와문화 2018.09.08 13:16 조회 수 : 11

유한과 무한 사이에서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 조각가)

 

나는 오늘도 바다를 그리고 있다. 바다를 그리려면 하늘이 있어야 했다. 하늘에는 구름이 있다가 없다가 하였다. 바다와 하늘의 색깔은 태양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달랐다. 아침빛과 저녁빛이 서로 달랐다. 어떤 바다를 그릴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맘에 달렸다. 그리다가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가 있었다. 구름이 일어났다 없어졌다하는 것처럼 나의 화면은 쉬지 않고 변화한다. 한 순간도 정지하는 법이 없다. 나의 화면 안에서 저 바다는 저 구름과 함께 쉬지 않고 변화하는 것이다. 내가 일을 중지하더라도 저 바다와 하늘은 연속해서 활동을 계속한다. 저 바다는 진짜 바다가 되고 저 하늘은 진짜 하늘이 되어 제동이 통하지 않는 생명 있는 바다가 되고 생명 있는 하늘이 된다. 그림은 내 손에서 떠났어도 저 바다는 저 바다대로의 삶을 살고 저 하늘은 저 하늘대로의 삶을 살아간다.

하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얼마나 큰지 아무도 모른다. 바다의 끝도 볼 수가 없다. 물의 양이 너무도 많아서 내 머리로는 측량이 불가능하다. 광대무변하고 영원무궁한 것이다. 내가 왜 바다를 자꾸 그리고 하늘을 자꾸 그리는지 나도 모른다. 그저 좋아서 그리는 것이다. 저 무한한 세계가 저 영원의 세계가 왠지 모르게 나와 친근하게 느껴져 오는 것이다. 생명의 원천이 영원과 무한인지도 모른다. 무한이란 것은 한계를 넘는 것이어서 내가 감지할 수 없는 것이고 영원이란 것도 인지권을 넘는 것이어서 내 마음에 담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저 큰 바다와 저 넓은 하늘을 이 작은 화폭에 어떻게 그려 담을 수 있을 것인가. 영원한 것이 그리고 무한한 것이 이 작은 화폭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인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가시권으로 형상화될 수 있는 것인가.

그림은 보이는 것을 보이는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바다를 보는 것이고 하늘을 보는 것인데 그것뿐이고 그 의미를 담으려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쩌랴. 왠지 바다가 좋고 하늘이 좋다. 바다와 하늘이 그려내는 저 수평선을 보라. 바다라는 유한성과 하늘이라는 무한성이 만드는 저 절대의 신비한 연출! 수평선은 그어져 있지는 않지만 그러나 분명하게 존재한다.

시작이 있는 것은 끝이 있다. 내가 그림의 길로 들어선 지가 60년이 넘었는데 끝이 보이질 않는다. 평생을 했는데 끝이 안 보인다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 예술의 길은 끝이 없다는 말인가. 내가 젊었을 때 스승이 한 일을 보고서 이분은 끝까지 갔구나 그런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다시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어디쯤 가고 있는가. 가끔 그것이 궁금할 때가 있다. 중간쯤은 갔을까. 중간에 가면 끝이 보일 것 같았다. 내가 지금 예술의 끝을 보지 못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중간에도 못 갔단 말인가. 한눈팔지 않고 한 가지 일을 평생 했는데 중간에도 가지 못했다면 허망한 일이 아닌가. 그 어디쯤가면 내 손을 잡아주는 어떤 손이 있을 줄 알았다. 그리하여 좋은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갈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손을 잡아주는 그 어떤 손이 없는 것 같은 것이다. 오늘도 내가 혼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아무도 나를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 나는 혼자이고 혼자서 찾아야 하고 아무도 없고 길도 없는 허허 벌판을 혼자서 걸어가야 한다. 길은 만들면서 가야 한다. 망망한 바다를 벗 삼고 광활한 하늘에다 의지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갈 길은 멀고 인생이 너무 짧은 것이었다. 누가 말 했던가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다 옛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길이었다.

바다는 변화무쌍하지만 오늘도 바다이고 하늘의 구름도 변화무쌍하지만 오늘도 그 하늘이다. 파란 바다도 있고 검은 바다도 있고 바다의 색깔은 맘 대로이다. 하늘의 구름은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누구 맘 대로인가. 화가의 생각에 달렸다. 본래 정해진 것은 없었다. 그냥 손가는 대로 그릴 뿐이다. 나의 바다그림은 몇 십 년을 했어도 끝이 나지 않는다. 완성이란 것이 없는 것 인성 싶다.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천하에 어느 화가도 그 그림의 끝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예술이란 것이 그 성격상 영원이란 것과 호흡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유한한 인간이 어찌 영원을 휘어잡을 수 있단 말인가. 끝이 있을 줄 알았던 것이 내 젊은 날의 착각이었다.

어느 누구가 하늘에다 손을 대서 더 하늘답게 만들 수 있겠는가. 어느 누구가 바다에다 손을 대서 보다 바다답게 만들 수 있겠는가. 하늘은 온전한 것이다. 바다도 온전한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완전의 표상인데 인간이 완전을 실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유한(有限)의 잣대로 무한(無限)을 재려고 하면 될 일인가. 저 옛날 어거스틴이 삼위일체를 이성으로 알아내려고 했단 말과도 같은 일이 아닌가. 조각가 자코메티가 이런 말을 했다. “하나를 만들면 천이 나온다. 그 하나를 만들면 나는 조각을 그만 둘 것이다.” 생명의 근원. 창조의 원천에는 도달할 수 없다는 고백일 것이다. 추사는 9999라는 말을 하였다. 하나를 채워야 되는데 그 하나는 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림의 어려움을 그런 말로 하였는데 하늘이 도와야 된다는 뜻이 아닐까.

 

예술가는 유한과 무한 사이에서 오늘도 한 치만큼의 진전을 기대한다. 예술가는 종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거기를 향해서 총력으로 돌진한다. 살기는 유한의 세계에 살면서도 늘 무한의 세계를 그리워한다. 그것은 알 수 없는 타지(他地)의 어떤 신호로 해서 그렇게 입력된 일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것이 우주의 비밀스런 어떤 법칙인지도 모른다. 예술가가 살아가는 뜻은 세상 이치하고는 달라서 그 일 자체에 기쁨이 따른다. 왜 그런지 그것은 알 수가 없었다. 아름다움을 만났을 때는, 진리를 깨쳤을 때는 동시에 한정 없는 기쁨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보상을 기다릴 일은 아닐 것 같다.

유한한 바다와 무한의 하늘이 만나서 그려내는 저 수평선에 화가는 이상한 향수 같은 것을 느낀다. 사실상 수평선은 없는 것이지만 실재로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내가 바다를 그리면서 그 수평선을 그릴 때 이상한 매력을 느낀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세상을 살면서 알 수 없는 것이 부지기수로 많기는 하지만 바다와 하늘 사이에서 연출되는 저 알 수 없는 수평의 기다란 선은 현실과 초현실 사이에다 던져놓은 이름 모를 이의 어떤 눈짓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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