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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너 있었는가 - 정연희

성서와문화 2018.09.08 13:15 조회 수 : 3

거기 너 있었는가

 

정연희 (소설가)

 

외출준비를 하면서 올려다 본 하늘이 눈부셨다. 가을... 삼복더위에 탁하고 걸던 혈관이 맑아진 느낌으로- 골목길을 벗어나 신작로를 향하는 발걸음도 가벼웠다.

 

1970년 대 말, 관악구 사당동은 외진 마을이었다. 아스팔트 신작로가 트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뒷골목은 아직 포장이 되지 않아 비만 오면 발이 빠지는 흙탕 길-, ‘마누라는 없어도 장화 없이는 못사는 마을이라는 별명 붙은 서울외곽 마을이었다. 가난한 집들도 눈 여겨 보는 일 없던 언덕마루에 마을이 형성된 것은, ‘예총이라는 한국예술인총연합회에서 집 없이 떠도는 예술인들에게 집터를 나누어 주면서 만들어진 주택가였다. 신작로를 가운데 두고 A 지구와 B 지구로 나뉘어 작가, 화가, 언론인, 영화감독... 더러는 배우들도 한 몫 들어, 이름 그대로 예술인마을이 된 곳이었지만, 수도 시설도 변변찮아 늘 물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던 시절, 그래도 내 경우, B 지구에 터를 얻어 내 집이라고 살게 된 것만 행운이라 여겨 감지덕지였다.

 

사당동 네거리에서 치올라간 2차선은 가파른 언덕이었고, 그 가파른 언덕을 넘어 다니던, 난공동이 종점인 버스가 있었을 뿐, 시내로 드나드는 버스 노선도 하나뿐이어서 교통편은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나마 버스가 있는 것이 대견하기만 했고. B 지구에서 시내로 나가려면 길 건너 버스정거장에서 버스를 타야 했다.

 

그날, 가을 하늘이 전신을 싱그럽게 만들어 주던 그날... 집을 나서서 버스를 타기 위해 큰 길을 건너갔다. 외진 곳이어서 차량왕래도 많지 않았고, 버스 탈 사람도 없는 한적한, 오전 열한시경- 정거장은 사당동 네거리와 신림동 등으로 넘어 드나드는, 가파른 언덕 중간에 있었고, 나는 그날 그 시간에 그 버스 정거장에 달랑 혼자 서 있었다. 하늘 맑고, 공기 청정한 오전 열한 시- 한 순간 모든 것에서 놓여난 무심(無心), 평화였다.

 

그때, 언덕너머에 빈 택시 한 대가 나타났다. 큰길 한가운데 여자 하나 서 있는 그 자리가 버스 정거장이라는 것을 모르는 택시 기사는, 혹시 택시를 탈 사람인가 싶었는지, 내리막길에서 갑자기 속도를 줄이고 슬금슬금 내려오기 시작했다. 미안지심이 들어 고개를 돌리고 그렇게 지나가려니 했는데, 그 순간, 천둥치듯 괴음이 터졌다. 창천하늘 아래 맑고 시원하던 빛과 공간이 한 찰나에 깨어졌다. 스름스름 속도를 줄이고 내려오던 빈 택시를, 언덕 너머에서 제 속도로 달려오던 다른 택시 하나가 앞 차를 그대로 들이 받았다. 제 속도로 달리던 빈 택시 하나가, 속도를 줄이고 미적미적 굴러가던 앞 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한 순간 모든 것이 멎었다. 폭음속의 적요(寂寥). 그리고 공황(恐慌)- 무심 평화, 안전이 무너진 순간.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무심하게 서있던 내가 교통사고의 원인이었다. 다행하게도 운전기사는 피차 크게 다치지 않았는지, 양 쪽 택시 운전석에서 빠져 나온 기사끼리 마주섰는데,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도착했지만 나는 그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버스는 머뭇거리는 일도 없이 떠났고, 차의 앞부분을 쭈그러트린 들이 받은 차와, 차의 뒷부분을 망가뜨린 차가, 무슨 의논을 할 모양으로 각기 운전석에 앉아 대로변을 벗어나 골목 안으로 차를 끌고 들어갔지만 나는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저 망연했다. 그 자리는 버스 정거장이었고, 나는 버스를 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 내가 그 시간 그 자리에 있던 것만으로 누구인가를 다치게 만든 이 연기(緣起)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가 그저 거기 서 있었다는 그것이 빌미가 되어 택시 두 대가 충돌했다. 너무 황당 먹먹하여, 맥 빠진 몸을 이끌고 길을 건너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불교 경전 어느 대목엔 가에서, ‘존재(存在) 자체만으로 죄가 된다.’는 대목을 읽었던 기억이 살아났다. 그리고 그 며칠 라는 존재가 그저 거기 있는 것만으로, 누구인가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감감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에 빠졌다.

 

하지는... 내 출생 자체가 내 어머니에게는 재앙이었다. 해 덩어리 같은 아들 잃고 석 달 만에 태어난 계집아이가 어머니와 우리 집안의 불운이었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출생이었다. 나는, 아들만을 기다리던, 한 집안의 기다림을 배신한 어이없는 존재였다.

 

이 기나긴 평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그때그때 정황에서 어디에 서 있었을까. 절체절명(絶體絶命),내 죄의 막바지로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을 그때, 그 십자가 앞에 거기 너 있었는가.’ 물으셨다. 무심(無心)에는 은혜 설 자리가 없음이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고난 고통이 이 삶에서 진액을 빨아올릴 때, 비로소 뜨이는 실눈으로 그분의 빛이 스며듦이 은혜였고, 세상사,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되고, 남들이 들을 수 없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영혼의 눈뜸과 영혼의 귀 열림이 내 삶을 이끌기 시작하는 은혜였다.

 

하지만 새로 열린 삶에 따라오는 고통과 고난은 의미가 달라졌을 뿐, 질곡은 이어졌다. 며칠 전, 여름감기가 폐렴이 되어 심하게 앓고 났을 때, 담당 의사가 주의를 주었다. “...많이 좋아졌으니 앞으로 과로와 스트레스를 피하십시오.”의사로서 당연하게 해야 할 말이었겠지만, ‘삶 자체가 과로와 스트레스인데...’속으로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생지옥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증언저술로 유명했던 지식인들 중 몇 몇이 자살로 삶을 마감한 기사를 만날 때마다 충격이 컸다. 프리모 레비, 장 아메리, 빅토르 프랭클, 파울 첼란, 타데우쉬 보르프스... 그들 중 살아남아 <운명>을 저술한 케르케스 임레는 운명 따위는 없다. 스스로가 곧 운명이므로 사회적 폭력이 난무하는 아우슈비츠와 유사한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야만 한다.”고 역설하며 200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조국 헝가리 부다페스트 자택에서 87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 밖의 기적의 생환자들 여럿이 자살로 삶을 마감한 사실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어떻게... 도저히 실감키 힘든, 육백만 명의 떼죽음 속, “거기 있었던..”그들,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던 그 몇 몇 사람들은 왜 자살로 삶을 마감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무엇이 그들 기적의 생환을 자살로 몰고 갔을까. 오래도록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겪던 극한의 고통에서 솟은 생명 진액은, 극악한 악에 대항했던 생명 본질이었을 것이다. 악을 향해, 악이 몰아다 주는 고통과 싸우면서, 살아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해야만 했던 치열한 생명력이었을 것이다. 누구하고도 견줄 수 없었던 악과의 대면과 극한의 고통은, 살아남겠다는 그들만의 의지의 생명진액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극한의 고통에서 벗어나, 안전과 평화, 평범한 일상으로 들어간 그들이 만난 것이 고통 없는 삶의 지루함이었을까. 그들에게 무위(無爲)는 평화가 아니었을까. 아우슈비츠의 극한의 고통에서는 마주친 일이 없던 숨 막히는 허무였을까, 극한의 고난, 한계선상에서 생명 진액을 모두 소진한 탓이었을까. 그래서 안전한 일상에서 마주친 허무를 극복 할 힘을 잃었던 것일까. 그들의 자살은 아직도 미궁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분이 거기 너 있었는가.’ 십자가 앞에 서 있는가를 물으 실 때 나는 어떤 얼굴을 들고 그분을 뵈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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